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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탈핵 이야기 12 - 끝은 또 다른 시작, 삼척부터 고성까지 걷다

posted Jul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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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탈핵 이야기 12 - 끝은 또 다른 시작, 삼척부터 고성까지 걷다

 

 

‘7월 1일부터 2020년 여름 탈핵도보순례를 하려고 합니다. 삼척-동해대진-등명해변-경포대-지경리-동호해변-장사항-송지호-화진포 등으로 예정합니다. 함께하실 분은 7월 1일 오전 8시 30분에 삼척우체국 앞으로 와주세요~탈핵!-일곱째별 드림’

이렇게 나의 여섯 탈핵 벗들에게 보낸 문자로 2020년 여름 탈핵도보순례는 시작한다. 

 

6월 마지막 날, 빗속을 달려 경주시청 앞에 갔을 때는 오종태 나아리 비상대책위원장 단식9일째였다. ‘마을 공공자금 유용 및 횡령의혹’으로 홍중표 나아리 이장을 교체해 달라는 명분이었다. 오후 2시 집회를 보니 제대로 된 연대도 투쟁 경험도 없었다. 막막했다. 소금 한 알갱이, 효소 한 모금 없이 생수로 연명하는 위원장을 두고 나아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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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청 앞 단식 9일째

 

 

2,135일째 투쟁하는 황분희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 부위원장님을 만나 월성핵발전소 앞에 가보았다. 평온한 바닷가에 어린아이들과 가족으로 보이는 어른들이 놀고 있었다. 방사능의 위험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눈앞에 시커먼 돔들이 보이는 곳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을 데려오는 건 무지일까 무감각일까? 나는 해변에 앉아있는 젊은 엄마들 뒷모습에 아픈 눈길을 보냈다. 올 여름 탈핵도보순례는 그렇게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 핵발전소 앞에서 본래의 취지를 가다듬고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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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나아리에서 삼척으로 가는 길에 빗발이 굵어지더니 비가 세차게 내렸다. 

구룡포, 포항, 영덕, 평해를 지나 밤이 내린 7번국도 어디 만큼 가는데 오른쪽에 시커멓고 둥그런 테두리와 세로선으로 휘황한 불이 번쩍번쩍 켜져 있었다. 

‘오징어잡이 배가 이렇게 해안 가까이 있나?’

산만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는 것처럼 도로 옆 화려한 불빛에 잠시 몽롱했다. 그러나 수초 후, 그 형체가 무엇이라는 걸 감지한 순간 온몸이 오그라들며 소름이 끼쳤다. 그건 바로 울진 핵발전소 돔들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눈앞에 등장한 시뻘건 불빛들. 송전탑들의 행진이었다. 마치 지옥 아가리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주행이었다. 전기 생산지와 소비지를 연결하는 송전탑 행렬은 차를 멈출 수 없는 빗길처럼 절망적이었다. 그 끔찍한 장면은 공포영화의 절정처럼 탈핵도보순례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2020년 7월 1일 수 삼척우체국~동해대진 23.4km

비오는 7월 1일 아침, 노랑과 연두 레인커버를 씌운 배낭 둘이 삼척 우체국 앞에서 기다렸다. 더 이상 오는 이가 없었다. 약속했던 8시 30분에 정확히 출발했다.  

 

삼척우체국은 지난 2월 15일, 울진부터 시작한 4박5일 탈핵도보순례의 마침표를 찍었던 곳이다. 핵발전소 부지 고시 철회라는 승리의 기운을 안고, 이어서 다시 도보순례를 시작하고자 했다. 그러나 겨울에 이어 여름에도 순례 첫 날엔 비가 왔다. 침낭과 생필품으로 가뜩이나 무거운 짐에 우비와 우산까지 얹히니 어깨와 다리에 느껴지는 하중이 상당히 무리였다. 게다가 삼척시내는 시작부터 오르막길로 도보순례자를 쉽사리 벗어나게 놓아주지 않았다. 동해역을 지나 정오가 지나자 한섬해변이 나왔다. 이번 순례 첫 여름바다였다. 거친 파도의 묵호항을 거쳐 동해시 대진에 다다랐다. 동해안에 ‘대진’이란 이름은 몇 군데나 등장한다. 겨울에 갔던 삼척시 동막리 대진에 비해 동해시 대진은 드넓고 밝았다. 그리고 바닷가 인심은 그때처럼 여전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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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곳에서 다시 시작

