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맥주를 탐하는 지식 1 - 크래프트 맥주 마시는 방법! 편의점에 간다! 산다! 마신다!

posted Oct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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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덕목사 시즌2

편의점 맥주를 탐하는 지식 1


크래프트 맥주 마시는 방법! 편의점에 간다! 산다! 마신다!
 

 

1

 

날이 선선해 졌다.
집 뒤에 큰 산이 있는 우리 동네에선 제아무리 신선한 바람을 좋아한다 해도 새벽에 창문열고 잠자는 것은 어렵다. 벌써부터 해 떨어진 뒤의 차가움이 만만치 않아서다. 맥덕들에게 있어 가을은 ‘야맥(야외에서 마시는 맥주)’을 의미한다. 편의점 앞에 파라솔이라도 놓여있다면 생선가게 앞 고양이처럼.......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거기에 맥주축제라도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랴! 가을에 열리는 맥주축제는 여름 휴가철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여름에 열리는 맥주축제는 메마른 목젖을 달래고 타버릴 것 같은 몸의 열기를 식혀주는 느낌이다. 이에 반해 같은 주제로 열리는 행사지만 가을의 맥주행사는 무언가 더 정감 있고, 맛의 깊이도 또 풍미도 더욱 진할 것 같다.

이런 느낌적인 느낌의 계절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얼마 전 ‘뱅크크릭 브루잉’을 찾았다. 충북제천 솔티마을 안쪽에 위치한 이 양조장은 직접 재배한 홉을 이용해 맥주 빚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을 이름을 따 만든 브랜드 ‘솔티맥주’는 블론드 에일, 트리펠, 세종 등 개성 있는 벨기에 스타일의 맥주들로 라인업이 구성되어 있다. 뱅크크릭에서는 이맘때쯤 홉 축제를 개최한다. 사전 예약 기준 3만5천원을 내면 바비큐, 샐러드와 함께 제공되는 맥주들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나는 정오 쯤 도착해서 해 질 때 나왔으니 맥주와 함께 점심, 저녁, 간식을 해결한 셈이다. 아참! 갓 구운 붕어빵도 먹었다. 올해는 양조시설 견학과 함께 증류주 체험도 해볼 수 있었다. 나올 땐 체험했던 증류주 한 병과 듀벨 타입의 맥주도 선물로 받았다. 정말 뭐가 남나싶은 행사였다. ‘지 자랑’ 같은 이런 얘길 뭐 하러 하나 싶은 분들이 계실 듯하여...... 자랑은 맞다. 부러우면 지는 거니 각자 알아서들 하시고! 제목을 다시 보시라! 크래프트 맥주, 오늘의 주제가 이거라서 이 얘길 하고 있는 것이니 너무 노여워 마시길! 그럼 크래프트 맥주와 편의점 이야기 시작!             

 


2

 

크래프트 맥주란 무엇일까? ‘공예’나 ‘기술’과 같은 단어로 직역할 수 있는 ‘크래프트(Craft)’라는 이름을 가진 이 맥주는 기성의 대규모 공장제 생산방식과는 다른 결을 가진다. 이에 대해 미국 양조사협회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독립자본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양조장에서 전통적 양조법으로 빚어지는 혁신적 맥주.

전통적인데다가 혁신적이기까지 하다니 정말 거창하다. 한국에서는 하우스맥주, 크래프트 비어, 크래프트 맥주, 혹은 수제맥주 등으로 명명되어 온 이들 맥주들은 카스로 대표되는 대규모 맥주공장에 비해 다품종소량생산의 특징과 함께 현격한 맛의 차이를 보인다.  

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는 약 120여개의 크래프트 양조장이 맥주를 생산하고 있고, 10여개가 문 열 준비를 하고 있다. 맥주하면 쐬주 마신 후 입가심, 혹은 폭탄주의 재료이거나 노래방에서 마시는 갈증해소 음료 정도가 일반적 인식인 한국음주문화 속에서 그간 크래프트 맥주는 성장과 안착이 쉽지 않았다. 국내에서 생산되지만 만원에 네 캔이나 살 수 있는 외국산맥주보다도 접근성이 떨어졌고, 각각의 개성이 강하다보니 유통과 관리도 까다로웠다. 게다가 올해까지 적용되고 있는 종가세 세법 하에선 가격경쟁력 역시 확보할 수 없었다. 기성맥주에 비해 재료도 많이 들어가고 빚는 시간도 길어 생산원가가 높기에, 버는 돈은 적은 반면 세금은 많기 때문이다. 이와는 별도로 교육세도 30%나 책정된다. 그러니 이쯤에서 이 땅의 맥주애호가들이여! 대한민국교육의 수호자임을 인식하며 손에 쥔 맥주잔에 자긍심을 가지시길!  

