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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나의 것 - 최영선

posted Mar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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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진)

 

 

3월 중순 화창한 어느 봄날, 오랜만에 그녀를 인사동의 한식집에서 만나 점심을 하며 인터뷰를 했다. 되돌아보니 이런저런 일들로 만나고 이야기하고 했던 기억이 새롭다. 오랜만의 자리이지만 바로 친근한 분위기 속에 웃음꽃 만발한 수다를 나누었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나눈 이야기를 인터뷰로 정리하다 보니 사적으로 나눈 이야기가 많아서 뺄 내용도 많았다. 다행이 2017년 초에 출간된 ‘노년은 아름다워’(김영옥 지음/서해문집)에 그녀와 두서없이 나눈 얘기들이 정리되어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Q : 오랜만에 만났는데 예전과 똑같은 모습이십니다. 항상 나이에 비하여 젊고 발랄한 느낌을 주시는데 여전하시네요. 요즘 근황이 어떠신지요?
A : 나이 든 사람 걱정해주는 덕담으로 받아들여요. 얼마 전 나에 대해 쓴 글을 본 어떤 영화감독이 영화를 찍자고 제의를 해왔어요. 성 평등, 나이 듦, 노인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립영화를 만드는 감독인데 40~50분짜리 영화를 만들려면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고. 제작기간도 그렇고 너무 힘든 일이라 생각되어 거절을 했어. 그리고 내 자서전을 쓰는 일을 마쳤어요. 그 동안 다른 사람의 자서전을 20여 편 썼는데 어느 때인가 내 삶의 이야기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그 동안 틈틈이 작성해서 마무리 했지요.

Q : 남의 자서전을 20여 편 쓰고 그렇게 연습한 실력으로 자신의 자서전을 쓰셨군요.
A : 평생을 책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분들이 주위 분들을 소개해 주셔서 자서전을 써주는 일을 꾸준히 했어요. 주로 의사들의 자서전을 써주었는데 그렇게 알음알음 연결이 되어 20여 편이나 쓰게 된 것 같아. 언젠가는 자서전을 쓰느라 독일도 가고 했어요.

Q : 자신의 자서전을 쓴다는 게 새롭게 들리는데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A : 나는 1990년8월15일에 하던 모든 일을 마치고 은퇴를 했지요. 그렇지만 출판사에서 일한 덕분에 다른 사람들의 자서전을 쓰거나 쓰는 일을 도우며 일도 하고 돈벌이도 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80세의 나이를 앞두고 이제는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되짚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어서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고 현재는 마무리가 된 상태로 가지고 있어요. 부끄러운 마음으로 쓴 자서전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아직 잘 모르겠고.

Q : 자서전 얘기를 하셔서 궁금해지네요. 은퇴하기까지 평생을 출판 관련 일을 하신 것으로 아는데 기억나는 일들 말씀해주세요.
A : 학원사는 첫 직장이고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이곳에서 26세에 같은 직장의 사람과 결혼을 했고, 세 명의 아이를 낳아서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다 아이들만 키우기 위해 7년간 직장을 쉬었습니다. 40세가 되어 진학사라는 잡지사에서 다시 기자생활을 했어요. 당시 잡지사 기자는 여자가 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술도 잘 마셔야했고 특히 유명인사의 원고를 제때에 받는 것이 무척 어려웠어요. 그런데 어려운 일들을 잘 해결해서 해결사라고 불렸고, 그래서 월급도 남자와 차별 없이 똑같은 수준으로 받았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글을 정리하다 그녀의 생애에 자주 등장하는 학원사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그녀는 학원사를 언급할 때마다 항상 자부심에 차있었다. 학원사는 1945년 9월 김익달에 의하여 창립되었다. 각 분야에 걸친 월간지·주간지·일간지 등 정기간행물을 주로 창간하는 한편, 백과사전, 철학·과학·농업사전 등의 사서류, 각종 학습참고서, 어린이용 도서, 문학서적 등을 활발히 출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출판사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학업성적이 우수하나 가정이 빈곤한 중학생 중에서 매년 20명 내외의 학생을 공개 선발하여 고교·대학 졸업까지 장학금을 지급하는 학원장학회를 1952년 7월 설립하여, 오늘날까지 꾸준히 운영하고 있으며, 출판계의 후진양성에 힘써 향문사·일지사·수학사·여원사·교문사·진학사·창조사·학원출판사 등의 대표들 외에도 수많은 중견출판인들을 배출하여 한국출판계에 공헌한 곳이었다.

