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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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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2 : 나는 왜 뉴욕에 살까?

posted Dec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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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al lives are about action. You can't feel warmth unless you create it, can't feel delight until you play, can't know serendipity unless you risk.”  - Joan Erickson

뉴욕으로 이사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뉴욕시립 박물관 ( Museum of the City of New Yok) 에  간 적이 있었다. 2층 갤러리에서 내려올 때는 중앙 계단으로 내려오지 않고, 뒤쪽으로 난 좁은 계단을 통해 내려가다가 우연히 벽에 가득히 채워진 뉴욕에 관한 글과 사진들을 보게 되었다. 그중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E.B.White가 “Here is New York”이란 책에서 쓴 글의 인용이었다. “뉴욕은 편안하거나 편리한 곳이 아니야. 뉴요커들은 기질적으로 그런 것에 크게 괘념치 않지. 편안함과 편리함을 찾았더라면 아마도 뉴욕이 아닌 다른 곳에 살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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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운전해서 장을 보고 차고로 쏙 들어가서 짐을 내리면 되는 시카고의  서버브 생활에 익숙한 나로서는 뉴욕생활이 불편하고 힘들었다. 한참을 걸어가서 장을 보고 낑낑대며 아파트에 들고 오던지, 모처럼 차를 타고 가서 장을 보고 오면 파킹할 데가 없어 더블파킹을 하고 짐을 나르고, 다시 파킹자리 찾으러 몇 바퀴 돌아야  한다. 운이 좋아야 집 근처에 세우지, 아니면 걸어서10분거리 되는 곳까지 가서야  파킹하기도 한다. 길거리 청소로 길 한쪽은 화‧목요일이 파킹이 안 되고, 다른 한쪽은 월‧금요일이 안 돼, 일주일에 적어도 3번은 차를 옮겨야 한다. 맨해튼에서 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찮고 아니면 돈이 많이 드는지, 우리 동네는 5분 거리에 있는 지하 주차장이 한 달에 500불정도 내야 한다. 차를 세워놓고 한 번도 안 움직인다고 가정해도 정 급하면 45불 티켓을 받는 것이 비용이 적게 들어, 아직까지 길거리 파킹으로 버티고 있다. 그래서 많은 뉴요커들은 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주말에 교외로 멀리  갈 때만 렌트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거의 차를 쓰지 않지만 아직은 차가 없으면 뭔가 불안한 것 같아, 불편을 감수하고 산다. 하루의 감정 곡선이 그 날 파킹 운수에 따라 좌우된다고 보면 된다.

아는 집 아이가 세 살 정도 되었는데 아빠가 파킹할 때면 자기도 잔뜩 긴장해 카시트에 앉아 눈을 요리 조리 돌리며 빈자리를 보고 “아빠 여기” 하는데, 아직  화‧목 과 월‧금 사이드를 구별하기에는 어린 것 같다. 아빠가 파킹자리를 놓고 다른 사람과 실랑이 하는 것을 보고 자란 그 아이는 아마도 녹록치 않은 뉴욕커로 자랄 가망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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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하탄의 좁은 땅 덩어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 보니 집값은 천정부지고, 사는 공간은 점점 협소해 진다. 뉴욕 하이라인을 걷다가 본 창고회사 광고를 보니 웃음이 나온다. 오죽하면 “뉴욕아파트에서 애를 키운다는 것은 바느질할 때 쓰는 골무에다 상수리나무를 키우는 것 같다”고  표현했을까. 시카고 집에 살던 짐을 3분의 2쯤 정리하고 뉴욕으로 왔는데도 도저히 짐을 어찌 할 수 없어 창고 스페이스를 빌리려고 알아보았더니, 한 달에 200여 달러가 들어서 포기하고 구세군에 도네이션하였다.

뉴욕은 젊은이들을 자석처럼 끌어드리는 마력이 있는지, 뉴욕에 와서 학교에 다니거나 일을 하는 친구의 자녀들이 많다. 부모들이 애들 사는 걸 보면 고생한다고 마음 아파한다. 집세가 너무 비싸니까 조그만 방을 빌려 둘이 나누어 살거나, 부엌 뒷간 메이드룸에서 세들면서 매트리스를 벽에 세워 놓았다가 밤에 눕혀서 자고, 사람 셋이 한방에 서있기도 불편한 곳에 살면서 뉴욕이 뭐가 좋다고 하는지 부모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먼저 뉴욕생활을 시작했던 아들은 “엄마에게 맨하탄 생활은 너무 힘들 것 같아요. 근처 서버브로 이사하는 게 엄마의 라이프 스타일과 더 잘 맞을 것 같아요.”라고 충고를 하였다. “아니야, 나도 맨해튼에서 뉴요커로 잘 서바이브 할 수 있어.”라는 오기로 버티다 보니 어느 덧 4년이 되었다.

왜 뉴욕인가?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이유들이 있겠지만 나에게 질문해 본다. 아마 나에겐 지금 주어진 시간적 여유와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각종 문화적, 예술적 공간과 이벤트, 그리고 세계의 어딘가에서 온 각양각색의 이민자들과 그들이 사는 모습들, 그리고 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겨내리라 하는 나의 집념과 태도 ………등을  떠올려 본다. 

