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 있는 주한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전쟁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나 행사에 참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광화문 전철역에서 내려 길을 걷다 보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과 기독교를 내세우며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하고, 도대체 왜 저럴까 싶어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살인을 막아야 할 이들이 살인을 부추기고, 살인자를 응원하는 것을 도대체 왜일까요.
종교 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충돌은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고토(古土)에 국가를 세운 이후 본격화했다. 유대인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저항했다. 땅 소유권 문제가 분쟁의 이유이지만 갈등의 기저엔 유대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기독교까지 포함된 '아브라함의 종교' 간 대립이 깔려 있다.
- 국민일보, '아브라함의 세 종교' 간 갈등이 이·팔 분쟁의 뿌리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관계를 종교 분쟁이란 말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종교 분쟁이라 어쩔 수 없어', '종교 분쟁은 원래 그런 거야'라고 하십니다. 종교의 차이 때문에 양쪽이 서로 죽자고 싸우는 것이고, 그런 싸움은 끝날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의 뿌리가 종교 분쟁은 아닙니다. 많은 분이 유대인이라고 하면 유대교를 믿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 법에 누가 유대인인지 규정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유대교를 믿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가 유대인인 경우입니다. 전자가 종교에 따른 것이라면, 후자는 혈통에 따른 것입니다. 유대교인으로써 열심히 기도하고, 정통 유대인 방식의 옷을 입고, 시나고그(유대교 교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유대인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건국을 주도했던 유대인은 세속적인 유대인이었고, 이들 가운데는 동유럽 출신의 사회주의자도 많았습니다. 지난 10여 년 사이 이루어진 이스라엘 유대인 대상 여론조사를 보면,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신을 세속적 또는 비종교적이라고 대답합니다. 이스라엘=유대인=유대교와 같은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겁니다.
시오니즘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국가를 세우자고 했던 운동을 시오니즘 운동이라 하고, 시오니즘 운동을 지지하거나 이에 참여하는 사람을 시오니스트라고 합니다. 시오니즘 운동은 종교 운동이라기보다는 세속적인 민족주의 운동입니다.
가자에서는 집단학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수만 명의 사람이, 그것도 무고한 사람들이 살해되고 있습니다…유대교(Judaism)와 시오니즘(Zionism), 반시오니즘(anti-Zionism)과 반유대주의(anti-semitism)를 혼동하면, 마치 모든 유대인이 이런 일을 지지하거나, 그 일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반시오니즘은 반유대주의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대교는 '종교'이고, 시오니즘은 '정치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절대로 동일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유대교 랍비 데이비드 펠드먼이 터키 언론 TRT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유대인 가운데는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나는 유대인이지, 시오니스트는 아니다'라고 합니다.
오랜 세월 팔레스타인 땅에는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이 다수를 이루었습니다. 거기에 기독교인과 유대인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팔레스타인인을 추방하고 학대한 것은 대대로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아온 유대인이 아니라, 19세기 말부터 유럽에서 몰려온 시오니스트로서의 유대인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팔레스타인인이 맞서 싸운 것도 유대교인이 아니라 시오니스트로서의 유대인입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가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공동체 중 하나의 터전이다. 가자는 395년에 주교가 된 포르피리우스(가자의 성 포르피리우스)의 지도 아래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가자교회는 407년 4월 14일 부활절에 봉헌되었고, 442년에 포르피리우스에게 헌정되었다. 이 교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운영 중이며, 전쟁 기간 내내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비극적이게도 2023년 10월, 이 복합단지는 이스라엘 폭격에 맞아 예배당 인접 건물이 무너져 열여덟 명이 목숨을 잃었다.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에서 목사로 일하고 있는 문터 아이작이 쓴 <왜 세계는 팔레스타인 제노사이드에 침묵하는가?>의 일부입니다. 문터 아이작의 말은 오랜 시간 가자 지구에 기독교가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오리엔탈리즘>, <문화와 제국주의> 등의 책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는 예루살렘의 기독교 집안 출신입니다.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전선(PFLP)'을 창설한 조지 하바쉬도 기독교인입니다. 종교 분쟁이 필연적이라면 가자 지구에서 그 오랫동안 기독교 교회가 자리할 수 없었을 것이고, 조지 하바쉬가 팔레스타인 조직의 대표가 될 수도 없었을 겁니다. 팔레스타인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 증거이기도 합니다.
성 포르피리우스 교회를 파괴한 것은 팔레스타인 무슬림이 아니라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의 교회를 파괴한 이유는 그것이 기독교인의 것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것이 팔레스타인인의 것이기 때문에 파괴한 것입니다. 가자 지구에 있는 것이라면 이슬람 사원이든 기독교 교회든 모두 파괴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의 뿌리에는 시오니즘이라는 배타적이고, 호전적인 유대 민족주의 운동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
저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고, 신의 존재도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종교를 갖는 것이나 신의 존재를 믿는 것에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거부하는 건 종교와 하느님의 이름을 내세우며 살인과 약탈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 하나가 조르주 루오의 <교외의 그리스도>입니다. 저는 기독교인이 아니어서 그리스도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모릅니다. 그저 제가 이 그림에서 받는 느낌은 어떤 한 사람이 밝고 빛나는 곳에 있지 않고, 어둡고 외진 곳에서 작고 여린 생명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하루에 한두 번 기도합니다. 새벽에 잠깐 깨거나 한낮에 밥상 앞에 앉거나, 저녁 무렵 피아노 학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이 벌이고 있는 잔혹한 살인과 파괴가 하루빨리 멈추길 기도합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누리길 기도합니다. 저 자신이 환하게 빛나는 곳에서 드러나기보다, 어둡고 외진 곳에서 흔들리는 생명과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