Q : 처음 권사님을 알게 된 시점이 20년 전쯤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때 나이가 60대 초반으로 생각되는데 그래서 젊은 시절은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합니다.
A : 어려서는 수산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바닷가 지역을 옮겨 다니며 살았는데 큰집이 자식이 없어서 나를 공주 같이 예뻐해 주었지요. 어렸을 때 물에 빠진 적이 있는데 그 탓인지 건강이 좋지 않아서 9세까지 살 수 있을까 걱정도 했었어요. 그래서인지 어른들은 총각 귀신에 씐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몸이 약했으면 당시 죽을 때 사용할 관도 준비해 놓았다고 들었으니까.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너는 철학하면 자살할 아이라고 만류를 했어요. 책 읽기를 좋아했고 커피도 아주 좋아했습니다. 두 가지는 현재의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소중한 것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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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향린교회는 언제, 어떻게 나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기독교인으로 교회생활은 어떠신지요?
A : 1989년에 처음으로 나온 향린교회는 나의 첫 교회이고 마지막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향린에 나오게 된 계기는 홍근수 목사의 심야토론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그 얘기를 듣고 나왔어요. 분기마다 발간되는 향린지를 만드는 활동을 중심으로 같이 작업한 교우들과 친밀하게 지냈지요. 지금은 비중이 줄어들었지만 그 당시는 문서선교가 향린교회의 중요한 선교활동이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내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이 항상 있다는 믿음 때문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향린교회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두루두루 잘 지내왔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이상은 기쁜 마음으로 다녀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회를 다니면서도 신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어떤 확신이 생길까하는 기대가 들기도 해요.

Q : 지금까지 살면서 사람에 대한 나름의 관점과 신뢰가 있는 것 같아요. 기억나는 분들의 이야기가 있으면 들려주세요.
A : 어려서는 공주처럼 귀여움 받으며 자랐고, 여섯 명이나 되는 남자 동생들 틈에서 남자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편함 없이 자라서인지 대인관계를 하는 게 어려움이 없었어요. 잡지사 기자를 하면서 힘든 일도 수월하게 하는 편이라는 평가를 받았어요. 항상 내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좋은 남자들도 많았습니다. 좋은 남자는 참 좋은 것 같아요. 내가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를 의지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나 또한 사람을 한번 믿으면 끝까지 신뢰하는 편이고. 학원사 김익달 회장이나 향린교회 홍근수 목사는 내 삶에 좋은 영향을 주신 분들이고, 그래서 나도 그 분들의 마지막을 지켜주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지금도 통준사(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소식지 편집 일을 도와주고 있는데 그 이유는 김태준 대표와의 의리 때문이지요.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좋은 분들과의 관계는 원도 한도 없어요.  

 

 

최영선_오클라호마resize.jpg

 


Q : 며느리라는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십계명'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네요.
A : 아들, 딸과 함께 셋이 살다가 며느리가 생기고 함께 살면서 새로운 환경에 불편해져서 생각도 정리할 겸 부산에 갔다가 사촌언니에게 상담을 했어요. 그랬더니 언니가 시어머니보다는 며느리가 더 불편할거라는 얘기를 하길래 듣고 깨달음이 있어 ‘십계명’을 작성했지요. 오래전 일이라 모두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섯 계명은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어요. ‘너는 나의 며느리이지 딸이 아니다. 너의 냉장고 문을 열지 않겠다. 내 빨래와 딸의 빨래는 내가 하겠다. 자유의 열쇠를 갖는다.(너도 자유의 열쇠를 갖고, 나도 자유의 열쇠를 갖는다. 너는 외출했다가 나 때문에 일찍 들어오는 일은 없도록 해라) 생일을 챙기지 말자. 옷 선물은 서로 하지 말자.’ (상세한 설명은 '노년은 아름다워' 93페이지 참조) 십계명을 만들고 아들 부부와 10년을 무난하게 살았지만 더 이상의 동거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인생이 또 흘러가더라고.

