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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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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23 - 농콩훤다 인애테넘~

posted Dec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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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23 - 농콩훤다 인애테넘~

 


농콩훤다 인애테넘~ 농콩훤다 인애테넘~ (non confundar in aeternum)....
한밤중에 깨거나 아침에 눈을 뜰 때, 이 구절을 부르면서 잠이 깬다. 나의 달콤한 꿈(sweet dream) 내지 악몽(nightmare)의 시작은 9월에 옛 동네 이웃 머리씨와의 전화통화에서 비롯되었다.


90일 전
머리씨가 합창 연습하러 매주 우리 동네로 온다고 한다. 연습장소가 우리 집에서 걸어서 6분정도 걸린다. 새 시즌이 다음 주에 시작하는데 관심있으면, 아직 오디션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거의 30년 전에 교회성가대에, 애기를 봐주고, 또래 친구들이 다 성가대에 조인했다는 이유로 일년 반 정도 합창을 한 적이 있다. '십자가의 칠언' 부활절 공연을 준비하느라, 애들을 맡기고 저녁에 부랴부랴 연습을 하러 갔었는데, 너무 급히 나가느라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나가 황당해 하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나의 합창 경험의 전부다.
그간의 삶이 “영수국”에만 치우쳐 책상에서만 맴돌았다면, 이제 “음미체”를 해야지 앞으로의 삶이 풍성하고 재미있을 것이라 여겨, 쓰지 않았던 감각들을 쓰려고 한다. 그중 아마도 “음”이 나의 삶에서 제일 거리가 멀지 않았나 싶다. 더 나이 들면 소리도 안 나오고 노래도 못 부를 것 같아 용기를 냈다. 이제는 내가 소극적으로 듣거나, 보는 것보다, 직접 경험하고 참여해보고 싶어졌다.


오디션 날
오디션에서 무얼 하는지 몰라 “문리버(Moon River)” 악보를 달랑 프린트해서 가지고 갔다. 전 아파트 살 때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처럼 화이어 이스케이프에서 기타치고 부른다고, 보이스 레슨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들 앞에서 한번 불렀는데 아들이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을 보았다. “엄마 소리가 달라졌어.” 아들의 눈동자의 변화를 보고 내가 노래를 여태까지 못 부른 것은 소리 내는 법을 몰라서 그렇지, 잘 트레이닝을 받으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잠시 품어 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래서 그 악보를 들고 오디션에 갔는데 “문리버”를 부를 기회는 없었고 음계가 어디까지 올라가는지를 보고, 화음을 누르고 그 음을 따로 내 보는 것, 그리고 오디션에 온 사람들에게 “Ave Verum Corpus” 각 파트를 함께 부르게 했다. 나는 도레미파솔라시도레미 이후에는 힘들어 멈추었는데, 같이 오디션을 본 젊은 친구는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 친구와 함께 소프라노 “Ave Verum Corpus”를 불러 그나마 다행인 것 같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오디션에 떨어진 사람들은 없었고 악보를 볼 줄 아는지 확인하고, 파트배정을 하려 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한테는 큰 승전가였다.

 

 

Breakfast-Tiffany-Audrey-Hepburn_resize.jpg

 


연습 첫날
몸을 스트레치하고 긴장을 풀어주는 가벼운 체조부터 시작해서, 구부려서 “후웁” 하고 숨을 마시고 “쉬.....”하고 숨을 빼고 점점 일어나서 오오 오오오오 ~ 아아 아아아아~ 화살을 쏘는 것처럼 앞뒤로 움직이면서 소리를 내고.... 음악 속에 나를 퐁당 담가 사람들이 내는 소리의 하모니들이 마치 나에게서 나오는 것 같은 소리인양 마냥 행복하였다.
 


20191222_230627_resize.jpg

 


