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Ⅸ 노란조끼 아홉 번째 시위: 여든여섯 살의 레지스땅스

posted Dec 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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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Ⅸ 노란조끼 아홉 번째 시위: 여든여섯 살의 레지스땅스

 

 

오랜만에 맡아본 최루가스는 1987년의 기억을 소환한다. 혁명을 통해 공화정을 실현한 나라의 최루가스는 내 기억 속의 최루탄 강도보다는 약하지만 그래도 최루가스임이 분명하다. 눈물, 콧물을 흘리기엔 흰 연기 속을 지나가는 것으로 충분했다.

여든여섯 자신의 나이와 “fait de la résistance (makes resistance, 저항하라)”를 노란 조끼 등판에 적어 넣고 거리로 나온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서리가 내리듯 하얗게 센 백발을 휘날리며 요구사항을 가득히 적은 피켓을 들고 (시민이 위임한 권한으로) 무장한 경찰 앞을 주저함 없이 활보한다. 앞 문장에서 ‘시민이 위임한 권한으로’에 괄호를 친 이유는 이 힘이 시민의 몽둥이가 될지 지팡이가 될지 아직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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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 은발의 노란 조끼

 

 

왜 질레죤느 시위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이루어지는가? 

이는 파리라는 공간에서 샹젤리제가 가지는 상징과 연관이 있다. 요약해서 이야기하자면 개선문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 축의 끝에는 프랑스의 과거인 루브르가 있고 왼쪽 축의 끝에는 현재의 프랑스를 상징하는 라데팡스의 Grand Arch가 있다. 역사의 축(또는 Paris Grand Axis)이라 불리는 이곳은 태양왕 루이14세가 17세기 말 베르사이유에서 이곳 루브르로 거처를 옮기며 리노베이션하여 궁으로 위상을 확립하고, 미테랑 대통령이 라데팡스 신도시와 그랜드 아치를 20세기 말에 완성하여 도시 공간에서 축의 의미를 시간적으로 과거에서 현대로 확장하고 또한 미래로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왼쪽 파란점이 그랜드 아치 그리고 오른쪽 끝점이 루브르 박물관이다. 이 축은 정확히 파리를 중심부를 관통하여 흐른다. 모든 공간에 대한 질문은 권력과 연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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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지역이 파리, 붉은 점 루브르에서 콩코드 광장, 개선문에서 라데팡스의 Grand Arch로 이어지는 역사의 축

자료: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ap_of_Paris_-_Axe_historique.svg

 

이 역사의 축 가운데 녹색점이 개선문이다. 18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가 임명한 오스만 파리 시장의 도시계획으로 별광장(Place de l'Étoile, 지금은 샤를 드골 광장으로 이름 지워짐)을 중심으로 12개의 도로가 라운드어바웃 형태로 뻗어 나가도록 계획되어 있다. 역사의 축에 속하는 샹젤리제 거리는 12도로 중 가장 넓고 파리 도심의 가장 중요한 가로이다. 자연스럽게 수많은 세계 톱 브랜드의 플래그쉽 상점들이 이 거리에 입점하고 있다. 당연히 파리를 찾는 관광객이면 반드시 찾는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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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축과 주요 상징 건물 (Les Echos, 2002년 8월 12일)

https://www.lesechos.fr/12/08/2002/LesEchos/18716-012-ECH_du-louvre-a-la-defense--l-axe-majeur-lance-son-hymne-a-la-nation.htm

 

 

UNWTO(UN 세계관광기구)에 따르면 2017년 프랑스를 방문한 관광객 수는 8천 6백 9십 만명으로 세계 1위이다. 샹젤리제를 비롯한 파리 주요 도심에 위치한 상점들은 대부분 토요일에 문을 열지 못한지가 꽤 되었다. 파리에서 살고 있는 집 앞이 에펠탑이라 관광객을 늘 마주 대하고 사는 처지라 나도 대략은 관광객 숫자 감소가 짐작이 된다. 어부인 다니는 구청 불어수업의 수강생 중에 루브르 근처에서 식당을 하는 일본 할머니가 전한 바에 따르면 그녀 역시 토요일에 가게 문을 열지 못하여 요즘 근심이 크다고 한다. 내가 아는 분 중에 노란조끼 시위로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프랑스 여행을 취소한 경우도 있다. 이렇게 시위가 계속된다면 프랑스는 관광객 1위 자리를 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 상황이 악화된다면 대형 상점과 백화점을 소유한 자본들이 마크롱에게 사태의 조기 해결을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아마 정권에 대한 압력이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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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들