처음 뉴욕에 와서 친구들도 없고 아는 사람이 없고 너무 외로워 내 성격과는 달리 사람을 사귀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면 가고, 버스나 공원에서도 기회만 있으면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그래서 그 어는 곳에서 보다 아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너무 편안한 곳은 안주하게 되는데, 불편함을 극복하고자 애쓰는 가운데 생각지도 못한 흥미로운 일이 많이 벌어지게 된다. 꼭 좋은 것이 좋은 것만 아니고 나쁜 것이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살아 갈수록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어제  콜럼버스 서클에 일이 있어 나갔다 집에 오는 길에 뜻하지 않던 샛길로 많이 빠지게 되었다. 이즈음에 장이 선 할러데이 마켓을 기웃거리다가 친구들에게 줄 조그만 선물들을 샀다. 친환경적이고, 스펀지나 종이타월 대신 오래 쓸 수 있는 스웨디시 타월을 샀다. 디자인이 모두 예뻐서 어느 무늬를 고를까 한참 고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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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매서운 허드슨 강바람과 길사이로 불어오는 골바람을 해치고 뉴욕에서 걸어 다니려면 꼭 필요한 머리에 딱 붙는 털모자, 비니(Beanie)와 셀폰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손가락이 없는 장갑을 나를 위한 선물로 샀다. 귀여운 새문양이 들은 모자와 장갑은 네팔에서 여인들이 손뜨개로 만들었는데 털 안에는 감을 대서 부드럽고 따뜻하였다.

콜럼버스 서클에는 안내 책자들을 쭉 꽂아 놓은 부스가 있다. 그 중 고양이를 안고 빨간 옷을 입은 소녀 그림이 눈에 들어 왔다. 전에 책에서 본 적이 있는 그림인데, 관심이 있어 안내지를 집어 드니 링컨센터 맞은 편, 민속박물관(American Folk Art Museum)에 소장된 그림이었다. 7블록을 북쪽으로 걸으면 되고 입장료도 무료여서 부담 없이 잠깐 들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걸어갔다. 아쉽게도 빨간 옷 소녀는 지금 퀸즈 롱아일랜드 시티에 있는 뮤지엄에 전시중이라고 한다. 대신 군인들이 만든 퀼드전을 휙 둘러보고 가려고 했는데 금요일 저녁에는 싱어송 라이터들이 여는 무료 음악회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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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가 작동이 잘 안돼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싱어송라이터가 부츠를 벗고 맨발로 기타를 반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냥 내가 보기에는 취미로 노래를 부르면 딱 좋을 것 같다. 세 곡을 듣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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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시간약속에 맞추어야 할 때는 지하철을 타지만, 오래된 역의 답답한 공기, 냄새 그런 것들이 싫어서, 여유로울 때는 리버사이드 드라이브로 가는 5번 버스를 탄다. 버스는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많이 타신다. 옆에 앉은, 70,80정도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셀마라는 흑인여성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145가에 사는데 59가 홀후드(Whole Food) 콜러버스서클까지 장을 보러 온다고 한다. 132가 가까운데도 훼어웨이(Fairway)라는 큰 식품점이 있는데 멀리 여기까지 오시냐고 했더니, 버스에서 내려 여긴 바로인데 거기는 언덕을 내려가려면 무릎이 아파  멀어도 덜 걷는 곳으로 온다고 한다. 셀마는 밤 10시가 넘으면 버스정류장이 아니더라도 운전수에게 이야기하면 정류장 사이에도 내려준다고 한다. 오래 산 뉴욕커들은 새내기들이 모르는 비밀들을 많이 알고 있다.

12월이 되어 창가에 조촐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꺼내 올려놓았다. 솔잎 가지를 얻어다 사슴 귀와 꼬리에 꽂아 주었는데 아기사슴은 귀가 구멍이 작아 솔잎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솔잎귀와 꼬리가 없는 사슴이 안쓰럽고 자꾸 눈에 거슬려 고치러 동네에 나갔다.

첫해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을 때 좁은 공간에 뭘 하나를 더 산다는 게 너무 부담스러워 크리스마스트리 없이 지내려 했었다. 딸아이가 나가서 조그만 미니트리 두개와 나무 사슴을 한 마리 사가지고 왔다. 사슴 한마리가 허전해 보여 작년에 조그만 아기사슴을  한 마리 더  샀다. 12월에만 장이 서는 크리스마스트리와  나무사슴을 파는 데가 우리 동네에는 110가 양쪽으로 두 군데가 있다. 그 중 전에 어디서 샀는지 몰라 한 군데 들렸다. 사슴 모양을 보더니 자기네 사슴이 아니라고 한다. 아마 길 건너편에서 샀나 보다. 그런데 친절하게 귀도 뚫어주고 떨어져 나간 빨간 코를 달아주었다. 돈을 내려고 하니 그냥 가라고 한다. 추운 겨울에 떨면서 일하는 사람을 생각하니, 방울과 목도리도 달아 달라고 하고 삐닥거리는 다리를 고쳐달라고 하면서 사례를 하였다.

뉴욕은 각박하고 삭막한 곳이라고 하지만 살아보면 외로운 사람들, 인정이 그리운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잠깐이지만 따뜻한 정을 나누는 그런 순간들이  기쁨을 준다. 차를 타고 가서 차고로 쑥 들어가는 안락한 삶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길을 걸으면서 버스나 택시를 타면서 사람들을, 이벤트들을, 해프닝들을, 뮤지엄들을, 가게들을, 먹거리들을 뉴욕에서는 불쑥 불쑥 만나게 된다. 밖을 나서면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이 다가온다.

세렌디피디. 

뉴욕에 점점 빠져 드는 이유가  바로 이건 거 같다.

어제 첫눈이 왔다. 창턱에 눈이 수북이 쌓이고, 마치 사슴들이 창밖에 눈 쌓인 숲에서 나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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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진을 찍고 보니 아기 사슴 귀가 너무 커 머리가 무거워 보인다. 동네에 나가 작은 잎으로 바꾸어 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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