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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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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21 - 나의 곰 인형

posted Oct 3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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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곰 인형

 

수술 이틀 전날, 잠을 청하지 못하고 엎치락 뒤치락 하였다. 친구가 보내준 한 손에 꼭 감기는 십자가를 손에 품기도 하고, 수면제를 먹을까 망설이다가, 나의 곰인형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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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서 구입한 Made in Korea 곰인형

 

 

1983년 7월에 뉴욕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168가 컬럼비아 대학 병원 근처 동네가 험악하여 지하철을 혼자 타는 것을 엄두를 못 냈다. 계단에 내려와, 으스스한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만 더 지하로 내려가 1번 지하철을 타게 된다.(요즘에서야 이 지하철역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있다.) 시간이 걸려도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결국 맨해튼에서 몇 달 서블릿하고 있다가 조지 워싱턴 다리를 지나 포트리에 정착했다. 운전면허를 갓 따서 내가 가는 곳은 학교와 남편 직장, 그리고 몇 군데가 안 되었었다. 오자마자 여름학기부터 학교를 시작해서 바쁜 일정이었지만, 사흘에 한 번 씩 당직을 하던 남편이 주말 당직일 때는, 혼자 덩그러니 아파트에 남겨져 훌쩍훌쩍 운 기억이 난다.

시동생이 뉴욕에 놀러 왔다가 시카고에 돌아가면서 여자친구(지금의 동서)에게 준다고 커다란 사자 인형을 하나 사가지고 갔다. 그때 나는 속으로 “다 큰 어른이 무슨 사자 인형이야.”하면서도 내심 부러워했나보다. 어느 날 백화점에 갔다가 곰인형이 눈에 띄어 하나를 집고 보니 1980년산 Made in Korea여서 너무 반가웠다. 그때는 곰인형이었는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코알라 곰이니 엄밀하게 곰 인형은 아니었다. 미국 첫해 크리스마스에는 내 빨간 체크무늬 조끼를 입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지금으로 말하면 애완용 강아지 정도로 여겼나 보다. 그간 미국에 와서 9번을 이사를 하면서, 이 곰 인형을 버리지 않은 것은 정말 잘 한 것 같다. 세탁하면 닳을까 봐 조심조심 아껴서 빨았고 가슴 부분이 튿어져서 꿰매어 주었다. 

2016년 소호 근처에 있는 뉴뮤지엄(New Museum)에서 왜 사람들은 물건들은 수집을 하고, 간직할까 하는 “the Keeper” 전시회를 했었고 그 전시의 일환으로, 캐나다 아티스트 이데싸 헨델레스(Ydessa Hendeles)가 Partners (Teddy Bear Project)라는 타이틀로 3000명이 넘는 가족 앨범 속에 찾아낸  테디베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두 층에 걸쳐 가득 전시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의 소중한 심볼이자,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곰 인형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각별한 것 같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과 함께 한 이 사진들을 보면서, 크리스마스 때 함께 찍은 나의 곰인형 사진을 떠올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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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dessa Hendeles, Partners (The Teddy Bear Project), 2002, from 'The Keeper' at The New Museum, NYC.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https://www.nyculturebeat.com/?mid=Art&document_srl=3484484

 

 

곰 인형이나, 촉감이 부드러운 담요, 인형 등은 정신 분석학자 위니캇(Winnicott)이 “중간대상”(Transitional objec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을 했듯이, 아이들이 엄마와 떨어져 있을 때  불안감을  해소해주고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엄마가 다시 올 것이라는 것을 성장함에 따라 곰 인형이 없어도  알게 된다.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엄마가 일을 하셨기 때문에 계단에 앉아서 엄마를 많이 기다린 것 같다. 대문을 못 잠그게 하고 엄마 올 때까지 대문 밖 계단에 기다리곤 했다.

머리털이 까만 고무로 되어, 눕혔다 일으키면 눈이 깜빡 뜨는 인형이 있었는데 언니와 싸우다 언니가 가위로 코를 잘라서 울었던 인형이 떠오른다. 그리고 또 하나는 큼지막한 미제인형, 갈색 머리털에 얼굴에 주근깨가 있고 입술에는 두 개의 어금니가 붙어있고, 가슴에 구멍이 있어 줄을 잡아당기면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고장이 나서 말은 못 하던 인형, 하얀 신발과 빨간 옷 색깔까지, 인형들은 지금 존재하지 않지만 내 기억 속에는 선명하게  남아있다.

“18마일의 책들”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는 맨해튼의 제일 큰 독립책방,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에 얼마 전에 들린 적이 있다. 2층에 올라가자 눈에 잘 띠는 곳에 진열된 사진작가 마크 닉슨(Mark Nixon)의 “Much Loved” 책에 시선이 갔다. 어린 시절의 인형들, 많이 만져서 구멍이 나고 헤어지고 귀 한 짝은 없어지고 한 인형들과 그 인형들에 얽힌 스토리들이 적혀 있다. 원래는 Mark Nixon이 여기 책의 사진들을 가지고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 사진들이 웹에 올라가게 되고, 곰 인형에  얽힌 스토리와 댓글 등 반응이 너무 뜨거워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다고 한다. 털이 여기저기 빠지고 닳은 인형 사진들이 나이를 막론하고 우리 자신이나 가족들의 어린 시절에 대한 많은 스토리를 떠오르게 하고 마음에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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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니 내 곰 인형은 “엄마 나라”인 한국에 정을 떼고 미국을 내 집(Home)으로 받아들일 때까지 “Transitional object”로 내 자신에게 준 선물이다. 한국 간다고 가방을 쌀 때면 며칠 밤을  설래서 잠을 못 이루고, 공항에서 미국에 들어올 때면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에서 헤어 나와 미국이 내 집처럼 여겨질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요즘은 나의 곰 인형은 대부분 침대를 장식하는 필로우처럼 배개사이에 앉아 있지만, 몸이 힘들 때, 많이 아플 때나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울 때, 침대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수면제를 먹기 전에 이 곰 인형을 시도해 본다. 안고 한쪽 손을 잡고 잠을 청해 본다. 안았을 떄의 오동통한 크기의 포근한 느낌과 손의 감촉이 좋다. 어떤 때는 스르르 잠이 들기까지 한다. 

“진실은 허구보다 더 낯설다(Truth is stranger than fiction).”는 말처럼, 곰 인형의 손을 잡고 잠을 청한 다음날 아침,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수술차트에 기록의 오류가 있어, 내가 수술을 안 받아도 된다는 것이다. 2주간의 회복기간으로 묶여있을 줄 알았던  날들이 선물처럼 나에게 오롯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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