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 3월입니다. 겨울의 끝자락과 봄의 시작이 교차하는 3월, 산기슭 어느 모퉁이에 꽃망울이 맺힌 진달래를 마주하면 마음 한구석이 애틋하게 뭉클해지곤 합니다.
진달래의 꽃말은 '사랑의 기쁨'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타인을 향한 애정도 포함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비(Self-Compassion)'를 의미합니다.
화려한 정원의 꽃들처럼 보살핌을 받지 않아도, 메마른 바위틈과 척박한 토양 속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진달래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납니다. 토양을 가리지 않고, 산성 토양이나 메마른 땅에서도 깊게 뿌리를 내립니다. 모진 바람과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진달래는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그 척박함을 자양분 삼아 자신만의 색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초록의 생기가 돋기도 전, 삭막한 갈색 나뭇가지 위에 내려앉은 분홍빛 꽃잎은 마치 "나 여기 살아있어요"라고 외치는 존재의 증명과도 같습니다. 삭막한 겨울의 끝자락에 피어난 진달래의 여린 분홍빛이 유독 애틋한 이유는 그 색이 혹독하고 모진 추위를 이겨낸 훈장과도 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때로는 잎 하나 틔울 수 없을 만큼 황량한 겨울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많은 분이 "내 환경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나에게 상처 준 그 일이 없었더라면" 하며 과거와 환경을 한탄하거나 후회하곤 합니다. 또는 슬픔이나 상실, 혹은 알 수 없는 무력감이 삶을 뒤덮었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자책하곤 합니다.
마음의 토양이 산성화되어 있다면 잠시 쉬어 가며 거름을 주고, 가뭄이 들었다면 눈물이라는 비를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될까?"라는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올 때, 가만히 눈을 감고, 분홍빛 진달래를 마음에 담아 보세요.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꽃눈을 준비하는 진달래가 그러하듯이, 척박한 겨울을 견뎌온 당신의 인내를 격려하고,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당신의 가능성을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여전히 시린 현실 속에서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이미 우리의 내면에선 봄을 준비하듯, 어떻게든 삶의 꽃을 피워내기 위해 치열하게 버티고, 견뎌내며 살아내고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역경을 극복해 내는 회복탄력성은 단순히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진달래처럼 주어진 환경의 척박함을 탓하지 않고 버텨낸 유연한 마음은 시련을 겪은 후 이전보다 더 깊고 단단해진 자아를 만나는 과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봄산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무리 지어 피어 있는 진달래를 보면 혼자일 때보다 훨씬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줍니다. 마음의 병은 대개 고립에서 시작하여 "나만 이런 고통을 겪는 것 같다"는 단절감이 더 깊은 우울로 몰아갑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아픔을 털어놓고, 상대의 눈물에 함께 공감하며 우리는 비로소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3월의 분홍빛 진달래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위로는 "당신 곁에 우리가 함께 피어 있다"는 따뜻한 연대의 온기일지도 모릅니다. 올봄, 우리의 마음 언덕에 분홍빛 진달래가 가득 피어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