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정유현

좌·우를 넘는 우리를 위한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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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출당을 당한 영국노동당 출신 정치인 제레미 코빈. 그리고 비슷한 이유로 영국노동당을 탈당한 자라 술타나 의원이 새로운 좌파 정당의 창당을 앞두고 있다. 정당 이름은 Your Party. '당신을 위한 정당'이다. 지난 7월부터 60만 명의 폭발적인 당원 가입을 이끌어내며 영국 정치 사회에 큰 이슈를 몰고 왔다. 이렇게 외치며 말이다.

 

"우리 사회의 위기를 해결하려면 부와 권력의 대규모 재분배가 필요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가장 부유한 계층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민영화되지 않은 복지시스템을 구축하고 에너지, 수도, 철도, 우편 서비스를 국유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규모 공공주택 건설 프로그램에 투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화석 연료 대기업들이 지구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것에 맞서 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종류의 정당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공동체, 노동조합, 그리고 사회 운동에 뿌리를 둔 정당입니다. 모든 지역과 국가에서 힘을 키우는 정당입니다. 당신을 위한 정당입니다."

 

영국 의회에는 노동당과 보수당 양당을 축으로 자유민주당, 스코틀랜드 국민당, 녹색당 등 다양한 정당이 존재한다. 집권 여당 영국노동당은 1900년, 노동조합 단체 연합에서 시작해서 그로부터 6년 후 노동당이 되었다. 자그마치 120년이 된 정당. 그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승리와 실패의 역사가 쌓였을까? 실제로 영국노동당은 내부에서도 우파-중도 지도부, 신좌파 그룹 등장, 신노동당 등 당내 파벌과 좌-우파 경합의 역사1)를 거치며 당을 발전시키고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하거나 혹은 갈등하고 분열하는 등의 역동성을 만들어왔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하게 영향력을 가져왔다. 이렇게 좌파 정치의 원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한국에서 이런 좌파 혹은 진보2) 정치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부의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유권자들은 분배와 복지, 형평을 강조하는 진보 정치보다 보수 정치를 지지해왔다. 보통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에 투표를 하는 것이 맞겠으나, 서구 정치와 달리 한국의 유권자들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여왔다. 한국 정치는 숱한 침략과 전쟁, 뒤늦은 근대화로 서구의 정치와는 다른 균열 구조를 형성했다. 권위주의 정권의 이념적 억압으로 인해 사실상 계층 정치, 소위 계급3) 정치가 활성화되거나 정당들이 계급 이슈를 통해 유권자들을 동원해내지 못했다.4) 그렇다고 중도보수5)와 보수, 극우만이 대부분의 권력을 가진 지금의 한국 정치에 대해 체념하고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

 

스페인의 좌파 정당, '포데모스(Podemos)'를 이야기해보자. "좌-우를 넘어 미래로!6)"라는 슬로건을 가진 포데모스는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제위기로 높은 실업률과 물가로 대중들의 생활고가 가중되고,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커지던 2008년의 스페인. 사회주의노동자당과 국민당 중심의 양당제 정치 구조에서 '긴축 반대'를 외치며 복지 확대를 앞세운 신생 좌파 정당들이 큰 인기를 얻으며 대안 세력으로 등장했다. 여기서 주목하는 포데모스는 좌파 포퓰리즘 정당7)이다.

 

2011년, 스페인 청년들은 '지금 당장 진짜 민주주의를!'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모이며 거리로 나왔다. 이를 시작으로 스페인 전역을 휩쓸던 '인디그노스(분노한 사람들)' 시위 지도부가 이끌었던 '포데모스'는 창당 1년 만에 거대 양당을 위협하는 제3당으로 급성장했다. 이후 포데모스는 범좌파연합을 이끌며 사회주의노동자당, 공산당 등이 함께 선거연합인 '수마르'를 만들어 집권 정당이 되었다.

 

한국은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여러 사회경제적 이슈가 더해진 불평등 구조를 살아가고 있고, 스페인의 78년 체제처럼 87년 체제라는 '위로부터의 민주화'의 산물로 양당체제가 지속되고 있다.8) 그러나 한국 좌파(진보) 정치의 현재는 어떠한가? 지난 21대 대선을 지나며 진보 정치 연합과 사회운동과의 연대가 이전보다는 폭넓게 이뤄졌지만, 여전히 사회는 불평등하고 정치는 공고한 양당 체제에서 진보하지 못한 채로 머물러 있다. 좌-우의 오랜 이념 대립을 넘어, 한국에서 불평등과 자본주의로 싸울 수 있는 위-아래의 정치 곧 계급의 정치가 가능할까? 아니, 우리에게 좌-우도 위-아래도 아닌, 전혀 다른 방식의 정치를 다룰 수 있는 공간이 가능할까?

 

누군가는 대안 세력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혐오의 정치도 아니고 양당의 정치도 아닌, 새로운 정치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좌우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미래의 정치를 원할 것이다. 그 정치적 틈을 열망하는 수많은 누군가를 떠올리며,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의 말을 남긴다.

 

"'남한에는 좌우는 없지만 위아래는 확실하다.' 영화 <공조>에 나오는 대사다. '팩트'라고 생각한다. 조국 사태를 지켜보며 고통스럽게 확인한 사실 역시 한국 사회에는 진정한 의미의 진보/보수, 좌/우가 없다는 것이다. 좌우 대립은 위아래의 격차를 줄이려는 정치적 경쟁의 산물이다. 그런 경쟁은 한국 정치에서 보이지 않는다. 한국 정치는 실체 없는 좌/우가 맞서며 갈등해온 가상현실에 가까웠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존의 진보/보수 전선은 해체, 재구성되어야 한다. 우리가 붙들고 싸워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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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안정치공간 '모색' 온고지신 ① 주류 정당 속 진보정치의 굴곡 - 영국 노동당과 모멘텀 중

2) 여기서 '진보'는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을 칭함

3) 계층(고소득-중소득-저소득)을 나누는 기준에는 경제적(가계소득), 사회문화적 차원이 있으며 한국은 계층과 계급을 혼용해서 사용함

4) 한국의 선거정치, 강원택, 2020

5)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1대 대통령 후보 시절 민주당을 중도보수로 규정함

6) 노동조합과 전통적인 좌파조직에 의한 좌-우의 대립이 아니라 '위와 아래'의 논리, 곧 '정치 카스트' 대 '인민'이라는 슬로건

7) 사회적 불만과 다양한 요구를 "인민 대 엘리트" 등의 대립 구도로 묶어내되, 그 대중을 평등·민주주의 급진화의 주체로 재구성하여 급진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정치적 전략·기획(대안정치공간 '모색' 온고지신 ② 좌파 포퓰리즘과 진보정당 - 스페인 포데모스 중)

8) 대안정치공간 '모색' 온고지신 ② 좌파 포퓰리즘과 진보정당 - 스페인 포데모스 중

9)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14377.html, 2019,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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