 

 

9번째 노란조끼 시위가 있고 사흘 지난 후 마크롱 대통령이 참석한 국가 대토론회(Grand débat national)가 있었다. 노르망디의 작은 시에서 열린 토론회에 프랑스 전역에서 모여든 시장 600여명이 참석하였다. 마크롱은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장장 7시간 동안 토론회에  참석하였다. 물론 이 토론은 전국에 생중계 되었다. 토론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상황만 보면 마크롱은 절박해 보인다. 하지만 왜 토론장에 시장들을 불렀을까? 그는 지금 노란조끼와 직접 대면하여 그들의 요구인 ‘마크롱은 물러나라’에 답해야 하지 않을까? 선출된 대통령 자신이 보기에 노란조끼를 입은 “일부” 시민들이 요구하는 사퇴하라는 치명적인 요구에 답을 하기에는 자기 자존심이 상했던 것일까? 나는 그가 노란 조끼 시위대를 초대하여 토론회를 열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명석하고 달변인 그가 이런 구조를 모를 리 없다. 그도 어쩌지 못해 궁색하게 시장들을 초대한 토론회를 열고 공식 웹사이트까지 마련하여(Le grand débat national로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웹사이트를 찾을 수 있다. https://granddebat.fr/) 대화로 문제를 풀어보자고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 노란 조끼와 프랑스 시민들은 마크롱의 이런 요청에 반응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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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발의 노란조끼 할아버지가 피켓을 들고 경찰 물대포 앞을 지나고 있다

 

 

시위대는 잘 조직되어 있지 않았다. 노란조끼 시위가 시작된지 9번째인 2018년 12월 8일 토요일 처음 개선문이 위치한 별광장과 샹젤리제 거리를 나가 노란 조끼 시위를 직접 살펴본 바로는 그렇다. 조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너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광장으로 부터 12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가로 중 샹제리제를 제외하고 모든 길목에 무장 경찰과 국가 헌병대가 살수차, 장갑차를 동반하여 배치되어 있다. 오직 한 곳 샹젤리제에만 시위를 허용한 것이다. 하루종일 광장과 샹젤리제 가로는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었다. 저녁 땅거미가 내리자 개선문 앞의 차량 수십 대를 동원하여 포진한 경찰들이 드디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를 샹젤리제 거리 동쪽 방향으로 밀어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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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이 시위대 머리 위에서 터지며 내려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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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를 쏘며 해산작전을 시작하다

 

 

전술적으로 시위대가 다시 별광장을 차지하려면 일군의 사람들을 동원해 11 방향의 가로 중 하나를 선택해서 다시 밀고 들어오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즉, 노란 조끼 시위대는 조직되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로는 조직되지 않은 힘이 오히려 더 파괴력이 있다. 누가 조직하지 않았고 누구도 동원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은 무력으로 오합지졸들을 해산시키기에 용이하다. 하지만 그들의 자발성을 제어할 방안이 없다.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자발적으로 동시다발로 시위에 참여하는 한 이들의 시위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마크롱이 열어놓은 온라인 국가대토론회로 시민들이 몰려가 말 잔치를 벌일 것인가 아니면 지난주 보다 더 많은 노란조끼를 입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인가? 민주주의는 말의 향연이며 대화라는 도구로 이해관계를 조정해 가는 타협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크롱이 제시한 정도의 소통 의지로 노란조끼들이 마음을 돌려세우리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음 주, 더 많은 노란조끼들이 거리로 몰려 나오리라는 것이 나의 전망이다. 다가오는 토요일 시위에도 나는 시민들의 표정을 살피러 샹젤리제 거리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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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경찰 헬기가 나르고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해도 샹제리제 거리에 어둠이 내리니 조명은 켜지고..

오늘의 사족: 샹젤리제의 거의 모든 상점이 토요일 문을 닫았다. 나무 합판이나 그물 철망으로 쇼윈도우와 출입구를 방어하고 있다. 하나 예외가 에르메스 매장이다. 그들은 아무 조취도 취하지 않았다. 환하게 불 밝힌 매장은 그들의 자존심으로 읽힌다. 불 끄고 나무 합판으로 방비 태세를 취한 다른 매장과의 대비가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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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의 HSBC 영업점 시위대가 방어용 합판에 잔뜩 구호를 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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