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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조종사, 심심(心心)치유현장에 불시착하다 - 하효열

posted Dec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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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협동조합의 주요사업의 하나가 심심心心프로젝트(이하‘심심’)이다. ‘심심’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해고노동자, 장기투쟁사업장의 구성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을 나누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하효열 조합원은 ‘심심’ 프로젝트의 준비모임에서부터 참여해,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이력은 조금 특별하다. 대한항공 조종사였다. 1993년에는 대한항공의 민간출신 조종사 탄생과정을 다룬 MBC인간시대(당시 대표적인 휴먼다큐였다) 주인공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대한한공 ‘조종사 노동조합’을 설립, 파업을 주도해 2001년 해고되었다. 요즈음 그는 자신을 ‘치유활동가’라고 말한다.

- 심리상담 전문가이시잖아요? 치유활동가와 어떤 다른 점이 있나요? 
치유활동가는 현장에 있는 치유자죠. 상담실 밖으로 나온, 몸이든 마음이든 현장에 있는 치유자.   


하효열 조합원의 직함은 여러 개다. ‘심심’ 운영위원 외에도 와락치유단원(얼마 전까지 단장이었다. 와락은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가 중심이 되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구성되어 지금까지 고통 받는 우리 사회 현장에서 치유활동을 하고 있다),  치유활동가집단 '공감인'의 대표,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通)통(統)톡(talk)’ 운영위원장도 맡고 있다.

- 단장, 위원장, 대표.. 직함이 예사롭지 않다. 현재 4단체에서 일하시는데 그 수입은....
빵 0 (제로)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빵’이란 답이 ‘하하’ 웃음소리에 묻혀 나왔다. 고액연봉의 전문직 조종사에서 수입 0원의 현장 치유자의 길에 이르기까지 그 여정은 어떠했을까?  길목협동조합의 ‘심심’ 프로젝트에 대해 그는 어떤 의미와 기대를 갖고 있기에 열심을 다할까? 사회 활동가, 해고 노동자... 그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심심’프로젝트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과 어떤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일까?

 

 

 

하효열6_수정.jpg

 


- 어떻게 조종사가 되셨나요?
대한항공에 들어간 거는 수습부터 포함하면 1991년이에요. 대한항공 제주비행훈련원이라고 일반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을 조종사로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거기에서 2년 동안 훈련을 받고 조종사가 되었죠.

1993년에 대한항공 부기장으로 일을 하게 되는데 하다보니까, 대한항공이라는 기업이 뭐랄까 관료화, 가부장적인 기업문화... 전형적으로 재벌 기업의 안 좋은 점은 다 가지고 있어요. 게다가 당시 조종사라는 직군자체가 대부분 군에서 훈련을 받으신 분들이 많아서, 여기도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있었던 거죠.

이 상태로 계속 가면 내가 별로 일하고 싶은 직장은 아니겠다 싶어서,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노동조합일 수 있겠다 싶어서 2년을 준비했지요. 우리가 학생운동세대잖아요 내가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게 뭔지는 알지요. 제 아내는 학생운동을 세게 했고. (‘심심’의 치유활동가 홍정연 조합원이 그의 아내다.) 


- 조종사노조를 설립하는데 2년 동안 준비를 했다고요?  
제주비행훈련원 출신들끼리 모임이 있어요. 이름이 웃긴데 ‘제비회’예요. ‘제비회’ 4기 회장단에 제가 부회장을 했는데, 회장하고 둘이서 한 2년 준비했지요. 당시 조종사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는데 외부적으로 두 가지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1) 당시 조종사는 신분이 기장이자 가스총을 관리할 수 있는 청원경찰이었어요. 청원경찰은 준공무원이기 때문에 그 때는 노조를 만드는 것이 위법이라는 거였죠. 사장이 추천하면 경찰서장은 임명장만 줬는데 말입니다. 어이없는 일이죠?

2) 조종사는 인사권이 있는 ‘사용자’이기 때문에  조합원 자격에서 제외 되었지요. 조종사는 기항지에서 승무원이 이탈하거나 사고가 생겼을 때 운항을 위해 기장이 현지에서 채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가 아니란 거죠.

인사권 관련 논란은 금방 없어졌어요. 그런데 청원경찰이라는 신분 때문에 노조 인가가 안 나는 거예요. 원래 허가사항이 아니라 신고사항인데, 신고했다는 접수증을 안내줬습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먼저 조종사 협회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노동조합으로 이어졌죠.


- 군에서 훈련한 조종사들이 많았다고 하셨는데..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조종사들은 같은 회사에 다니지만 파업을 하지 않으면 서로 볼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1/3은 외국에 나가있고, 1/3은 공중에 떠 있고, 1/3은 집에서 자고 있지요.

