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현101

폭력의 우상 - 한국군에 배태된 이스라엘 군사주의

폭력의 우상

: 한국군에 배태된 이스라엘 군사주의

 

 

지난해 8월, 여기 〈길목인〉 소식지에 올라왔던 글 하나를 기억하시는지요. 팔레스타인 가자 출신의 난민활동가 살레가 보내온,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가로막는 장벽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무관심과 몰이해, 그로부터 재생산되는 악질적 오해들에 관한 분석이었죠. 마침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만행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시점이라서 그랬을까요. 살레의 지적은 날카로웠고 뒤따르는 호소는 절박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읽으셨나요?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살레가 지적처럼—팔레스타인의 저항을 그저 야만이라 치부하던 '어리석은 한국인'이었습니다. 왜 그랬냐고요? 핑계를 대보자면, 그렇게 배워왔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때 한국의 군인이었습니다. 한국군 장교로 또 국방부 소속 연구원으로 10년여를 복무했죠. 맞습니다. 제게 팔레스타인에 대한 혐오를 가르친 건, 다름 아닌 한국군이었습니다.

 

놀라시는 분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고개를 끄덕이실 분도 적지 않을 거라고 감히 짐작합니다. 특히 군 입대 경험이 있는 분이시라면요. 그만큼 한국군의 친(親) 이스라엘 편향은 외부에 공론화되지만 않았을 뿐, 군 내부에서는 사실상 '정론'에 가까운 취급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사체계를 "디펜스 아트(Defense Art)"라고 찬양한 전문가도 있을 정도니까요. 일종의 군사적 뮤즈(muse)라고나 할까요. 이미 한국군은 무기체계/기술, 제도, 교육 및 인력양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스라엘의 군사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관한 우호적인 콘텐츠 또한 활발하게 보급되고 있고요. 네 차례에 걸친 이스라엘의 중동(침략)전쟁을 신화화하는 도서가 "국방·군사 우수 추천도서"로 선정되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점령'하여 '발전'시킨 팔레스타인 도시들을 소개하는 읽을거리가 발행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한국군은 이스라엘의 급진적 군사주의와 식민주의적 가치관, 즉 '시오니즘(Zionism)'마저 내면화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시오니즘을, 민족의 자결을 지키기 위한 숭고한 정신운동이자 잃어버린 땅을 회복한다는 당위적 사상으로 받아들인 거죠. 예컨대 〈국방일보〉*의 몇몇 기사는 시오니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2000년 동안 세계 각처를 방랑하면서도 자신들은 신에 의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選民)의식을 버리지 않고 언젠가는 메시아가 나타나 유대 민족에게 약속의 땅인 시온(Zion)에 유대 국가를 건설할 것이라고 믿어 왔는데…이러한 시오니즘을 바탕으로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제1회 시오니스트 회의를 개최해 팔레스티나를 개척, 세계의 유대주의를 통합하고 민족의식 강화와 단결을 결의했다." ‒〈국방일보〉, "유대민족의 영원한 성전 마사다 요새", (2005.7.1.)

 

"시오니즘의 기치 아래 약 스무 세기 만에 고토를 되찾은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영토는 과거 출애굽기에서 유대민족이 하나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버금가는 가슴 벅찬 성지로 다가왔을 것이다." ‒〈국방일보〉, "고귀한 자의 용기,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 (2017.7.27.)

 

