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군사 공격을 시작한 이후, 2025년 말까지 7만 명 넘게 사망했습니다. 이 커다란 비극 앞에,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이스라엘에 폭격 중단을 요구하고, 팔레스타인인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한국에도 여러 모임이 새롭게 만들어졌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팔레스타인 대화모임(이하 대화모임)'입니다.
제가 처음 대화모임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기 위한 각종 시위와 캠페인, 토론회와 상영회 등이 열리고 있고, 저도 거기에 자주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계속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네."
참가자들이 무대나 행사장 앞쪽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볼 기회가 있는 것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행사에 참여하면 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표현하고 나눌 기회는 잘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게다가 집회를 열고 행진하는 것이 저에겐 익숙한 일이지만, 어떤 분에게는 손을 들어 구호를 외치는 것부터 낯선 일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몇몇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대화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24년 7월 3일 첫 모임을 열었고, 2025년 말까지 29번 만났습니다. 무작정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하면 말이 잘 안 나올 수 있어서, 모임 때마다 주제를 정하는 편입니다. 누군가 짧게 주제 발표를 먼저 하고, 이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거지요.
주제는 다양합니다. 팔레스타인에 다녀오신 분이 자신의 경험을 말할 때도 있고, 가자 지구의 역사에 대해 발표할 때도 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 얘기를 할 때도 있고, 팔레스타인 수감자나 빅테크 기업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있습니다. <오마르>, <선물> 같은 영화를 보기도 했고, <파르하>라는 영화는 대화모임 참가자가 직접 한글 자막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대화모임에 빠지지 않는 게 '자기소개'입니다. 참가자가 비슷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매번 자기소개를 합니다. 이름뿐만 아니라 자기가 왜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면 어떤 마음이 드는지 등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감각
2024년 겨울 한국 대통령 윤석열이 계엄령을 선포하자, 많은 사람이 국회 앞으로 모였습니다. 군인이 총을 들고 위협하는데도 시민들은 오히려 군인을 막아섰습니다. 추운 겨울을 거리에서 보내며 결국 윤석열을 쫓아냈습니다. 한 명, 한 명의 시민이 모여 정치에 직접 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의 마음에는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느낌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에 비해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 많은 한국 사람이 느끼는 것은 무력감입니다. 하루하루 너무 많은 사람이 죽고 너무 많은 것이 파괴되고 있는데도, 정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요. 대화모임에 참여하는 여러 사람의 공통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혼자 팔레스타인 뉴스를 보고 있을 때는 너무 외롭기도 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이렇게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많은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당장에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슬프고 무기력하기만 한 인간이 아니라, 슬프지만 그것을 딛고 행동하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전해오는 소식을 듣다 보면, 팔레스타인이 그저 뉴스로만 다가오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아픔이나 고통보다는 뉴스 속 영상이나 기사로만 보이는 거지요.
2025년 9월 14일, 23차 팔레스타인 대화모임에서는 가자 지구에 있는 UPWC라는 여성단체 활동가들과 화상으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갑자기 화면이 끊겼습니다. 한국에 있는 참가자 모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무 말 없이 기다렸습니다. 가자 지구의 상황이 어떨지 알기 때문에, 행사가 중단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크게 걱정이 되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화면이 연결되었고, 팔레스타인 여성 타그리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죄송해요. 폭탄이 터져서 인터넷이 끊겼어요."
가자 사람과의 대화를 마치고, 한국 참가자끼리 마음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를 포함해 모두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비록 인터넷을 통한 만남이었지만, 우리는 살아있는 구체적인 인간을 마주했던 것입니다. 단순한 뉴스나 사건이 아니라, 우리를 닮은 인간에게서 그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직접 들은 것입니다.
그날 그 자리에 계셨던 분은 앞으로 팔레스타인 뉴스를 볼 때마다, 가자에 살고 있는 타그리드와 니빈의 얼굴이 떠오를지 모릅니다. 마음은 절로 타그리드와 니빈의 안부를 묻게 될 수도 있구요.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인간에 대한 감각이 짙어지고 두터워진 것입니다.
인간의 교류
인간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인간과의 만남과 교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만남과 교류가 편안하고 안전해야 할 테구요. 그래서 대화모임에서는 대화 규칙도 만들었습니다. 자유롭게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지만, 그것도 나름의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나도 대화모임에 참여해 볼까?' 싶은 마음이 든다면 언제든 오세요. 대부분 2주에 한 번 금요일 저녁에 모임을 엽니다. 사무실 같은 건 없어서, 그때그때 모임 장소를 구해서 공지하고 있습니다.
모임이 서울에서 열리다 보니, 다른 지역에 계신 분은 참가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계신 도시나 마을에 팔레스타인에 관심을 두는 분이 계시면, 그런 분들과 팔레스타인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아무래도 주제가 팔레스타인이어서 무슨 얘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싶으면, 저희에게 연락을 주세요. 단체, 책방, 학교, 교회 등 세상 곳곳에서 팔레스타인 이야기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팔레스타인 대화모임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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