 

 

7월 2일 동해 대진~안인진 24km

아침 7시 50분, 어달해변과 대진항 사이에서 출발했다. 망상해수욕장을 지나 자외선 아래 숨을 곳 없는 도직교 위에 털썩 앉았다. 이때부터 나의 탈핵 벗은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고생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걸음을 늦출 수도 멈출 수도 없는 게 도보순례다. 거대한 한라시멘트 공장을 지나 옥계해수욕장으로 들어갔다. 공업용수와 교통시설이 확보된 곳에 공장부지가 있다는 건 사회시간에 배워서 알지만 도보순례 중에 보는 절경과 공장이나 발전소의 조합은 번번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옥계해수욕장에서 한식뷔페로 배를 가득 채우고 솔숲에서 소금기에 젖은 몸을 말리며 한숨 잤다. 

금진항 지나 헌화로 초입에 몽돌해변이 등장했다. 푸른 바다가 일렁일렁 달려들었다가 흰 파도로 변해 차르르르 빠지면 다글다글 몸을 굴리며 온몸으로 웃어대는 몽돌들과 함께 나와 벗도 까르르르 웃어젖혔다. 나는 몽돌과는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었고 벗과는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었다. 7박 8일의 도보순례 중 그 순간이 가장 짜릿했다.   

     

심곡리를 지날 때였다. 공공근로를 나오셔서 그늘에 앉아 쉬고 계시던 어르신이 땡볕 아래 등판보다 크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비척비척 걷는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젊을 때 걸어야지. 늙으면 걷고 싶어도 못 걸어요.” 

앞으로 얼마를 더 걸을 수 있을까? 걸음마다 적립금이 쌓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동진에는 망상해수욕장과 마찬가지로 개장 준비를 하는 포크레인들이 사람보다 먼저 백사장을 밟고 있었다. 그네에 앉아 시원하고 유쾌한 휴식을 취하고는 목적지였던 등명해변솔향캠핑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야영장은 물론 주차장도 사용할 수 없다는 현수막을 보고는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소나무를 지키겠다는 의지인지, 마을 숙소를 유료 이용하라는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그곳에서 쉴 생각만으로 걸어온 나는 마음이 상했다. 그래서 이미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지만 그 마을을 지나쳤다. 그리고는 결국 2km 더 가다가 해질녘이 되자, 터널 위 자전거 쉼터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물도 화장실도 없는 한 데에서 생수 한 병과 라면으로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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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과 함께 걷는 탈핵의 길

 

 

7월 3일 금 안인진~순긋해변 22km

노상에서 일출을 본다는 건 살면서 몇 번 해보지 못할 경험이다. 태양이 회색빛 구름을 주황빛으로 물들이며 서서히 떠오르자 세상의 어둠과 빛은 오전 교대를 했다. 

새벽 6시 10분부터 또 걸었다.   

함정전시관을 거쳐 안인해변으로 내려가자 ‘춘천집’이란 가정식백반집이 있었다. 이른 아침에 가자미를 노릇노릇 따끈하게 구워 노동자들의 밥상을 차려주는 그 식당엔 제비 식구들이 들락날락거렸다.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낭만적인 기분은 잠시, 한국남동발전 영동에코발전본부 앞에는 네 명의 노동자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었다.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고 직접 고용을 하라는 요구였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故(고) 김용균이 스러진 지 1년 반이 지나도 달라진 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발전소 앞으로 지나며 3초간 고인을 기리는 묵념뿐. 

 

공군 제18전투비행장에서 잠시 쉬고 기나긴 가로수 길을 걸었다. 가는 내내 고막을 찢는 듯한 비행 굉음이 아픈 다리보다 더 고역이었다. 하지만 끝이 없을 것 같은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가 버린다. 이것이 걷기의 묘미. 고통이든 기쁨이든 영원하지 않다. 그러므로 다만 지나치는 현재, 그 순간을 살아야 한다. 마을로 들어서도 소음은 지독했다.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몸을 누였다 걸으니 큰길이 나왔다. 송정솔숲에 누워 잠시 낮잠을 잤다. 어디든 머리만 대면 잠이 드는 게 노숙자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솔향이 사람에게 좋은 건 확실히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람 많은 경포대는 되도록 빨리 지나치고 싶었다. 서둘러 좀 넓은 숙소를 마련해야 했다. 또 다른 벗들이 오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이름도 예쁜 순긋해변에서 광주에서 여섯 시간, 청주에서 세 시간 걸려서 온 벗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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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의 외주화 금지 직접 고용 촉구

