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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바보의 예수살기 – 石泉 홍창의

posted Sep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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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바보의 예수살기 – 石泉 홍창의

길목협동조합 웹진 [길목인]이 창간 1년을 맞았다. 이번에는 어느 조합원을 만날까...조금 긴 편집회의 끝에 길목에서 가장 어른이신 홍창의 조합원(96세)을 만났다.     

사실 홍창의 조합원은 길목인 창간호에서 만나고 싶었던 인물이었다. 그를 만난다는 것은 사회선교센터 길목협동조합의 DNA라고 할까, 뿌리를 탐색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인터뷰를 사양했다. ‘요즘 활동이 없어서 특별히 할 이야기도 없고, 예전처럼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유였다. 이번에는 ‘창간 1년을 맞은 [길목인]을 축하해주셔야 한다’는 다소 억지 명분을 내세웠다. 그가 쓴 글들을 보면서 홍창의 조합원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눈치 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일‘이라는데 마음 약하다는 것. 역시 통했다. “길목협동조합들을 위해서...[길목인] 1년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사실 70대, 80대 어른들을 인터뷰한다는 것은 취재하는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세월, 자신의 의지로 숨길 수 없는 생의 맨얼굴, 진심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고나면 대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애잔한 마음 무거움, 생에 대한 어떤 연민을 느끼고, 때로 이전에 가졌던 이미지와 사회적인 명성에 대한 정서적 배반으로 마음 힘들었던 경험도 적지 않다. (이런저런 일로 필자는 우리사회 각 분야의 원로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60여명 정도다.)

홍창의 조합원과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이번 인터뷰에서 어떤 이야기를 얼마나 풍부하게 나눌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의문이요 과제였다. 물론 한편의 대하소설도 쓸 수 있을 그의 삶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도 숙제였지만. 그래서 생각한 것이 과거 그가 70세를 넘기며 펴낸 저서 ‘낙엽’과 90세를 맞으며 펴낸 ‘마음의 고향’을 참고해서 인터뷰 답변을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런 계획은 인터뷰 하면서 뭔가 틀어지고 있음이 감지되더니. 녹음한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면서 180도 바뀌었다. 이번 인터뷰를 가감 없이 그대로 싣기로 했다. 이 또한 귀한 삶의 여정에 대한 기록이라 생각했다. 이번 인터뷰 답변(
파랑색)과 구별하여 홍창의 조합원의 삶과 생각을 이해하는데 참고할 수 있도록 과거 그의 글에서 발췌, 인용(녹색)했다.
    
홍창의 조합원은 아들 내외(홍영진, 김명화 조합원)와 함께 살고 있다. 2018년 9월 18일 오후 집으로 방문해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며느리 김명화 조합원이 함께 하며, 이해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선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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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주어진 대로 산다

그의 책에 소개된 내용을 종합해 홍창의 조합원의 이력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1923년 황해도 황주군 영풍면 영풍리 긴골,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한학자이셨던 할아버님의 권유에 따라 민족학교인 평양숭실중학교에 진학했다. 중2 때 숭실학교는 신사참배 반대를 이유로 폐교되고, 평양 제3공립중학교에 강제편입 되었다. 이때 동경제대 출신의 일본인 선생님이 동경제대, 경도제대 입학이 보장된 ‘제국대학 예비학교’ 중 하나였던 야마구치고교에 진학할 것을 권유, 일본으로 유학 갔다. 고교시절부터 가정교사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에 보탰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선배가 동경제대 보다 경도제대가 좋겠다고 권유해서 경도제대 의학부로 진학했다. 당시 동경제대(도쿄대)는 관료지향적인 학풍으로 제국주의 침략정책에 적극지지입장이었던 반면 경도제대(교토대)는 상대적으로 비판적 지성도 숨을 쉴 수 있는 분위기였다 한다. 1945년 5월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로 전학, 서울에서 해방을 맞았다. 194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제1회 졸업생(53명)이 되었다. 이후 1988년 정년퇴임까지 줄곧 소아과 의사로서 교수로서 서울대학병원과 서울대의과대학에 몸담았다. 서울대학병원장도 지냈다. 서울대 정년퇴임 후 당시 신생 대학이었던 울산대 의과대학에서 5년 동안 한국 의학교육을 개선하고 새로운 기틀을 다지는 역임을 다하고 교육자로서 두 번째 퇴임을 했다. 소아과 의사로서 1998년까지 서울아산병원에서 환자를 돌봤던 그는 86세까지 현역이었다.


