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미티 트레킹 마지막회 - 7일차 기록

posted Jul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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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미티 트레킹 마지막회 - 7일차 기록

 

 

#Dolomiti트레킹_Day+7 

길 떠나기 전에 (2018. 8. 18.)

 

트레킹 마지막 날, 내리막길을 천천히 내려오기만 하면 된다.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날, 걸어야 할 거리는 짧고 마음도 가볍다. 끝까지 무릎으로 고생하던 룸메이트 시몬은 하산 중간에 노새를 싣고 가는 트럭을 만나 옮겨타고 남은 일행은 호수가 아름다운 산골 마을 미수리나로 내려왔다. 이제 출발지인 코르티나 담페초로 돌아가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출발지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호수 옆 노천 까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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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사진을 주로 올리긴 하였으나 산행 중간에 산장을 만나면 에스프레소를 주로 마셨다. 산행 중 비음주의 원칙은 필요하다. 미수리나 호수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

 

버스를 타고 출발지로 돌아오는데 광고판이 눈에 들어온다. 2021년에 이 동네에서 무언가 행사가 있는 모양이다. 초록색 초원 위로 잔디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이채롭다. 그러다가 사진 옆에 붙어 있는 카피가 마음에 들어왔다. “If you can master snow, you can master ANYTHING” 놀지 않고 일만 하면 멍청이 된다는 속담도 있다고 하던데.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듯 놀면서 상상의 나래를 자유롭게 펼치며 살면 좋겠다고 그러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며 버스를 타고 출발지로 되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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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can master snow, you can master ANYTHING!

 

 

회고

 

2017년 9월 1일부터 파리에서 파견근무를 시작했으니 돌로미테 트레킹을 마친 오늘 2018년 8월 18일은 파견 예정 기간 1년이 거의 다 끝나가는 시점이다. (이후 파견은 1년 연장되어 2019년 8월까지 파리에 머물렀다. 2019년 7월과 8월 사이 약 1달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길목에 순례기를 연재하였다.)파견의 시작은 의외로 어이없는 이유였다. 기억을 복기해 보면 2017년 4월 마지막 주에 수행하던 과제 결과를 국제표준으로 제안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마침 표준회의가 파리에서 열리게 되어 난생처음 파리를 방문할 수 있었다. 학부 수업시간에 들었던 신도시 라데팡스 인근에 회의장이 있어 그 근처 어디쯤 숙소를 잡고 아침저녁으로 라데팡스 보행자 광장을 걸어서 회의장과 숙소를 오갔다. 우리가 경쟁하듯 속도를 높여 도시를 형성해왔던 시기에 파리는 다르게 접근하였다. 1958년부터 30년간 계획하고 건설하여 1980년대 말에 완공된 파리 외곽의 신도시 라데팡스는 모든 교통수단을 지하데크 밑으로 넣고 보행자를 가장 우선하여 지상에 보행자 광장을 만들었다. 30여 년 전 수업시간에 배운 것이 눈 앞에 펼쳐지니 마음이 혹하였다. 결정적으로 주말에 짬을 내 둘러본 파리 시가지 가로수에 매혹당했다. 낯설지 않았다. 마치 시집간 막내딸 친정에 온 것처럼 도시를 걷는 것이 편안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는 건 금방이었다. 보는 것과 사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파견근무를 위해 파리에 도착해서 살 집을 구하면서부터 현실로 나타났다. 타향살이 고단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세상사 모든 일에는 호불호가 있고 Pros & Cons가 섞여 있듯 파견근무도 그렇다. 하여간 이렇게 시작한 타향살이가 만 일 년을 며칠 앞두고 있다. 

길 떠나기 전에 무얼 채비했었나? 지금 생각해 보니 마음이 움직인 것 말고는 크게 괘념치 않았던 것 같다. 파견도 그렇고 트레킹도 그렇고 앞서 언급한 산티아고 순례길도 그러하다. 가족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거치기는 했으나 다분히 형식적이었다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지난 일 년 동안 이방인으로 불어를 배워 공립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에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가히 사투와 다름없는 공부를 해온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고, 삼시 세끼 밥 해 먹이느라 애쓴 어부인에게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다.