그 즈음 대한항공 항공기 전파사고가 4번 연속 일어납니다. 1997년 괌 추락사고, 1999년 3월 포항공항 기체 두 동강난 사건, 1994년 4월 중국 상하이 추락사고, 1999년 12월 대한항공 8509편 영국 런던 추락사고.. 사고의 날개~ 불명예스런 꼬리표가 붙었지요.

사고가 날 때마나 조종사들이 욕을 먹어요. 회사에서는 조종사들을 질책해요 사회적으로도 비난을 받아요. 조종사들은 억울한 거죠. 시스템을 만들어야지 ,,, 예를 들면 급커브 길을 만들어놓고 그 앞에 ‘조심하세요’ 써놓으면 되냐는 거예요. 길을 똑바로 만들어야지. 조종사들이 이렇게, 이렇게 하면 사고가 난다는 것을 늘 얘기해왔는데, 회사는 그 말을 안 들었던 거죠. 조종사들이 노동조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지요.


- 수 많은 목숨을 앗아간 것이 잘 못된 시스템이었다는 거네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지금 대한항공에서 일하는 조종사들은 월 비행시간을 85시간, 연1050시간을 안 넘어요 그 당시에는 월 150시간, 항공법상의 허점을 이용해 연 최대 1500시간까지 하는 게 비일비재 했지요.

그뿐만이 아니라 야밤에 가서 거기서 잠만 자고 다시 그 비행기로 돌아옵니다. 빨리 돌아온다는 의미의 퀵턴, 2박3일 동안 그런 걸 하고 나면 사람들이 속칭 맛이 가는 거죠. 승객들은 전혀 모르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나마 갔다가 오는 것은 괜찮은데 갔다가, 갔다가, 갔다가 오는, 길게 한 바퀴 도는 스케줄이 꽤 많이 있었어요. 괌 사고 때도 블랙박스를 뜯어보니까 내려가면서 ‘힘들어 죽겠다’ 그 얘기를 하거든요.

시차도 바뀌고 기후도 바뀌고... 참 힘든 일입니다. 실제로 당시 조종사들이 퇴직하고 나면 몸이 급격히 나빠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당시 퇴직자 모임에 65세 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는 소문이 파대했어요. 아파서 못나오거나 죽어서 못나오거나. 회사 다닐 때는 1년에 두 번 신체검사를 하는데 거기에서 건강에 이상이 발견되면 그만 둬야 하니까 관리를 했는데 그만두면 확 나빠지는 거죠. 골병들었다는 거죠.


- 조종사노조가 만들어지고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노조가 생긴지 3년 정도 지나고 나면, 비행시간은 반으로 줄어들고 임금은 배로 올라가요. 그리고 대한항공 주가가 뛰어요. 왜냐하면 주식투자하는 사람들이 아는 거예요 아 이제는 사고 안 나겠구나. 우리 파업하면 항상 주가가 뛰어요.

- 언론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파업을 한다는 비난이 많았습니다.
처음 파업 때는 안전문제가 주된 이슈였습니다. 세 번째 파업에 들어가면서 억대연봉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저는 언론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국의 항공사나 한국의 항공사나 똑같은 비행기에다, 똑같은 기름을 쓰고, 똑같은 항로를 비행한다. 항공료도 평균적으로 같다. 그런데 미국 조종사는 2천을 받고 우리는 5백을 받는다. 그러면 그 남는 돈은 다 어디로 가는가? 조씨 일가에 간다. 재벌의 배를 불리는데 들어가고 있다. 본질을 흐리지 마라.

- 조현아 땅콩회항 사건 기사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드셨을 것 같은데요....
기록에 남아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지 그 비슷한 일은 늘 있었던 거라고 봐요. 비행기는 게이트를 떠나고 나면, 원래 다시 안 붙여요 게이트를 뗐는데 다시 붙이라고 한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기록에 남는 거죠.

그동안 조현아 부회장만 그랬을까요? 일반노조에서 객실승무원 지부가 반짝 민주화가 되었던 때가 있었어요. 3년 정도. 주모자 6명이 해고되었다 3명만 복직되었는데... 노조가 그 때와 같이 민주노조였으면 땅콩회항 사건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었겠지요.


하효열 조합원은 2000년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를 설립, 파업을 주도하다 2001년 해고되었다, 이후 노조의 교육선전국장으로 활동하다 2005년 조종사노조를 떠난다. 민주노조를 이끌다 해고된 일반노조의 승무원들과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일명 ‘대해동–대한항공해고자동지회’를 결성해서 활동한다. 그러나 조종사, 승무원, 일반 사무직, 비정규직...모두 같은 노동자로서 함께 싸울 수 있는 ‘연대’를 이루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2008년 그는 ‘대해동’에서의 활동을 접게 되었다.
 