Q : 십계명 중에 옷 선물은 서로 하지 말자고 하는 말이 권사님이 멋쟁이로 하고 다니셔서 그런가 알 듯 말듯 하네요.
A : 옷은 미묘한 취향과 관련된 물건이지요. 만일 선물한 옷이 상대방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얼마나 난처하겠어요. 내가 비싼 옷을 입는 사람은 아니지만 자기 나름 멋의 기준에 맞추어 옷을 입는데 선물한 옷이 비싸더라도 입는 사람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옷을 입는 취향은 나이에 맞게 입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나이 들어갈수록 젊게 입는 취향이 좋다고 생각해요.

Q : 나이에 비하여 젊게 보이고 젊게 산다고 주위에서 얘기하는 것을 자주 듣지 않나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지 알려주세요.     
A : 나는 언제나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책을 만드는 직업과 책 읽기를 좋아하는 습관 덕분에 책이 스승이고 친구이고 소중한 존재였지요. 현대문학(월간문학잡지)은 나올 때마다 전부 읽었고 그 책을 평생 아끼며 소장하고 있어요. 오래된 현대문학(월간문학잡지) 책들을 묶어 놓은 것을 얼마 전에 막내딸의 전시 ‘마감을 마감하다’에서 보여주었는데 여러 사람이 인상적이라 얘기하더군요. 젊게 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열심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신뢰를 지키며 즐겁게 사는 것도 이유가 되는 것 같아요. 동년배 친구에 비하여 3년 이상을 젊게 봐주는데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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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현 시점에서 생각하고 계획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네요.
A : 몇 년 동안 교회 내 연극모임 문향에서 최고령자로 간단한 역할이라도 맡아서 했었는데 올해부터는 그만 두겠다고 했어요. 연습을 마치고 저녁 늦게 귀가하는 부담도 있고 준비하는 과정이 체력적으로도 힘들기 때문이지요. 문향 사람들은 아쉬운 마음에 계속하기를 요청하지만 시작할 때 내가 젊은이의 말을 들어주었으니 그만 두겠다는 어른의 말을 들어달라는 부탁했어요. 내 나이에 새롭게 뭔가를 하는 것보다는 그 동안 지켜온 모습을 잘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큰딸이 미국에서 산지 꽤 오래 되었는데 그 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다가 3년 전에 처음 찾아가 봤어요. 세 명의 자식이 모두 결혼하여 자기 몫을 하며 살고 있으니 더 이상 자식에 대해 바라는 것은 없고요. 나이가 들어가더라도 하던 것을 멈추고 생각을 바꾸기보다는 나를 나답게 했던 것들을 잘 지켜가는 것이 지금 바라는 전부입니다.

홍근수 목사가 은퇴 후에 그녀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살고 계셔서 이러저러한 일로 찾아 뵐 때 같이 보는 시간이 있어서 꽤 오랜 기간 친숙하게 지냈다. 그리고 이번에 인터뷰를 위해 얘기를 나누면서도 편하고 친구 같은 분이었다. 인터뷰 녹음을 들어보고 ‘노년은 아름다워’를 읽으면서 그 동안 몰랐거나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던 내용들도 알게 되면서 머리를 끄덕이게 되었다. 지금도 80대의 나이로 밝게 웃고 있는 그녀를 떠 올리며 잡지사 기자로, 책 읽는 젊은이로, 며느리와 소통하고자 애쓰는 친구로, 지나온 시간을 뿌듯해하는 어머니로 그 모습이 겹쳐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살아갈 시간들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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