 

 

남은 여정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방학 맞아 한국으로 갔던 가족들이 파리로 돌아오면 다시 불어 과외와 악기 교습 일정을 짜야 할 것이다. 예정되어 있던 미팅과 출장을 수행해야 하고, 과제 제안서도 써야 하고 결과보고서 또한 두 개나 마무리를 기다리고 있다.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트레킹 마무리 글을 쓰면서 길 떠나기 전과 지금 그리고 앞을 다시 생각한다. 유럽에 살면서 다녀왔던 산티아고 순례기, 몽블랑과 돌로미테 트레킹 기록은 이제 마친다.

 

마지막 사족 1.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트레킹하며 적어 두었던 기록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되어 안도가 된다. 이 글 역시 앞서 연재한 몽블랑 트레킹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기와 함께 친구들 SNS에 실시간으로 공유하였다. 소셜 네트워크가 관계를 점령하다시피 한 세상에 살고 있는 업보라 생각한다. 하지만 댓글로 격려와 공감을 표시해 준 친구들이 있어서 이 모든 글들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2. 함께 한 시간이 짧아 정이 많이 들지는 못하였지만 헤어지기 전에 돌로미테의 오스카와 인사를 나누다. 돌로미테 구간은 노새가 함께 다닐 수 있는 구간이 많지 않아 노새와 정을 쌓기에 시간이 부족하였다. 하지만 그 동안 짐지고 함께 한 오스카가 고마워 얼굴을 쓸어주고 같이 한 컷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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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파리로 돌아가려고 코르티나담페초 버스정류장에서 베니스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사십 분째 지연이다. 다음 버스와의 여유가 한시간 남짓한데 나는 여기서 파리까지 1200km를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초조하다. 결국 늦게 도착한 버스 그리고 휴가철 막히는 도로 덕분에 연결버스를 베니스에서 놓치고 말았다. 인생 뭐 별거 있나. 다른 길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다. 하지만 다음날 월요일 오전에 한국에서 온 분들과 OECD 내 다른 부서와 회의를 주선해 놓은 터라 일요일에 밤까지 반드시 파리에 도착했어야만 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분주하였다. 어쨌든 연결편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예정에 없던 이탈리아 고속철도도 타보고 베니스역 앞에서 맛난 스파케티도 먹었으니 이만하면 땡큐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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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고장 스파게티, 역시 맛이 남다르다.

 

4. 예약한 버스를 놓치고, 이를 따라잡기 위해 베니스에서 기차를 타고 토리노까지 갔다. 고속철을 탔으니 토리노에서 놓친 버스를 따라잡고 기다렸다 탈 계획이었다. 하지만 결국 해당 버스에는 탑승하지는 못하였다. 여러 다른 사정이 있었지만 각설하고 토리노 길거리에서 하룻밤 보내면서 여러 상념에 잠겼다. 토리노 길거리에서 노숙하며 스마트폰에 코 박고 검색한 끝에 겨우 새벽에 있는 버스의 빈자리를 확보하였다. 새벽에 탄 버스는 오전에 프랑스 리용에 나를 내려놓았다. 역시 스마트폰 통해 입석 떼제베 표를 구하고는 리용에서 두어 시간 어슬렁거리다 일요일 오후 파리에 도착하였다. 5. 올여름 두 번의 트레킹으로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한반도 비무장지대에 평화의 순례자들를 위한 “DMZ평화올레”를 내 손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겼다. 트레킹이 빚어준 생각으로 신문에 “시민들도 ‘도보다리 산책’할 수 있었으면”이라는 제목으로 기고를 하였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4262040025

떠나기 전에 무얼 준비해야 하나. 맘만 준비하면 몸은 그냥 따르는 것인가? 베니스에서 서쪽 토리노로 질주하는 밤 기차에서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생각하였다. 6. 트레킹 다녀온 지 2년이 지나 옛 글을 다시 읽으며 몇 군데 수정하고 있는 지금은 파견지에서 복귀한 지 1년 남짓 되어 가는 시점이다. DMZ 평화올레의 꿈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지만 현실은 아시는 바와 같이 녹록지 않다. 하지만 나는 계속 꿈을 꾼다. 문익환 목사님이 남기신 “잠꼬대 아닌 잠꼬대”라는 시에서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로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노래하신 그 일을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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