 

 

7월 4일 토 순긋해변~남애3리 해수욕장 22km

아침이 되자 서울에서 또 한 분의 벗이 왔다. 탈핵도보순례자는 둘에서 다섯이 되었다. 두뇌들이 늘자 합리적인 의견이 나왔다. 우리는 사흘간 시지푸스의 바위처럼 떠메고 다니던 배낭을 차에 실어 보내고 가볍게 걷기로 했다. 고행이 이승의 목적이라도 되는 듯 살아온 나에게 친구들이 말리고 선사해준 가벼움이었다. 

 

주문진항 ‘선화네’에서 니키가 긴급재난기금으로 대구탕과 오징어볶음과 막걸리를 사주었다. 오리진 항 근처 바위로 바다를 가둔 자연수영장에서 잠시 쉬는 시간에 탈핵순례자 신고식이 있었다. 침례처럼 바닷물에 몸을 담갔다 나와서 “탈핵!”을 외치는 신참 순례자를 보고 새로운 순례 역사가 펼쳐지는 듯 모두는 환호했다. 

 

지경리 솔밭에 앉아 우리는 돌아가며 노래를 한 곡조씩 불렀다. 니키는 목련화를, 관지는 해당화를, 청명은 통일을, 나는 초록빛 바닷물과 으낭 몫의 미루나무를. 나흘째 무거운 짐을 메고 걸은 으낭은 발바닥 물집마다 오색실을 달았으나 긍휼히 여김 대신 바세린을 바르지 않은 탓이라는 면박을 들어야만 했다. 해변의 솔숲은 햇빛에 반짝였고 우리의 웃음은 여름 공기를 더욱 온화하게 했다. 함께 걸어 같은 길을 간다는 연대의식 속에 사랑은 풍성히 피어나 넘치고 있었다.

 

주말이라 가는 데마다 빈 숙소가 없었지만 예약도 안 한 우리는 남애3리 해수욕장 입구에서 슈퍼를 겸한 독채 민박을 관지의 지혜로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다. 널찍한 공간에서 처음으로 탈핵도보순례 정식 나눔을 했다. 메모를 하지 않아 기억만으로 더듬어 보면, 청명은 핵발전소의 전기가 공급되는 길은 불평등의 길이라며, 도시가 쓰는 전기는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의 눈물이라고 했다. 니키는 작년여름에 이어 일 년 만에 함께 걸어서 좋다고 했던 것 같다. 관지는 오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탈핵도보순례가 인생 섭리 속에 있었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경주에서 느꼈던 막막함과 친구들이 온 것이 (단지 나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동안 내가 헛살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하며 울컥했다. 으낭은 둘이었을 때는 한 명이라도 낙오될까봐 불안했는데 다섯이 되니 독수리 5형제처럼 든든하다고 했다. 나눔을 마치고 니키는 서울로 돌아갔다. 청명 덕분에 그날 저녁 강릉초당두부와 과일을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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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독수리 5남매

 

 

7월 5일 일 남애3리 해수욕장~수산항 23km

으낭이 짐 실은 차로 출발하고 관지와 청명, 셋이 걸었다. 12km 위 38선휴게소에서 목적지에 주차하고 돌아온 으낭과 다시 넷이 되었다. 하조대를 지나 동호해변 근처에서 청명이 삼겹살과 열무국수와 막걸리를 사주었다. 다들 걷기의 달인들이라 목적지인 수산항에 도착해서, 차로 낙산사 입구까지 들렀는데도 오후3시에 속초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차안에서 청명이 말했다. 우리가 걸을 때 누군가는 몸자보의 ‘핵발전소 없이 안전하게 살자’는 문구를 본다고. 그래서 우리가 걷는 거라고. 아마 내가 전날 나눔 때 ‘처음 순례를 시작하던 며칠간 너무 힘이 들어서 대체 내가 왜 걷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 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길이 있으니까 걷고, 걸으면서 의미 있는 일을 겸하고, 그 의미로 생명을 지키는 사랑의 방법인 탈핵을 평화롭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길도 함께 걸을 사람이 없다면 그저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란 걸 이미 혹독하게 경험해 보았다. 그래서 길 위에는 벗이 필요하다. 관지와 청명이 갔다. 수산항으로 돌아가는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벗들이 먹여준 밥, 얻어준 방, 무엇보다 그 먼 곳까지 찾아와 준 발걸음, 안아준 손길이 정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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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들과 함께 걷는 탈핵의 길

