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방 유랑기 4 - 닮고 싶은 책방마님의 멋진 푸른 숲, 최인아책방

posted May 0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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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유랑기 4 -

닮고 싶은 책방마님의 멋진 푸른 숲, 최인아책방 

 

 

지난달에는 뭐가 그리 바빴는지 책방 글 쓰는 걸 깜빡했다. 사실 책 읽는 것조차 버거운 일정이었노라 변명처럼 고백한다. 아무리 늦어도 매일 책을 읽고 자는 버릇이 있는 나인데 최근에는 책을 그냥 품에 안고 잠들기 일쑤였고 가끔은 머리 위로 들고 읽다가 살짝 조는 바람에 얼굴에 떨어뜨려 (아파서) 후다닥 깬 적도 많았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주변 상황에 사정없이 휘둘리며 지내느라 영혼이 이탈된 듯한 나를 발견했고, 이렇게 지내면 안 되겠다 싶었다. 다시금 책과 서점을 가까이하며 나를 지켜야지, 괜한 결의도 다지게 되고 말이다. 본의 아니게 연재를 건너뛰어 죄송하다는 말을 이리 돌려 하고 있다. 그저 죄송합니다, 꾸벅. 

 

이번 달에는 어느 책방을 갈까,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원래는 연신내에 있는 <니은서점>에 갈 생각이었다. 드물게 책만 있는 서점인 데다 요즘 유행하는 클럽하우스에서 책 낭독을 계속 진행하고 있는 책방 주인(노명우 교수)이 좋은 책을 여러 권 펴낸 분이기도 해서 늘 궁금했다. 그러다가 이곳, <최인아책방>으로 급선회한 것은, 나중에 나도 은퇴를 하면 책방을 하겠노라는 꿈을 되새길 기회가 우연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인장인 최인아 대표는 30년 동안 광고 일을 해오다가 은퇴 후 2016년에 <최인아책방>이라는 이름을 걸고 선릉역 근처에 서점을 열었다. ‘삶에서 받은 무거운 긴장을 내려놓고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컨셉에서 시작된 이곳은, 독특한 시도들과 다양한 강연 및 공연으로 어느새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처음에 선릉에 서점을 열었을 때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의아해하면서도 걱정을 많이 했다. 주변에 회사만 즐비한데 책방을 찾을 사람들이 있을까. 직장인들이 과연 퇴근하면서 책을 보겠다고 이곳에 들를까. 주거지역이 별로 없으니 과연 주말에 영업이 될까 등등. 하지만 역시나 광고를 업으로 했던 이의 탁월한 시각이 적중했는지, 이곳은 그런 우려가 언제 있었냐는 듯 이제는 좋은 사례로 회자 되는 책방이 되었다. (혹시 최인아 대표의 생각이 궁금하다면 → http://naver.me/x9KbVV6M, 최인아책방 대표 최인아 객석 인터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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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4층에 위치한 책방에 들어서면 이 장면이 펼쳐진다. 순간, 넋을 잃고 쳐다보느라 들어가야 하는 걸 잊은 채로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다. 높은 천장과 서가에 빽빽이 들어찬 책들, 그리고 그 책을 바라보는 어느 사람. 하나하나 뜯어보지 않아도 몸에 와닿는 푸근함이 가득한, 나중에 구석구석 살펴보니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많이 썼음직 한 인테리어 덕분에 입구에서부터 편안함과 행복감이 마음에 차오르는 걸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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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아책방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대표의 지인이나 책방을 찾는 사람들의 이 소개 글이다. 지인이 추천하는 코너의 책들에는 이렇게 하나하나 엽서가 꽂혀 있고 펼쳐 보면 이 책을 왜 추천하는지에 대해 누군가가 직접 쓴 다정한 글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는 뭐든 컴퓨터로 작성해서 뽑아 보는데 익숙해진 나머지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사람이 손으로 쓴 글씨가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가슴 깊숙이 전해지는지.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히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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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지도 작지도 않은 한 층의 공간인데도 여기저기 아기자기하면서도 솜씨 있게 배치해둔 책이며 서가며 둘러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같은 탁자 위에 놓인 책들은 하나의 이름으로 묶여 있었다. ‘우리 모두 자란다. 여전히 성장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깊고 높은 시선, 그것은 바로 통찰력!’, ‘고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적힌 글과 같은 시각을 염두에 두면서 모아둔 책들을 찬찬히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그간에 했던 강연들, 공연들, 지금 열리고 있는 세미나들을 모아둔 대시보드를 보면서 나도 시간 되면 와서 함께 하면 좋겠다, 잠시 생각에 빠지고. 아, 주중에 시간 맞추기 힘들겠구나, 살짝 스미는 좌절감에 쓸쓸해지기도 하고. 시간은 사실 있는 시간을 내는 게 아니라 만들어내는 건데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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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도 한쪽에 따로 있었다. 튼튼해 보이는 원목 책상에 의자 여러 개, 텔레비전까지 구비 된 조용한 곳이라 여기에서 모임을 하면 절로 얘기가 되겠다 싶었다. 2층에는 최인아책방에서 책을 사면 책을 보거나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아담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책을 사 들고 커피 한잔(책을 사면 10% 할인!)까지 사들고는 2층에 올라가 의자에 편히 앉아 바라보는 1층의 모습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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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두 권을 샀다. 사실 ‘쌀 재난 국가’라는 책을 추천받아서 처음부터 이걸 사려고 마음먹었는데, 지나가다가 문득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서점들에 붙이는 각주’라는 책이 눈에 들어오는 거다. 서점에 대한 책은 눈에 띌 때마다 수집하는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이었다. <뉴요커> 등에 글을 기고하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밥 엑스타인이라는 사람이 인상 깊었던 75개의 서점을 그림으로 그리고 간략한 소개와 에피소드를 붙인 책인데, 환상적이다. 여행이 가능해지는(제발) 그날이 오면, 이 책에 있는 서점들을 꼭 다 찾아가야지 결심 아닌 결심을 굳게 하게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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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아책방에서 유명한 또 하나의 장소는 ‘혼자만의 서재’라는 곳이다. 서점 바로 아래층에 있는 공간으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다. 유럽의 살롱처럼 꾸민 인테리어가 밖에서 보아도 왠지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강렬히 가지게 한다. 다음 일정이 있어 그냥 보고 지나치기만 했지만(아쉬움) 다음엔 이곳도 들어가 홀로 차분히 책을 읽는 시간을 가져보리라. 올 때는 비가 부슬거리더니 나오니까 어느새 그쳐 있었다. 책방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서 있는 까만색 안내판과 붉은색이 도는 흐드러진 나뭇잎이 잘 어우러져 아름답다 싶은 마음에, 또 한참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나중에 내가 책방을 하면 어떤 모습으로 꾸미고 어떤 책들을 놓아두고 어떤 컨셉으로 만들까, 내 머릿속에 늘 자리하는 생각 중 하나다. 누구나 오기 편하고 친근하고 그러면서도 왔을 때 시간이 아깝지 않다, 책이 있어 좋다라는 멋진 느낌이 우러나게 하는 곳이면 좋지 않을까라고 막연하게 상상만 하고 있었는데 최인아책방에 오니 또 하나의 아이디어를 얻은 느낌이라서 더 좋았다. GFC에도 2호점을 냈다고 할 만큼 성공적인 모습을 갖추어 나가고 있는 최인아책방이 지금처럼 이렇게 힘들게 지내는 직장인이나 동네 주민들에게 작고 다정한 위안을 주는 모습으로 오래오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도 꼭 이런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는 책방을 만들고 싶다, 어디에서든, 조만간. 

 

최인아책방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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