Q: 요즈음 어떻게 지내세요. 어떤 일을 좋아하세요? 
A: 걸으면서 생각하면서, 사람들 보면서 산책하는 것이 좋아요. 아이들도 웃고 어른들도 웃고 사이좋게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산책 하는 거 좋아요.  

홍창의 조합원은 하루에 한 시간은 산책을 한다. 걸음과 자세가 늘 꼿꼿하다. 그래서일까. 그가 가장 많이 듣는 물음이 건강비결이다.

Q: 아주 건강하세요. 특별한 건강비결 있으세요?
A: 비결이라는 게 없어요. 특별한 게 없어요. 그저 주어진 대로 사는 거지.. 요즘엔 며느리가 특별히 식사를 잘해주니까.

“나는 지금까지 주어지는 대로 물이 흘러 내려가듯 살아왔다. 주어진 처지에서 마음 편히 살아왔다. 이것저것 따지고 재빠르게 대응하며 동료들과의 경쟁 속에서 악착같이 도전하면서 살아온 일이 별로 없었다. 육체적인 체질이나 주위의 환경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어느 정도 내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공연한 도전, 경쟁심은 우리 마음에 스트레스만 준다. 마음이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우리 건강에서 가장 해로운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화제에 오른 배우, 가수, 운동선수들의 이름을 잘 모른다, 주위에서 돌아가는 정보에도 캄캄하다 이것은 세상 사람이 말하는 바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건강의 비법을 물어본다면 나에게 특별한 방법은 없고 억지로 말한다면 ‘바보가 가질 수 있는 마음의 편안함’이라고나 할까?
지금 일생을 지나고 나서 회고 해보면 이렇게 주어진 대로 마음 편하게 살아온 것이 결과적으로 내게 건강을 준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저 주어진 대로 그곳에서 마음 편하게 그러나 최선을 다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건강법이라고나 할까?” 石泉


Q: 어린 시절부터 천재 소리 들으셨을 것 같아요?
A: ....
Q: 학교에서 전교 1등 하셨을 것 같아요?
A: .....

가볍게 이야기를 풀려고 던진 질문인데... 홍창의 조합원은 쉽게 답변하지 않았다. 다행히 며느리 김명화 조합원이 유쾌한 웃음과 함께 이야기를 이어주었다. “전교1등이 아니라 황해도에서 1등이죠.”

A: 도는 아니고... 시골학교니까..
 

전언에 의하면 홍창의 조합원이 일본 야마구치고교로 진학하도록 권유했던 선생님이 경성제1고등학교(경기고, 70%가 일본학생)에서도 가르쳤는데, 스스로 잘한다고 오만한 일본학생들에게 시골 학생 홍창의와 비교하며 훈계했다고 한다. (변형윤 교수(전 서울대 경제학과)가 경성제1고 시절 수업시간에 직접 경험한 이야기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전국구 인재가 되었던 것이다, 김명화 조합원이 일화를 좀 더 이야기 하자 홍창의 조합원이 조용히 말했다. 

A: 며느리는 항상 나를 좋게 평가하니까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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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홍창의 – 병은 완치할 수 없어도, 생은 치유할 수 있다

Q: 의사로서 보람 있었던 일이라면 .. 

A: 내가 그래도 그 사람의 마음과 같이 통해서, 그 사람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시 희망을 갖고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아픈 몸을 가지고도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줄 수 있었다‘는 것이 보람 있는 일이지요.

만성 영양장애가 있던 아기가 심한 급성 설사를 하게 되면 단순한 설사에 비하여 예후가 나빴다. 수혈이 필요한 경우에도 혈액은행이 없어서 혈액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내 자신의 피를 뽑아서 수혈하였더니 그 애기가 절망상태에서 호전하기 시작하여 마침 내 살릴 수 있었다 그 때 느꼈던 기쁨은 지금 회상하여도 귀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의 담당의사라는 것은 진찰에서 생화학 검사 및 치료에 이르기까지 그 환자에 대하여 전적이니 책임을 가지고 있었다. 피가 없으면 자기 피를 뽑아주기도 했다.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가 더 밀접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분화되고, 기계화됨으로써 환자와의 관계도 부분적이고 기계적으로 되어버렸다는 느낌이다. 石泉

Q: 의사의 소명이라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A: 자기가 어떻게 하면 그 환자의 마음을 고쳐주고 희망을 줄 수 있나.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한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나이가 많이 들어서.. 단어도 까먹고 기억도 안 나고 그래요. 괜히 실망감만 주는 거 같아서 미안해요.


