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33 - 인간이 주는 선물

posted Dec 3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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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33 : 인간이 주는 선물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 그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다. 그 결과로서 삶을 더욱 긍정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얼마 전 75세 재일교포 인권운동가의 저항전기('변화를 일궈온 이방인')를 접하게 된 것은 작은 책임감에서 비롯되었다. 오래전 그가 한국에 머문 동안 향린교회에 출석했다는 알지 못한 인연으로 인해 어떤 요청을 느낀 것이다. 다행히, 책에 담긴 그의 예사로운 이야기는 소박한 진실에 관한 것이었다. 관심을 끈 것은 인권운동가로서 의식이 무르익어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 스스로 성장해가며 내일을 열어가는 민중의 이야기였다. 

최승구 님은 1945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한인 2세다. 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성장하면서 필시 정체성의 문제를 겪게 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을 찾고자 하는 물음을 던졌다 하여 곧장 편협한 내셔널리즘을 넘는 자각으로 도약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 자신과 자기를 둘러싼 세계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과거의 껍질을 벗기 시작했다.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엄연한 사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에는 조선인을 차별해 온 일본의 역사와 사회상황을 이미 반영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가 인권운동가로서의 의식을 분명히 하게 된 계기는 1970년 ‘히타치 투쟁’이었다. 같은 재일 한인 2세 박종석 씨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채용 결정이 번복되면서 불거진 이 사건은 4년간의 긴 재판 투쟁을 거쳐 마침내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기업인 히타치 제작소로부터 ‘차별에 관한 시인과 사과’를 얻고 법적으로 승소한다. 한국사회의 지지와 연대, 세계교회(WCC)의 협력이 동반된 이 투쟁은 일본 사회에서 이정표를 세운 대단히 중요한 결과를 낳았다. 이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최승구 님은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나눈다. 

히타치 취업차별 사건이 벌어졌을 때, 한반도의 통일이나 민주화 운동에 관여해온 재일 민족단체는 그 문제에 관여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본명과 신분을 감추고 일본 대기업에 들어간 한인 2세가 본인의 일을 민족차별이라는 이슈로 삼아 사회적 소란을 일으킬 자격이 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승구 님은 히타치 투쟁에서 ‘자립적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박종석이라는 사람에게 주목한다. 그 투쟁이 성공한 ‘최대 요인’을 박종석 자신이 일본 사회에 만연한 차별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조선인으로서 각성해가는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그것은 민족의 주체성을 세우는 것이 이론이나 이치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삶의 방식에 관한 문제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 본질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가 민족·민중운동을 가와사키시의 지역활동을 통해서 구현해가려고 한 이유였을 것이다. 

한국 유학을 마치고 <자이니치문제연구소, RAIK>의 주사로 활동을 시작하여 사회복지법인 ‘세이큐사’의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할 때까지, 그는 민족차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보루’를 지역사회에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 삶이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존경하는 어른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함께 한 동지들로부터 문제 제기와 배척을 당했을 때 그는 실패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웅적이지 않은 삶을 담담하게 풀어낸 그의 진술에는 설득력이 있다. 바람이 불고 간 다음에 다시 일어서는 풀과 같은 사람들의 모습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운동이란 삶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 운동 자체가 목적이 되고, 비판이 다른 기회를 얻기 위한 도구가 될 때, 우리는 인간을 잃게 된다. 그는 재일 민족운동이 일본 사회를 비판하는 일만으로는 안 되며, 조선인으로서 삶의 문화를 꾸준히 창조하는 것이 주요역할이라고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성찰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귀담아들어야 할 지혜가 된다. 

최승구 님은 소수자 내셔널리즘을 긍정하는 ‘공생’에 관한 접근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정책과 일체화된 ‘다문화 공생’에 관한 활동이 실제로는 ‘현대판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그의 통찰은 후쿠시마 사태 이후 반핵연대운동에 매진하는 과정에서도 이어진다. ‘방사능도 자본도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데, 우리는 왜 국민국가의 틀을 절대시하는 한계에 있느냐’고 외치는 연대의 목소리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회한이 교차하는 것 같다. 

혹한의 겨울을 지나는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아픔과 고통의 몸부림이 차가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부산에서 시작된 김진숙 님의 무거운 발걸음에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김미숙 님의 배고픈 기도에도, 세월호진상규명을 위한 전인숙 님의 긴 농성에도, 한과 꿈이 교차한다. 최승구 님의 삶에도 다 기록하지 못한 많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일조선인 2세로서 자기를 세우기 위해 벌인 ‘인간운동’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가 의도치 않은 선물이 독자의 마음에 맺힌다. 그것은 인간만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다. 한의 연대요, 꿈의 연대가 구성하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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