아무튼! 이 때문에 많은 성장과 인식변화에도 불구하고 크래프트 맥주는 여전히 맥주마니아들이나 여유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세금도 그렇고 뭐 다 알겠는데 어쩌랴. 내 주머니는 가볍고 주변에선 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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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난해부터 괄목할만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크래프트 맥주의 소매판매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 뿐 아니라 편의점에서도 하나 둘 등장하는 크래프트 맥주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중 가장 먼저 주목받았던 것은 ‘세븐브로이’다. 강원도 횡성에 본사를 둔 세븐브로이는 청와대 공식만찬주로 사용된 이후 급속하게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IPA 스타일의 세븐브로이의 성공이후 강서, 서울, 전라 등 지역이름을 내건 맥주들을 출시하고 있고, 자체 브랜드 맥주들을 판매하는 펍도 여러 군데 문을 열었다. 이밖에 아크바이코리아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광화문’, 카부루의 ‘경복궁’ 등도 속속 편의점 진열대에 등장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보지 못했지만 속초에 있는 편의점에서 ‘크래프트 루트(Craft Root)’의 ‘동명항 에일’을 사서 마셔볼 수 있었다. 설악산 자락에 있는 양조장 펍에 갈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만큼 맛있었다.

최근에는 이들 편의점 크래프트 맥주가 세 캔에 9900원으로 묶여 판매되고 있다. 한 캔 부족하긴 하지만 외국맥주와 큰 차이가 없고(라곤 했지만 사실 한 캔은....... 큰 차이이긴 하다. 뭐 그래도!), 기성맥주들보단 싼 것이니 이쯤 되면 사서 마셔볼만하지 않겠는가? 가격경쟁력과 접근성 등 앞서 언급했던 크래프트 맥주 성장의 제한들이 점점 해결되고 있는 상황에 반가운 마음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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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아직 넘어야 할 문제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역시 ‘돈’이다.
우선 맥주를 캔에 담는 공정에 사용되는 장비가 상당한 가격이다.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양조장은 반자동 혹은 수동식 장비를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맥주는 공기와 만나게 된다. 공기를 만난 맥주는? 산패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산소와 닿지 않도록 해주는 장비가 없는 양조장의 맥주는 캔에 넣었어도 일주일 내에는 마셔야 맛의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법적규제가 해결되었다 해도 안정적 자본을 확보하지 못한 양조장들은 경쟁에서 더욱 밀려나게 될 가능성도 있겠다. 종량세로 전환되는 세법도 크래프트 맥주에게 마냥 행복한 상황은 아닐 수도 있겠다. 외국맥주 네 캔은 어떻게 해서든 유지될 것이고(그렇지 않다면 전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테니까), 대기업 맥주는 자본을 이용해 대안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달성한 법제개정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비대칭적 상황은 여전할 가능성도 크다 하겠다.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 기쁨과 후회, 보람과 안타까움이 빼곡하게 정리될 이 시간....... 차분하게 돌아보기 위해, 혹은 격려와 위로를 위해 맥주 한 잔 필요하지 않을까? 그럴 때 집 가까운 편의점 진열대에서 크래프트 맥주 하나 꺼내 들어보면 어떨까 한다. 그 맥주에 담긴 이야기와 개성 있는 맛이 손에 쥔 이의 마음에 평안을 전해 줄 것이다.   
 
Tip!
앞에서도 말했지만, 가급적 빨리 드시길! 뭐 크래프트 맥주를 집에 가져온 이라면 그리 오래 남아있을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캔 맥주라 하더라도 가능한 전용잔에 따라 마실 것을 권한다. 그 업체가 만든 잔을 구할 수 없다면 술의 특성에 부합되는 맥주잔을 사용하면 되겠다. IPA 등의 에일에는 투박한 컵을, 밀 맥주에는 목이 긴 맥주잔을 사용하는 것이 그 예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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