50년간 나에게 치료를 받고 떠나간 많은 환자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많은 어린이들이 병을 치료받고 어른이 되었으나 과연 인간적으로는 얼마나 건강하고 보람 있는 인생을 보내고 있을까? 병을 치료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가 바람직한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의사의 직업은 결국 목회(목회)와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병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야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병들은 우리가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는 없으나 그 병을 가지고서도 주어진 여건 안에서 보람 있는 생을 보내게 할 수는 있다. 그것이 의사가 해야 할 더 중요한 역할이다. 石泉


Q: 요즈음 병원이나 의사는 환자를 돈으로만 느낌이 많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A: 그런 면이 없지 않지요. 다는 그렇지 않지만.

Q: 왜 갈수록 그렇게 될까요?
A: 의사는 자기가 이상을 가지고 하는 것보다도, 환자를 도와주어야겠다는 것보다도 ‘환자를 통해서 자기 생에 필요한 것을 얻겠다’하니까 그렇게 되지요.

Q: 선생님은 ‘환자를 통해서 뭔가 얻겠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A: 환자를 통해서 얻겠다는 것은.. 이제 대학이 연구기관이고, 새로운 치료법을 찾는 것이 대학의 사명이니까 질병을 통해서 새로운 치료법을 찾는 것이지요. 꿈에도.. 괴로운 환경을 고쳐주고 싶어 하는 것이 의사로서 소원이죠.

동양에는 다음과 같은 명언이 있습니다. 의사를 4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첫째; 병을 고치지도 못하고 환자를 괴롭히는 의사(惡醫), 둘째; 병만 고쳐주는 의사(小醫), 셋째; 병과 병든 인간을 다 고쳐주는 의사(中醫), 넷째; 병든 인간과 그들을 병들게 하는 사회를 다 같이 고쳐주는 의사(大醫). 여러분들은 이 네 가지 중에서 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학생은 적어도 중의나 대의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石泉

여러분은 그저 안이하게 환자를 보며, 여기서 생기는 수입으로 편안히 가족들과 함께 사는 데 만족하는 그런 의사가 아니라 여러분이 마지막 순간에 눈을 감으면서, 나의 일생은 허망하지 않은 것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눈을 감을 수 있는 그런 의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1992 石泉 


홍창의 조합원은 한국의학계의 개척자였다. 1970년 그가 집필한 최초의 한글 소아과의학교과서는 증보를 거듭하며 오늘에도 쓰이고 있다. 서울대학병원에 소아병원 건립, 한국에 가정의학과를 창설, 인의협(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설립 당시 비민주적인 사회적 압력에 대한 방파제 역할을 하는 등 의사로서, 교수로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을 했다. 그가 해온 일들을 돌아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한다. 홍창의 조합원은 한 번도 자신의 이해관계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나 교수로서는 학생의 편에서, 의사로서는 환자의 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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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병원 건립에 대하여) ‘어린이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다’라는 격언이 있다. 어린이들을 치료하는 데는 영양, 성장, 발달, 간호, 치료법 등에 있어서 어른과는 너무나 다른 점이 많아서 일반 병실에서 어른들과 같이 치료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예를 들어 일반외과 정형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등 병실에 어린이 환자가 어른과 같이 입원해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石泉

(가정의학과 창설에 대하여) 의학이 세분화 하면 할수록 진료는 단편화(fragmentation)되고, 비인간화(depersonalization) 되고, 의료는 점점 필요 이상으로 고급화 되어 의료비의 상승을 초래하여 재정의 압박을 가져오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1970년대 초 심각하게 대두되어 결국 거국적인 연구 끝에 가정의 제도가 생기게 되었다. 石泉

(의학교육개선에 대하여) 하루 빨리 교수 중심의 교육에서 학생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모든 학생을  다 자기와 같은 전공을 할 학생으로 착각하지 말고 앞으로 여러 방향으로 나가게 될 학생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점을 학생 스스로가 배우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하겠습니다. 石泉

당신의 신은 어디에 있는가?

