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조끼 마지막 시위 : 약탈과 방화, 노란조끼 vs 마크롱 그들은 간극을 좁힐 수 있나?

posted Jul 0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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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조끼 마지막 시위 :

약탈과 방화, 노란조끼 vs 마크롱 그들은 간극을 좁힐 수 있나?

 

 

14번째 시위까지 노란조끼 시위를 지켜본 소회를 글로 쓰고 오늘 18번째 시위에 대해 글을 쓰고 이국땅 프랑스에서 벌어진 장기간의 시위에 대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시위 현장에 나오면 언제나 비일상적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니 자연스럽게 글감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지난 몇 주간은 시위가 평온하게 진행되니 (적어도 내가 본 상황은 그러하였다) 지난주가 이번 주 같고 상황은 반복되고 정부의 대응도 변화가 없는 듯하니 슬슬 귀찮니즘이 발동하기도 했다. 시위대 규모가 점점 줄어들어 동력이 다하지 않았나 하는 평가도 있었다. 마크롱이 제안한 시민대토론회가 지역별로 진행되는 탓도 있고 그리하여 취재기를 이어가기가 수월치 않았다. 으레 토요일마다 시위는 있고 할 만한 이야기는 다 했고 전환점은 2019년 5월에 있을 유럽의회 선거에 질레죤느(노란조끼)에서 나온 후보가 당선되면 마크롱 정부의 정치적 결단이 있지 않겠느냐 정도의 모호한 생각들만 오락가락하여 오리무중의 상태였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민중의 정치세력화는 수많은 난관을 건너야 가능하고 사분오열된 노란조끼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결국 아무런 소득을 챙기지 못하였다. 

15번째 시위는 출장으로 한국을 다녀오느라 현장을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열여섯 번째부터 오늘 열여덟째까지 세 번은 시위 현장에서 라이브로 방송을 진행하였다. SNS가 제공하는 라이브 기능을 내가 사용하게 될 줄을 어찌 알았으랴. 비록 시청자는 다섯손가락 안이었으나 시공을 뛰어 넘는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을 다시 실감한다. 오늘 라이브 중에 최루탄이 앞에서 터지고 가스가 바람을 타고 내 앞으로 밀려와 꽤 눈물 콧물을 쏟았다. 덕분에 라이브 중계도 하다가 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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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주위를 둘러싼 시위대를 향해 살수차가 물을 내 뿜고 있다

 

 

오늘 오전부터 심상치 않았다. 1월 중순 시작한 시민대토론회는 마크롱이 시장들을 직접 독려하고 자신도 토론회장을 찾아가며 노란조끼 시위를 토론으로 돌파하려 안간힘을 다하였다. 프랑스 사회가 당면한 문제와 미래를 논하기 위해 시작한 이 토론회가 2달간 일정을 마치고 이번 주에 종료하였으니 이제 평가가 나올 것이다. 애초에 나는 이 토론회가 시위대가 제기한 문제를 직면하지 않으려는 회피로 보였다. 일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핵심은 양극화 해소와 권력의 분점 요구이다. 신자유주의가 촉발한 양극화 심화에 대한 대응으로 시위대가 요구한 핵심은 부유세 부활이다. 마크롱이 이 요구를 수용하지 않기로 한 이상 다른 주제에 대한 논의는 핵심을 비껴 난 이야기일 뿐이다. 다른 하나는 시민발의 국민투표(RIC: référendum d'initiative citoyenne) 요구인데 이는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정신이 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정치체제는 대의민주주의로 시민이 국회와 행정부에 위임한 법률과 행정 권한을 다시 시민이 되찾아와 직접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이 RIC의 핵심이다. 시민이 발의하여 법률을 제정하고 사법권을 지휘할 수 있는 권력의 재조정 시대가 오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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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의 돌에 맞아 일그러진 경찰차량

 

 

오늘 약탈과 방화로 뒤덮인 샹젤리제 거리 어딘가에 “잘못된 토론회는 끝나고 위대한 시작이 뒤따를 것이라”(fin de faux débat, suite du grand debut)는 낙서가 있다. 토론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시작한 오늘 시위는 오전부터 해가 질 때까지 격렬하게 계속되었다. 샹젤리제 양쪽으로 도열한 세계 굴지의 브랜드 플래그쉽 상점들은 몇 군데 예외를 제외하고 모두 반달리즘의 제물이 되었다. 은행, 의류, 액세서리, 커피숍, 레스토랑, 신문가판대 가릴 것 없이 시위대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삼성 전시장도 피해 가지 않았다. 다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깨진 방탄유리 위에 스프레이로 “미안해 삼성”(Désolé, SAMSUNG)이라 휘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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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당한 삼성 전시장 유리창에 써진 낙서

 

 

이 와중에 마크롱은 지금 피레네 산맥으로 스키 휴가를 갔다. 엘리제궁은 그가 주말 일정을 취소하고 지금 파리로 복귀한다고 발표하였다. 추가적인 설명이 엘리제궁으로부터 더 나오지는 않았다고 신문은 전한다. 이 기사를 읽고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한테 주어진 휴가의 권리를 사용할 수 있는 사회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마크롱의 이런 행보를 두고 부잣집 도련님의 투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분노는 토론회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며, 그 분노는 신자유주의 종말과 직접 민주주의 새날을 여는 동력으로 작동하리라. (하지만 이러한 나의 전망도 안일한 사고였음이 유럽의회 선거에서 여실히 증명되었다. 권력은 그렇게 수월하게 시민으로 이전되지 않는다!)

아래 그날의 처참했던 시위의 현장을 기록으로 몇 장 남겨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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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신문가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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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고급레스토랑 Fouquet's Paris,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당선 연회가 있었던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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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ATM은 시위대의 돌을 피해가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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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타 폐허가 된 롱샹 매장, 이런 곳이 샹젤리제 거리에 여러 곳 눈의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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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잘못된 토론회는 끝나고, (fin de faux débat,)

3월 16일 위대한 시작이 뒤따르다. (suite du grand debut.)

 

 

오늘의 사족 1. 총리가 오늘 시위 현장에 나타났다. 내무부 장관은 폭력을 행사한 자에 대한 예외 없는 수사와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 발표하였다. 바리케이드 치고, 불 지르고, 상점 부수고 약탈하는데 정부가 이 정도의 성명도 발표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이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대응과 여론이 어떻게 형성될지 두고 볼 일이다. 지난 12월 폭력 시위가 발생하였을 때도 역풍이 부리라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싶다. 샹젤리제를 이 정도로 부숴 놓았는데! 2. 이방인으로 지켜본 프랑스의 시위와 정부의 태도에 대한 글은 이번으로 마무리한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과 정부의 역할과 시민의 대응은 복잡하고 미묘하고 또 갈등의 연속이다. 그런 게 삶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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