60일 전
소프라노에 들어갔다가 음이 너무 높아서 부를 수 없는 구절이 너무 많았다. 억지로 소리를 내니까 집에 오면 목이 쉬어 있었다. 주변에 물어보니 소리를 편안하게 내야지 아니면 성대가 상한다고, 그리고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일단 알토로 옮기니 소리는 편안하게 낼 수 있었는데 문제는 메인 멜로디가 아니니 정확한 음정을 잡기가 힘들었다. 뒤늦게 알토에 조인하니, 이미 연습하는 자리가 형성되어 비집고 들어가기도 쉽지 않았다. 뒷줄에서 혼자 앉아서 부르니, 한 분이 제일 앞줄 빈자리에서 연습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내 옆에 앉던 사람들은 다음 주에는 다른 곳으로 사라져 버리고 내 옆자리는 비어 있거나 늦게 온 사람들이 앉아 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내가 음정을 하도 불안하게  잡으니  다른 사람들이 도망가는 게 아닐까 짐작이 간다. 짐작이 거의 확실한 것 같다. 바늘방석이다. 친구한테 나의 애환을 이야기했더니 합창단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센 언니의 비호를 받아야 합창단 생활이 평탄하고 그렇지 않으면 발붙이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45 일 전
설상가상으로 감기에 걸렸다. 소리를 낼 수 없어 연습에도 빠지고 집에서도 노래를 거의 2주 동안 부를 수가  없었다. 그냥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3번 연습을 빠지면 공연을 할 수 없는데 벌써 두 번이나 빠졌다. 아마도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기타를 치면서 가벼운 팝송을 부르는 정도였는데, 여기는 모짜르트에다 하이든에 라틴과 독일어, 내가 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30 일 전
목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다시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나 혼자서는 자신이 없어, 전에 “문리버” 레슨 받던 선생에게 연락해  보이스 레슨도 받았다. 어떻게 해서든 틀리지 않고 정확한 소리를 내고 싶어, 전에 옆에 한 번 앉았는데 부른 음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절대 음감을 가지고 있는 단원이 있었다. 지휘자 바로 앞자리여서 왠지 열심히 불러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지만 무릅쓰고 그 단원 옆에 비집고 앉았다. 그런데 연습 도중 이 사람이 너무 모욕적으로 나에게 대했다. 음이 틀리면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면서 맞는 음의 소리를 내고, 악보를 찾느라고 뒤적거리니까, 이 정도는 외워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박자가 틀리니까 “지휘자를 안보냐”고 나를 무시하는 어조로 이야기했다.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잠시 생각하다 아무소리 못하고 집에 왔는데 기분이 상해서 잠을 설쳤다.
생각 같아서는 다 때려치우고 그만두고 싶은데, 그러면 내가 지는 거다. 그 사람 말대로 호산나를 다 외우고 음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구절을 연습했다. 한 주 연습하는 동안, 내가 엉뚱한 소리를 내는 구절이 너무 많고, 박자도 신경 쓰지 않아 그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 할 만 했네하고 거의 용서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 다음 주에 가서 연습 전 화장실에서 딱 마주쳤다. 그 사람도 미안했던지 반갑게 인사를 했다. 기회는 이때다 하고, 먼저 충고가 많이 도움이 되어 고마웠었다고 “호산나”도 외우고 연습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런데 나에게 이야기 한 말투와 태도가 상처를 주어, 잠도 잘 못 잤다고 “I message”를 말하였다. 그간의 나의 사정과 입장을 설명하고 나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그때 힘든 일이 있어서 그렇게 이야기한 것 같다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했다. 다행이도 그 사람이 잘 받아 주어서 마음의 불편한 짐은 벗어날 수 있었다.


1주 전
마음은 편해졌는데 그래도 그 사람 옆에는 내가 노래 못하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무서워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그 사람의 따끔한 일침이 아마도 나에게서 도망친 사람들보다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젠 옆에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그들보다 내가 도드라지지 않게, 가사를 외우려 하고, 음을 내보고 피아노와 맞추어 엉뚱한 음을 내는 것을 고치려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2일 전 드레스 리허설
어떤 자리가 적당할지 몰라 '나의 센 언니' 머리씨 옆에 섰다. 그동안 안다고 머리씨에게 의존하기 싫어 가능한 한 멀리 있었다. 너무 중앙인 것 같아 옆의 사람과 바꾸었다. 자리가 정해지니 마음이 편안했다. 조명 때문에 악보의 가사가 잘 보이지 않았다. Reading light를 악보에 붙이는 사람도 있었다. 집에 가서 내가 외우지 못한 가사 부분은 혹시 안보일까 봐 “페르싱귤로 디제스 베네딕시머스테” 이런 식으로 한글로 크게 썼다. 모양 빠지지만 역시 한글이 제일 빠르게 눈에 들어올 것 같아서. 이즈음에는 밤에 눈을 감으면 “농콩훤다 인애테넘”정도가 아니라 오선지에 콩나물 대가리가 떠다니는 게 보일 지경이었다.

 

 

 

concert_resize.jpg

 


콘서트 당일
아침부터 가사가 안 되는 부분을 다시 점검하고 노래를 불렀는데 절반쯤 되니 벌써 목이 쉬려고 한다. 노래는 안 부르고 입술로 종알종알했다. 일주일전에는 가사를 외었다고 오늘도 그 가사를 아는 건 아니었다. 막상 콘서트 할 때는 긴장되었던 마음이 사라져 버리고, 지휘자의 표정과 웃음이 나를 릴랙스하게 하였다. 지휘자를 열심히 보고 노래했다. 내가 그전에 겪었던 마음의 고초들, 새내기의 긴장감을 노래에 날려 보냈다. 실전에는 내가 강한가? 그래도 음정은 모르겠다. 남편과 보이스 선생의 얼굴이 들어왔다. 내가 입을 벌릴 때 벌렸다고 웃어주었다.

콘서트 하루 후
교회에서 연합성가대 메시아 합창이 있었다. 전에는 합창 프로그램에 관심이 없었는데, 내가 합창을 경험하니 관객으로 듣고 싶었다. 전에는 솔로이스트에게만 눈길이 갔었는데, 이제는 단원 한 사람에게 일일이 시선이 머물고, 여기 서기까지 어떤 애환과 스토리가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되고 박수를 맘껏 쳐주었다.

PS. 콘서트 마지막 곡, 하이든의 테 데움 (Te Deum)의 마지막 6페이지가 계속
농콩훤다 인애테넘으로 계속된다. 영어번역은 May I not be confounded forever, 나를 영원토록  혼동에 빠지지 않게 해 주세요이다. 아직도 꿈에서는 가끔 읊조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iUHieXrO9PI
F. J. Haydn - Te Deum BBC Symphony Orchestra and Chorus, and the BBC Singers conducted by Sir Andrew Davis

 

홍영혜-프로필이미지.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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