이번에는 누구도 즉시 대합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했다. “살아오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그런데 뜻밖이었다. 홍창의 조합원은 특별히 고민하지 않고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Q: 지금까지 가장 잘 한 일을 꼽으시라면... 그 첫째는 무엇일까요?
A: 기독학생들과 모임을 갖고 서로 사귀고, 같이 지내고 했던 일이라 하겠네요.
 

Q: 그럼 둘째는요? 
A: 교회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고, 교인들을 통해서 같이 즐겁게 사귀면서 지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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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셋째는요?
A: 역시 우리 교회 기독인들이 같이 어울리고 함께 하는 것

그가 말한 기독학생들 모임은 서울대학시절 기독학생회에서 만난 신앙의 동지들인 일신회(一神한 하느님, 一信한 믿음, 一身한 몸), 그가 말한 우리교회는 향린교회다. 홍창의 조합원을 포함해 6인의 믿음의 동지들이 신앙공동체를 세우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1953년 향린교회를 창립했다. 지금도 변함없이 주일을 지키고 있다. 그의 일신(一神한 하느님, 一信한 믿음), 그가 한결같이 섬겨온 한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살아있는 사람의 눈은 초점을 갖고 있다. 정신이 몽롱한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희미하고 동질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께서도 초점을 갖고 목회를 하셨다. 주님의 초점은 굶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감옥에 갇힌 자에 맞춰져 있다. 우리교회는 여러 가지 구색을 갖춰놓은 백화점 같은 교회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이 시대에 있어서의 향린교회의 초점은 주님이 그러했듯이 이 땅의 고통 받고 있는 민중과 고난을 같이하며 하느님의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참과 거짓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참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구조악의 원인이 되어있고 고통을 주고 있는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어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는 일이다. 즉 향린교회의 초점은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선포하고 구현하는 일이다. 石泉

Q: 과학의 세기, 인간의 병을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신을 믿는 다는 것에 대해 회의를 갖은 적은 없으셨나요?
A: 과학이란 게, 인간이 알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으니까 과학 자체가 한계가 있는 거죠. 신의 존재는 과학을 뛰어넘는 거니까요.

슈바이처는 “철저한 회의를 거치지 않은 믿음은 참다운 믿음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파스칼은 과학자이면서 단순한 신앙인이기도 했습니다. 과학과 신앙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理性)이 가장 이성다운 것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신은 과학의 대상이 아닙니다. 과학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자기의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과학이 자기의 한계를 모르고 자기의 잣대를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할 때 그것은 이미 과학이 아닙니다. 石泉

Q: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A: 그 신이 어드런 신인지 그게 문제지요. 사람이 생각하는 신이라는 건 그 사람 생각 안에서의 신인데... 사람이 어드런 거라고 정의하면 그 사람의 생각이 들어가는 건데.. 어드런 신을 말하는 것인지...

우리의 몸에 걸치고 다니는 옷이나 장신구는 내 몸의 살아있는 부분이 아니라 평소에는 벗어놓았다가 밖에 나갈 때만 잠시 걸치고 나가는 장신구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신은 하나의 장신구가 되어버렸다. 그리스도인에게서 하느님은 이미 죽은 것이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사형선고를 한 것보다 실제로 더 철저하게 신은 죽어있는 것이다
하늘 높은 어떤 곳에 점잖게 앉아있는 그런 신은 인간이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날아다니게 된 오늘날에는 어린 아이들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머리 안에서 생각했던 신, 철학자들이 추상해낸 신, 그런 신은 죽은 신이다. 거기에는 고양이는 고양이 모습대로 신을 만든다는 말이 타당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에게 편리한 신을 만들어내어 그것을 믿고 있다. 石泉


Q: 참 그리스도인이라 하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A: 타인의 고통을, 그 고통의 일부를 자기가 안고 덜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겠죠.