 

 

7월 6일 월 수산항~장사항 23.6km

장사항에 차를 세우고 다시 수산항으로 돌아왔다. 길을 미리 알고 나니 갈 길이 더 멀게 느껴졌다. 그러나 우리는 축지법을 터득한 양, 순식간에 양양남대천을 지나 조산해변에서 첫 커피를 마셨다. 편의점에서 스텐 컵으로 아메리카노를 받으니 종이컵 가격만큼 300원을 깎아줬다. 후진항에서는 근사한 빵집에서 빵을 하나씩 먹었다. 모처럼의 호사였다. 물치항에선 시소와 그네를 탔고 속초시에 들어서자 입구에 아바이순대와 함흥냉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고향인 북한이 그리워 통일만을 기다리는 피난민촌 아바이마을은 어느덧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장사항 직전 언덕 위에 아이보리 색 벽과 올리브 그린 색 지붕의 동명동 성당이 있었다. 이번 도보순례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마침내 목적지인 장사항에 도착해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했다. 그런데 장사항과 최종 도착지인 솔숲 사이에는 1.4km의 길이 남아있었다. 한 사람이 차를 가져가면 한 사람이 걸어야 했다. 내가 운전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걷기로 한 으낭이 떼었던 몸자보를 다시 가슴에 달았다. 그 모습을 보자 실룩실룩 울음이 터져 나왔다. 고백하자면 지난 몇 년간 몸자보를 달고 걷는 게 부담스러웠다.  작년여름 순례단이 해체하자 그제야 가방에 몸자보를 달았다. 탈핵도보순례 때도 배낭에만 달고 앞에는 달지 않은 적도 많았다. 누가 시비를 걸까봐 눈을 피하고 걸은 적이 대부분이었다. 되도록 고요히 조용히 걷기만 했다. 그런데 이제 겨우 두 번째 탈핵도보순례를 하는 그가 그렇게 당당하게 몸자보를 옷에 다는 걸 보니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는 순례 내내 나를 '대장'이라고 불렀지만 순수하고 열정적인 '대원'보다 못난 나는 그저 부끄러웠다.      

 

이윽고 우리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시커멓게 그을린 솔숲이었다. 마침내 고성에 온 것이었다. 지난해인 2019년 4월 4일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도로변 전신주 개폐기에서 발화한 불씨가 용촌리까지 번진 사고의 현장이었다. 전기를 쓰는 인간들 때문에 타버린 나무들의 주검 한가운데에서 나는 생과 사의 경계를 찾았다. 애도는 사람에게만 하지 않는다. 죽은 나무들을 위로하며 나도 죽은 듯 밤을 맞았다. 전기를 생산하는 핵발전소를 저지하는 인간과 전기로 인해 희생당한 나무의 길고 긴 침묵의 진혼곡과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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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부활로

 

 

7월 7일 화 장사항~간성터미널 27.5km

아침이 되자 검은 나무의 그을린 살갗 사이에서 진액이 흐른 생살을 보았다. 40여 일 전 나도 정수기 온수로 왼손 등에 화상을 입었다. 한 달 가까이 허물이 벗겨지고 새살이 돋는 아픔을 겪어보았기에 나무의 고통을 조금은 알 듯했다. 그제야 등명솔숲에서부터 해파랑 길 내내 붙어있던 ‘송림 내 불법 취사· 야영· 오토캠핑 금지’ 현수막의 의미를 알았다. 산불 방지를 위해 취사와 야영 자체를 금지했던 것이었다. 나는 그을린 나무에게 인간의 과오를 사죄하며 살아나리라는 믿음을 전해주었다. 자연은 인간보다 훨씬 강해서 반드시 재생으로 부활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간성터미널에 주차를 하고 장사항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잠시 후에 수녀님 두 분이 타셨는데 한 분의 낯이 익었다. 그분 역시 내 몸자보를 보시고는 아는 척을 하셨다. 알고 보니 2018년 여름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를 7일간 함께했던 전주인보성체수도회 수녀님이셨다. 

“아직도 성원기 교수님이 도보순례를 하세요?”

“아니요. 그건 해체되었고 제가 개인적으로 친구들과 하는 거예요.”