- 일은 반으로 줄고 연봉은 두 배로 뛰고 ... 조종사들의 조건이 참 좋아졌는데 ...사실 희생하신 거잖아요? 문든 문득 내가 이러려고  희생했나 싶은 마음이 생길 때도 있엇을 것 같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섭섭하거나 억울하거나 하는 마음이 없어요. 돈에 대해 욕심이 있었으면 노조도 안했을지도 모르죠. 무엇보다 노조에서 해고자들의 생계를 보장하는 희생자구제기금이 있어서 그런 마음이 안 들었을 거예요. ‘심심’이든, ‘와락’이든, ‘통통톡’이든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니까요.

그런데 조종사, 승무원, 일반노동자, 비정규직이 함께 하는 연대를 이끌어내려 했던, 그러나 이끌어낼 수 없었던 그 과정에서 불편한 마음, 힘든 마음은 여전히 풀어가야 할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프리리스닝_하효열_수정.jpg

 


치유활동가들의 연대 - 심리상담 전문가. 치유활동가로서 하효열 조합원의 화두는 여전히 ‘연대’다. ‘심심’운영위원, ‘와락’ 치유단, 서울시 치유활동가집단 '공감인'의 대표, 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通)통(統)톡(talk)’ 운영위원장.. 그가 보수는 없고, 책임은 무거운 일들을 마다않고 하는 이유다. 

- 심리상담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학교 다닐 때부터 심리학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심리학 교수 분을 소개받아서 찾아갔어요. 그런데 ‘심리 상담을 하라’고 조언하는 거예요. 상담은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데, 심리학은 재미있지만 학문으로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다... 그 때가 45세였으니까.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조종사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인 거예요. 조종사는 기계와 대화하는 사람이잖아요 이거는 사람하고 대화를 해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심리상담 전문가들 중에 남자들이 많이 없잖아요. 


- 현장 치유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심리상담 대학원에 갈 때부터 나는 노동상담과 장애아 부모 상담을 하겠다고 생각 했어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노동상담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을 때,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크레인 고공투쟁 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과 조합원들을 응원 방문을 위한 2차 희망버스를 탔습니다.

버스 안에서 김진숙 씨가 쓴 책을 강매 당했어요.(웃음) 투쟁기금 후원 차원에서... 고양시에서 영도까지 내려가는 6식간 동안 그 책을 읽었는데, 내용 중에 ‘김진숙 위원이 ‘와락’의 정혜신 선생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때 ‘아, 이거다’ 싶어, 정혜신 선생에게 전화해서 함께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지요. 그 때부터 ‘와락’에서 현장 치유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 심심은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어요?
길목협동조합 채운석 실행위원이 그 당시 향린교회 사회부 부장이었죠, ‘노동자 심리치유에 대해서 강의를 듣고 싶다’고 해서 했습니다. 강의를 하고나서 뒤풀이 겸 여담 나누는 시간에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물었더니, 사실은 <와락>처럼 한번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럼 나도 관심이 많으니까 ‘노동자적인 시각이 들어가 있는 치유집단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함께 하게 되었지요.

- 기독교인이 아니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선교센터 길목협동조합에서 하는 프로그램인데 ..함께 하면서 혹시 종교적인 정서 때문에 불편함은 없었나요? 
전 사실 종교는 없어요. 심지어 기독교에 관해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 채운석 조합원이 조계사 앞에서 연행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에 항의해 향린교회 교우들이 종로경찰서 앞에서 통성기도회를 열었을 때 저도 함께 했습니다. 그 기도회를 보면서 이래야 된다, 신의 이름을 빌려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어떤 것들을 하고, 그 마음을 신에 의지하는 분들이란 생각을 했어요. 마음에서 우러나는 일을 하는 건강한 사람들. 저한테는 그것이 굉장히 신선했죠. 심심에서 주도적으로 연대를 이끌어낸 ‘통통톡’에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계의 치유단체들이 함께 하고 있지요.

 

 

심심모임하효열_수정.jpg

 


- ‘심심’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마음에 두셨던 점들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처음 생각했던 것은 노동활동을 하다보면 제일 힘든 게 간부들이에요. 투쟁을 하다보면  간부들끼리 부딪치고, 간부와 조합원들하고도 갈등이 생기고 그러면서 서로 오해하고 힘들어지는 면이 많습니다. 노조 중앙을 보더라도 총연맹이나 연맹을 보더라도 굉장히 갈등의 골이 깊어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그 문제 하나하고 쌍용자동차처럼 장기투쟁 할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저들이 그 상처들이 좀 경감이 될까 이런 두 개가 관심이었습니다.