문제는 “너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고 도전하고 있는 무신론자들의 부르짖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신이 그리스도인 자신 속에서 죽어있는데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독교의 하느님은 저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 분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지극히 보잘것없는 자 안에 ‘숨어 계시는 하느님이다.
기독교의 하느님은 그의 권능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약함과 고통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낸다. 石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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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石泉)의 길, 진리는 언제나 단순한 곳에 있다

서울대 의대교수, 서울대학병원장, 여러 의학 분야의 학회장, 재단이사장 등등.. 많은 사람들에겐 한번하기도 어려운 자리들을 참 많이 맡았다. 그런데 그는 언제나 세상적인 눈으로 보는 위치에 있지 않고 언제나 고통 받는 이들 곁에 있으려 했다.  

진리는 언제나 단순한 곳에 있는 것 같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하여 흘러내려간다. 심산유곡을 흘러내리는 물은 우리 마음 속 깊이 영원의 음악소리를 들려준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언제나 자기보다 높은 곳에만 관심을 돌리고 있다. 자기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언제나 다른 곳에서부터 에너지를 빼앗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아무리 높은 곳에 있는 방대한 물도 그것이 낮은 곳으로 향하여 흘러가지 않으면 그 물은 아주 적은 양의 에너지도 발산할 수 없으며, 그 곳에 고여 있으면서 썩은 냄새만 풍기게 된다. 반대로 아무리 적은 양의 물이라 할지라도 자기보다 더 낮은 곳을 향하여 흘러 내려갈 때 남을 위하여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가난하고 내가 아무리 고통스러운 처지에 있다하더라도 나보다 더 가난하고, 나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그를 향하여 내 마음이 흘러내려갈 때 비로소 작으나마 살아있는 힘을 낼 수 있다.
단순한 삶, 어디든지 상대방의 필요에 순응하며 스며드는 삶, 낮은 곳을 향하여 흘러내려가는 삶, 이것이 물이 우리에게 주는 살아있는 교훈이다. 石泉

 
석천(石泉)은 홍창의 조합원의 아호다. 바위틈에서 솟아나오는 샘물이 아래로 흘러 내려가면서 생명의 물을 나누는 석천(石泉)은 그가 살아온 길을 말해 해주는 듯하다. 인간적으로 그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궁금했다.    

Q: 선생님께 행복이란..?

A: 저는 역시 기독교인으로 예수님의 생각을 닮고, 예수님이 자신의 희망이라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남을 즐겁게 하고, 고통을 덜어주고 그것을 얼마만큼 할 수 있는가, 그것으로 자기가 즐거움을 느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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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증손자들을 보면 어떠세요?
A: 참 좋아요. 환경이 그렇지 못하니까.. 같이 즐겁게 지내면 좋은데 많이 만나지 못하니까 아쉽지요.

Q: 증손자들이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세요?
A: 어려서는 자기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라서 결국은 예수님이 되라고 원하는 그러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젊어서야 그렇지만.. 서서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예수님이 원하는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Q: 예수님이 원하는 인간이란 ..?
A: 남의 고통을 같이 느끼면 도와주고 그러면서 기쁨을 느끼고 살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들어주는 거죠. 어떠한 환경, 고통이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 인생을 만드는 거죠. 다른 이의 고통도 함께 나누면서...

Q; 요즘 젊은 세대 중에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A: 희망이 없다고 생각함은 그건 자기의 생각이에요. 역시 그런 사람은 기독교의 본질에 좀 접촉했으면 좋겠어요. 희망이란 무엇을 가지고 희망이라고 하는지,, 희망이 없다는 건 희망이란 생각이 있어야 희망이 있다 없다 할 텐데, 희망이란 거 자체에 대한 생각이 있어야할 텐데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건가 .. 역시 예수의 진수에 접촉을 해야 할 것 같아요.

Q: 접촉해야 할 예수의 본질,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A: 인간적으로 이야기하면 사랑이겠죠. 고통 받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어야겠다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고 예수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Q: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A: 자기 입장에서 어떤 일을 해야 도움이 되겠는지,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능력을 바칠 수 있는 그런 일을 생각하길 바랍니다. ‘내가 최선을 다하면서 무엇을 바칠 수 있을까’ 생각해서 노력하길 바랍니다.

Q: 하시고 싶은 일. 희망 사항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셔요.
A: 희망 사항.. 아직도 내가 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 이제는 능력이 없지만 조금이라도 고통 받는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입니다.