용촌1리에 내려 톰(성원기 교수)에게 버스에서의 만남을 문자로 전했다. 잠시 후 답이 왔다.

 

‘와^^ 엄청 반가우셨겠어요! 만남이 신비네요. 응원해요. 힘내세요!’

 

만남이 신비, 그렇다. 길이 주는 신비, 어쩐지 나의 신이 이 걸음을 기뻐하신다는 느낌이 드는 아침이었다. 도보순례 일주일째, 걷기에 꽤 자신이 붙어 여유 있게 관동 8경 중 하나인 간성 청간정과 고성 8경 중 하나인 천학정을 둘러보며 걸었다. 백도해변에는 미륵불과 노란 그네가 있었고 삼포에는 한우설렁탕집이 있었다. 식당에서 주민들이 몸자보를 보자, 혹시 고성에 핵발전소를 유치하느냐고 관심을 보였다. 아니라고 안심을 시켰다. 북한과 인접해 있으니 핵발전소에 민감했다. 북한은 2018년 5월 24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다. 핵무기나 핵발전소나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인간의 실수라고 쳐도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의 쓰나미나 현재 중국 남부 양쯔강 하류 싼샤댐을 붕괴 위기로 몰고 가는 홍수를 인간의 힘으로 어찌 막을 것인가? 만약 세계최대 수력 발전댐인 싼샤댐이 붕괴되면 상하이지역에 밀집된 원전 9기가 침수되고 그러면 그 피해는 중국뿐만이 아니라 539km 거리의 우리나라 제주도와 남해안에도 직접 미치는데 말이다.   

송지호와 공현진을 지나 가진교회에 들어갔다. 코로나 때문에 성전에서 기도를 할 수 없었으나 사모님이 텀블러에 냉수를 가득 담아주셨다. 요즘 세상에 문 열린 교회에서 물을 얻어 마시다니 그 정도만으로도 감사했다. 간성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다 돼 갔다. 하루 27.5km, 최장 거리였다.  

 

7월 8일 수 간성터미널~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22km

간성터미널에서 출발해 거진시장으로 들어갔다. 오전 11시, 제비집이 있는 ‘시장김밥집’에서 단정하신 할머니가 김밥과 떡볶이와 어묵을 팔고 계셨다. 이른 점심을 먹었다. 순례 내내 되도록 지역경제를 살리고자 작은 가게, 이름 없는 식당을 이용했다. 화진포를 지나 마지막 대진항을 지나니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가 나왔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산에 따라 2020년 2월 25일부터 통일 전망대 운영을 잠정 중단합니다.’ 

 

어차피 출입신고소에서 통일전망대까지는 바이러스가 아니라도 걸어서 갈 수 없다. 전국과 세계를 뒤덮고 있는 바이러스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탈 수 없는 시골 버스, 곳곳에 비치된 소독젤,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저절로 일어나는 위축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 없는 곳만을 골라 더욱 가열차게 걸어  바이러스 세상과 따로 놀았다. 그렇게 탈핵도보순례의 이름으로, 걸어서 갈 수 있는 한반도의 마지막 지점까지 갔으나 분단조국이나 통일에 대한 만감은커녕 씁쓸하기만 했다. 미완의 완성을 좋아하는 으낭에게 조차 아쉬운 종착지였지만 끝은 새로운 시작과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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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또 다른 시작

 

 

의례처럼 사람 대신 배낭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순례 처음에 벗들에게 보냈던 문자, 

‘으낭과 함께 출발합니다. 탈핵!’에 이어서 끝에도 문자로 마무리를 했다. 

‘2020 여름 탈핵도보순례 삼척부터 고성까지 잘 마쳤습니다. 고맙습니다!^^’

 

답들이 속속 도착했다. 

 

‘고생하셨습니다. ^^! 탈핵~!’ - 숨

‘장하다 멋있다 내 친구 탈핵! 으낭~ 멋져부러요 역시 탈핵! 또 만나서 막걸리 먹어요.’ - 청명

‘축하드립니다.... 또 만나요 ^^’ - 관지

‘네^^ 일곱째별 먼 거리에 고생 많으셨어요! 오늘 흘린 땀방울이 탈핵세상을 앞당길 거예요! 애쓰셨어요! 고맙습니다!’ - 톰

‘탈핵! 수고하셨어요, 제가 많은 자극을 받았어요. 다행히 짧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기에 여운이 남습니다.’ - 니키

 

그리고 지난겨울에 이어 올여름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내 곁을 지켜주며 함께 걸었던 나의 도반(道伴) 으낭! 

