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방 유랑기 1 - 강남 한복판의 독립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 강남점

posted Jan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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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유랑기 1 - 

강남 한복판의 독립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 강남점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서점이란 참 아름다운 세계다. 책으로 채워진 공간이라니, 어쩌면 늘 마음에 고향처럼 담아두는 전경인지도 모른다. 거기 머무는 사람들조차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으로 바라보게 되고 괜한 친근감까지 느끼게 되는 그런 곳. 그래서인지 어딜 가든 서점을 찾는 게 취미 아닌 취미가 되고 말았다. 예전엔 서점 하면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대형서점 외엔 갈 곳이 없었고 동네서점이라고 해봐야 학습지만 가득한 곳이기 일쑤라 가끔씩 가는 어느 외국 여행지 길목에서 작은 서점들을 일부러 찾으며 위안을 삼았더랬다. 대형서점은 또 대형서점대로 원하는 책을 마음대로 집어들 수 있고 요즘 어떤 책이 나왔나 둘러보기 좋은 곳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역시나 작고 아담한 공간에 주인장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책들이 놓인 ‘책방’이 내심 그리웠던 것 같다. 

 

요즘엔 우리도 여기저기 다양한 독립서점들이 많이 생겨 찾아다닐 맛이 난다. 언제 한번 전국을 돌면서 구석구석 숨어 있는 작은 책방들을 다녀볼까 라는 소망을 혼자 가슴에 담아두고 있던 차, 독립서점에 대한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고는 반가운 마음에 겁 없이 덥석 수락해버렸다. 그리고는 어디부터 가지, 행복한 고민을 꽤나 길게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대형서점 즐비한 강남대로에 독립서점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여기부터 가봐야겠다 라는 마음이 불쑥 들어 그곳으로 향했다. 사실 강남에 있는 독립서점은 선릉역 인근의 최인아책방이 유명하지만 워낙 알려진 곳이라 강남에 다른 독립서점은 없나 기웃거리다가 찾아낸 곳이었다. 스토리지북앤필름 강남점. 

 

번화함의 상징과도 같은 강남역 11번 출구를 나와 조금 걸어가다 보면 ‘일상비일상의틈’이라는 건물이 보인다. MZ 세대를 아우르는 열린 공간을 표방하는 그 건물의 3층에 스토리지북앤필름 강남점이 자리하고 있다. 해방촌에서 오랫동안 머물러온 독립서점이, 도대체 책방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도심의 한복판, 강남의 높은 빌딩들 사이에서 새로운 시도를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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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 들어서면 여유롭게 배치된 낮은 서가와 서가마다 놓인 아르떼미데 조명의 푸근한 빛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철저하게 독립출판물만을 취급하는 곳이라 책이 얼마나 되겠는가, 가기 전에 내심 우려했던 마음은 서가마다 켜켜이 쌓인 책의 양에 금세 사라져버린다. 사는 동네 이야기, 반려동물과의 추억, 직장인의 비애, 그림이나 음악 이야기 등등 사람 사는 모양새가 이리도 다양하구나 생각하다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어 하는구나 라는 놀라움에 이르게 된다. 평범한 일상을, 소소한 생활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때론 엉뚱하게 풀어낸 책 속의 글과 사진을 보면서 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있었던 것 같다. 산다는 건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하고, 그래서 다들의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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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간이지만 아기자기하고 정성스럽게 꾸민 모습에 한참을 머무르게 되는 곳이다. 연두색 원형의자가 여럿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임 공간이라든가 정감 있는 안내데스크, 타공판 위에 둔 갖가지 굿즈, 책방을 더욱 다정하게 만들어주는 식물들, 신규 서적을 진열해둔 바퀴달린 서가 등, 찬찬히 하나하나 다 돌아보는 동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작은 책방에 가면 꼭 한 권의 책은 사들고 나온다는 나의 원칙 아닌 원칙도 있지만, 헬로인디북스 책방지기의 생활은 어떤가 해서 고른 <적게 벌고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을 집어 들고 나오면서 물어봤다. 사람들이 여기 많이 오나요? 웃으며 답한다. 네, 생각보다 많이들 들러주세요. 가끔씩 책도 사시구요. 역시나 괜한 노파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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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앞에는 작은 전시공간도 있다. 책방 주인장은 매월 주제를 바꾸어가며 이곳에 다양한 내용을 선보이겠다고 한다. 숨겨진 창작자들의 작품을 보여주고 지방의 서점이나 브랜드도 보여주면서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나 전시하는 사람들에게나 좋은 공간으로 자리매김해보겠다는 생각이 있다고. 주인장이 필름카메라에 취미를 가지고 사진집도 출간한 분이라 그런지 책방 초입에 필름카메라 자판기도 있었다. 이젠 찾기 힘든 필름카메라의 흔적을 보니 옛 추억이 물씬물씬 피어올라 다음에 다시 와서 이것도 한번 챙겨야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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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잘 팔리는 작가의 글만이 글은 아니다. 내 옆에 있음직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어쩌면 내게 더 깊은 울림을 줄 수도 있다. 사실 그렇게까지도 필요 없을지 모른다. 그저 사람들 사는 모습에 내가 함께 즐거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강남의 번잡함 속에서 가끔의 위안이 필요할 때 이곳에 들르면 좋을 것 같다. 아. 처음에 방문하면 ‘일상비일상의틈’ 회원으로 가입하는 잠깐의 5분이 필요하다는 것과 책방은 카드로만 결재할 수 있다는 것은 다녀온 사람만이 줄 수 있는 팁이다. 

 

스토리지북앤필름 강남점 

서울시 강남구 강남대로 426,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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