기승전“고통 받는 분들에게 희망을 함께 나누는 일”
의사 홍창의, 그리스도인 홍창의, 인간 홍창의 생의 맨얼굴, 진심이다. 세상적인 모든 옷을 거둬내면 고통 받는 이들과 희망을 나누는 외길의 삶이었다.


십자가의 길은 우리의 발로 직접 걸어야만 하는 길이다. 그저 머릿속에서 그려 본다던가 멀리서 바라보면서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그 길은 외골수의 길이요 외로운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우리가 이 땅에서 서로 부축해가며 걸어가라고 예수님이 남기고 가신 길이다. 石泉

인터뷰를 마치고 집을 나오는데 홍창의 조합원이 뭔가 잊은 것이 생각난 듯 서둘러 현관으로 와서 얘기했다.

“내가 나이가 들어 예전 같지 않아..미안해요, 괜히 시간만 낭비하게 잘 하지 못해서.. 도움이 안 돼서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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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하 조합원 - 자신과 친해지고, 사랑하고, 신뢰하자 코로나 19는 사회집단과 개인생활에 우울감과 무기력 증세도 함께 감염시켰다는 말이 들려온다. 얼마 전 대통령 선거 이후론 심리적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들도 한다. 이렇듯 사회와 개인은 늘 긴장과 문...
    Date2022.04.05 Views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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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내가 먼저 행복해야 남들도 행복하게 - 김지아 조합원

    내가 먼저 행복해야 남들도 행복하게 할 수 있어요, 김지아 조합원 세상에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가끔은 까닭 없이 우울해하고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며, 닥치지도 않은 일로 걱정을 사서 한다. 특히 개인보다 공동체를 더 ...
    Date2022.03.01 Views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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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성숙해지고 강해지는 중 - 김소명 조합원

    성숙해지고 강해지는 중 - 김소명 조합원 김소명 조합원은 저와는 십 년쯤 전에 향린교회에서 한문덕 목사님의 성서 공부반을 같이 했던 공부 동무이고, 집도 가까운 이웃 주민입니다. 낯선 조합원을 만날 때의 떨림보다는 보고 싶은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다...
    Date2022.02.04 Views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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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방송인이면서 역사 관련 글을 쓰는 - 김형민 조합원

    방송인이면서 역사 관련 글을 쓰는 김형민 조합원 김형민님은 그간 길목인들에게 공감편지를 통해 친숙해진 조합원입니다. 주제는 늘 개인과 사회의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의 맛깔스런 문장과 풍성하고도 해박한 역사지식으로 흥미 있고 재밌...
    Date2022.01.03 Views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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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곁에 있는 하나님을 돕는 사람 - 김은미 조합원

    곁에 있는 하나님을 돕는 사람 –김은미 조합원 김은미 조합원이 일하는 용산구청 앞 정원은 꽃과 나무가 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반은 속이 꽉 찬 배추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원에 웬 배추? 구청 정원이라 그런가?’ 자동차들이 ...
    Date2021.12.06 Views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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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호모 아카데미쿠스, 피경원 조합원

    호모 아카데미쿠스, 피경원 조합원 피경원 조합원은 길목의 실행위원으로서 다양한 교양 강좌를 진행해 왔습니다. 향린교회에서는 안병무 읽기 모임을 결성해 이끌어왔고 첫 직장에서 지금까지 27년 째 근무하고 있는 성실한 직장인이기도 합니다. 칼퇴근을 한...
    Date2021.11.01 Views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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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보건소 산부인과에서 공공의료를 맡고 있는 고경심 조합원

    보건소 산부인과에서 공공의료를 맡고 있는 고경심 조합원 고경심 조합원은 산부인과 의사로서, 현재는 은퇴 후 보건소에서 진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원고를 편집실로 넘긴지 수일 지난 9월 1일,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고경심님이 ...
    Date2021.08.27 Views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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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삶의 길목에서 길목을 만나다. 현우진 조합원

    삶의 길목에서 길목을 만나다. 현우진 조합원 끼니때가 되면 ‘오늘은 뭘 해 먹지?’라는 고민을 하는 전업주부인지라 길목인에 실리는 ‘현우진의 홀로 요리’가 반갑습니다. 곧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7월...
    Date2021.07.29 Views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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