- <와락>치유 단원으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치유활동을 해오셨는데... 여전히 그 접근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와락>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투쟁 노동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하든 치유를 해야 겠다.’ ‘치유가 필요하다’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환기가 되었어요. 그리고 정혜신 선생이 하는 프로그램은 굉장히 좋은 방식입니다. 그런데 치유활동을 하면서 저 자신이 해고 노동자로서 체험적으로 느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담자와 내담자 혹은 환자라는 일반적인 상담실에서의 관계를 넘어서, 노동자적인 시각에서의 접근, 만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상담자와 내담자’ 혹은 ‘치료자와 환자’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노동자로 만나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네. 단순히 환자 취급을 안 한다는 거죠. 노동조합 분들, 사회단체 활동을 하는 분들. 고공농성 하시는 분들, 장기 투쟁하시는 분들.. 사실 뉴스에서 만나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정리해고, 부당노동 등등으로 내몰리기 전에는 그들도 평범한 직장인, 평범한 아버지, 어머니 평범한 아들, 딸들 이었거든요. 우리처럼 자기 생존을 위해서, 자기 삶을 위해서 하는 활동하는 분들이죠. 그 과정에서 사람이 힘들어지거든요. 힘들었을 때 그걸 이상하게 보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 힘듦을 서로 나누고,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갈 것인가, 어떤 방법이 있는가, 이걸 찾아나가는 것을 생각해요

- 그동안 현장에서 치유활동을 하면서 그 방법들을 찾으셨는지? 
‘노동상담’, ‘사회활동가 상담’ 그 자체를 생각해 보면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거기에 개인심리상담이 들어올 수도 있고, 여행가는 방식이 있을 수도 있고, 함께 투쟁을 해서 권리를 뺏어간 사람들에게 뺏어 오는 것도 방법이고...

그래서 말이 ‘치유’지 ‘심리치료와 심리상담’이라는 말에 가둘 필요가 있을까? 명칭은 ‘심리상담’, ‘심리치유’라고 하자. 그래도 해야 할 활동은 ‘내가 노동자로 살아 왔던 그 때 정말 필요했던 거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노동자로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물어보고, 같이 해결해나가는, 같이 삶에 맞닥뜨려 나가는, 이런 방식으로 만나는 것이 가장 치유적인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심심이 거기에 있지 않나요?


- 심심이 거기에 있나요?
노경선 박사님과 심심 스터디를 하다모면 사람들이 현장이야기를 하거나, 책 이야기를 하는데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은 상담 장면 이야기 하고, 이러다가 보면 현실에서 개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끊임없이 만날 수 있게 하는 거죠. 질문하고 질문에 반응하고, 그 행위 하나하나에 삶이 녹아있어요 그냥 수다가 아니잖아요. 급변하는 세상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서 느꼈던 것들 내 놓고, 지금 여기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바뀌었고, 하는 것을 가감 없이 나눌 수 있는 창구 역할을 ‘심심’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직접적으로 여쭙겠습니다. 배고픈 아이들에게 한 끼 밥을 나누는 것, 백혈병을 않는 아이의 건강을 찾아주는 것...내가 무엇을 위해 후원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해고 노동자, 사회활동가 그 누구의 아픔을 치유하는 ‘심심’의 일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과는 어떤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지본주의 생존질서 속에서 우리가 자신의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회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자신의 삶이 살짝살짝 분리될 때가 많다는 거예요. 이건 그냥 나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인 활동이야. 내 삶은 이거야. 나는 돈 벌어서 가족들 먹여 살려야 해. 그래서 때로 약간 비겁해지더라도 조금 더 벌어야 되고, 불의에 살짝 눈을 감아야 되고,.. 그런데 마음은 무엇인가 가치 있는 사회적인 활동과 자신의 현실의 삶- 이것을 붙이길 원해요 이 둘을 어떻게 하면 가깝게 할 수 있을까. 저는 ‘심심’이 그 둘을 가깝게 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우리와 비슷한 고민들, 아니 똑같은 고민을 갖고 싸우는 사람들이거든요 우리의 문제를 우리 대신 싸워주는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오늘 우리의 현실이 있고, 또 내일 우리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되지’라고 반문하게 해주는 작업‘,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해주는 작업’ 자체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 보고 있거든요.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심심이.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어린왕자 중에서). 해고 노동자, 조종사 하효열이 불시착한 심심心心 치유현장이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에 우리가 바꾸고 싶은 세상, 그 희망의 길목과 통하기 때문이 아닐까,  
 
“저는 ‘심심’이 ‘내가, 우리가 정말 살고 싶은 세상’과 ‘내가,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 이 두 영역을 연결시키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고, 서로 끌어주고, 도움도 주고 그리고 ‘당신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어요?’ 물어도 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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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21.08.27 Views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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