그렇다면 이번 사태, 그러니까 2023년 10월 7일 이후 벌어진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대한 한국 국방부의 입장은 어땠을까요. 〈국방일보〉에 게재된 각종 특집·기획기사를 토대로 관련 주장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①전대미문의 피해를 본 이스라엘 국민의 충격과 상처는 매우 크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 충격("제2의 홀로코스트")을 받았다. ②이스라엘에게는 자위권을 행사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 이에 이스라엘 국민들 역시 무기를 소지하고 주기적으로 훈련을 받으며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③이에 반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은 이스라엘을 인종청소를 단행하는 '학살자'로 묘사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도덕성과 정치적 정당성을 훼손하고자 AI 가짜 뉴스를 동원한 인지전을 적극 활용 중이다. ④이번 사태는 우리 한국에도 위협적이다. 실제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북한의 땅굴 기술을 전수받았다는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다. 북한제 방사포탄이 이스라엘 국경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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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이스라엘 정부의 입장을 완벽하게 대변해주는 언설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팔레스타인을 '악마화'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려는 의도로 읽히는데요. 무엇보다 제노사이드(genocide)로 규정될 만큼 참혹했던 이스라엘의 학살만행은 제대로 다루지 않습니다. 그저 "양측 통산 00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는 식의 표현으로 뭉뚱그렸을 따름이죠. 북한과 팔레스타인을 '야만의 연대'로 등치시키는 반공주의 프레임도 이런 악마화 전략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거고요. 물론 이러한 주장들이 백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진 이스라엘 식민주의의 역사적 맥락과 유책성을 완전히 몰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을 듯합니다.

 

한국군이 유독 '이번' 사태에만 한해서만 이스라엘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저는 이것이 1962년 한국-이스라엘 수교 직후부터 강화되어 온, 군사적 야합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박정희 군사 정권은 이집트를 중심으로 뭉친 아랍 국가들과의 외교에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남한만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인정하라면서 아랍 측을 압박했던 거죠. 그 갈등의 틈새를 이스라엘이 파고들었습니다. 이스라엘로서도 한국 등 아시아 국가를 우호국으로 확보하면 팔레스타인 식민화에 대한 국제적 비판을 다소나마 희석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결국 남한은 이스라엘과 먼저 수교했고, 이에 반발한 아랍 측은 그 반대급부로 북한과 먼저 외교관계를 맺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오늘날 한국의 기이할 정도의 친이스라엘 편향은, 60∼70년대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결을 이스라엘 VS 아랍(팔레스타인) 구도로 투사해버린 '반공외교'에 그 근간이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쟁국가 이스라엘 특유의 군사주의가 한국의 군부정권에게 매력적으로 선전되었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특히 '총력안보'를 내세웠던 박정희 군사정권은 정치, 문화예술, 과학기술 등 사회 전 영역이 '병영'에 종속된 국가를 꿈꿨습니다. 이스라엘방위군(IDF) 그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있었죠. 즉 국민을 위한 군대가 아닌 "국민이 곧 군대라는 개념에 기반을 둔 철저한 국민 총동원제도"를 이스라엘로부터 이식해오려 했던 겁니다. 그 결과 실제로 ""싸우면서 일한다"는 이스라엘의 모토가 박정희 정권 시절의 국민학교 '바른생활' 교과서에 등장하기도 했고. 이스라엘 협동농장인 '키부츠'와 '새마을 운동'의 유사성이 강조"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국방제도를 학습하기 위한 군사사절의 파견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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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단편적인 사례들만으로는 한국군 내에 파고든 시오니즘의 영향력을 샅샅이 톺아내긴 어렵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분석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그 민낯을, 우리 한국군이 앞장서서 미화해주고 있다는 부끄러운 현실을 언제까지 못 본 체하고만 있어야 할까요. 게다가 한국은 징병제 국가입니다. 2023년 병무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83.7%가 현역 판정을 받고 군에 입대합니다. 거칠게 말하면, 한 시민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군대에서) 시오니즘의 영향을 받아왔고 현재도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테죠. 저 역시 그러한 시오니즘의 세례를 한 몸에 받아들였던 군인 중 한 사람이었고요.

 

'어리석었던' 한국인인 저는 늦었지만 살레의 호소에 '응답'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진실인식 능력을 퇴화시키고, 인간과 인간의 연대를 조롱하고, 혐오라는 화약통에 불을 붙이는 이 '닫힌 세계'에 저항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주변은 어떤가요?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의 식민주의를 미화하는 '닫힌 세계'들이 암약하고 있진 않나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한국인들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알려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국방일보〉와 〈KFN〉(일명 '국방TV')은 한국 국방부의 프로파간다 기관매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국방부는 매주 월요일 '정신교육' 교재를 <국방일보>에 게재하고, 해당 내용을 전 장병에 교육토록 지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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