길치인 나를 위해 지도를 찾아주었으나 도보 길이 아닌 자전거 길로 걸었음을, 그래서 거리가 계속 늘어났던 걸 안 건 순례 절반이 지나서였다. 그렇게 대략 나온 거리는 187.5km. 그가 있었기에 7박 8일 동안 삼척부터 고성까지 그 긴 거리를 걸을 수 있었다. 일곱 색실을 발바닥 물집마다 달았지만 본 투 비(Born to be) 탈핵전사인 으낭에게 관절 마디마디에서 나오는 고마움을 전한다. 앞으로도 사랑하는 탈핵 벗들과 함께 또 다른 길을 걸을 그 날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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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길을 수놓은 일곱 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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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뜬별 | 남도 순례길 8 – 2022년 시작을 도보순례로 1 # 지난 이야기 2021년 2~3월, 울진 망양정~포항 화진해수욕장 7번 국도 102.6km 4월, 팽목항~진도대교 세월호 7주기 추모 도보순례 18번 국도 40km 6월, 해남~보성 18번 국도, 보성~하동 2번 국도,...
    Date2022.02.04 Views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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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길뜬별 | 남도 순례길 7 - 2021년 끝을 해남에서

    길뜬별 | 남도 순례길 7 – 홀로 혹은 함께 걷다. 2021년 끝을 해남에서 # 지난 이야기 2021년 6월, 해남~보성 18번 국도, 보성~하동 2번 국도, 하동~구례 19번 국도 7월, 보성~구례 18번 국도 8~9월, 해남~진도, 18번 국도 총 380여km 10~11월, 땅끝천년...
    Date2022.01.03 Views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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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길뜬별 | 남도 순례길 6 - 홀로 걷다. 낙엽 따라 비우며

    길뜬별 | 남도 순례길 6 – 홀로 걷다. 낙엽 따라 비우며 # 지난 이야기 6월, 해남~보성 18번 국도+보성~하동 2번 국도+하동~구례 19번 국도 7월, 보성~구례 18번 국도 8~9월, 해남~진도 18번 국도 10월, 땅끝천년숲옛길을 걸었다. ☆ 바위산을 타다 2021...
    Date2021.12.04 Views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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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길뜬별 | 남도 순례길 5 – 홀로 걷다. (생)로병사(老病死)를 만나며

    길뜬별 | 남도 순례길 5 – 홀로 걷다. (생)로병사(老病死)를 만나며 # 지난 이야기 2021년 4월, 세월호 7주기 추모 진도 탈핵도보순례를 시작으로 18번 국도 40km, 6월, 18·2·19번 국도 해남~강진~장흥~보성~벌교~순천~광양~하동~구례 241...
    Date2021.11.01 Views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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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길뜬별 | 남도 순례길 4 - 홀로 걷다. 생각의 꼬리를 물며

    길뜬별 | 남도 순례길 4 - 홀로 걷다. 생각의 꼬리를 물며 # 지난 이야기 2021년 4월, 세월호 7주기 추모 진도 탈핵도보순례를 시작으로 18번 국도 40km를 걸었다. 6월에는 해남~강진~장흥~보성~벌교~순천~광양~하동~구례 240km 7월에는 보성~순천~곡성~구례 1...
    Date2021.09.26 Views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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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길뜬별 | 남도 순례길 3 - 홀로 또는 함께 걷다. 역사 위에서

    길뜬별 | 남도 순례길 3 - 홀로 또는 함께 걷다. 역사 위에서 # 지난 이야기 2021년 4월, 진도를 종단하며 18번 국도 40km를 걸었다. 6월, 해남에서부터 다시 18번 국도를 걷기 시작했다. 강진, 장흥, 보성까지 걷고는 박경리 선생님과 <토지>를 기리기 위해 ...
    Date2021.08.25 Views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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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길뜬별 | 남도 순례길 2 - 홀로 걷다. 자신의 길을 찾아서

    길뜬별 | 남도 순례길 2 - 홀로 걷다. 자신의 길을 찾아서 # 지난 이야기 정읍에서 나와 땅끝마을로 갔다. 해남~강진~장흥~보성~벌교~순천까지 8일간 160km를 홀로 걸었다. 그렇게 걸어서 눈물이 말랐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걸어서 마른 게...
    Date2021.07.30 Views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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