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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탈핵 이야기 11 - 다시 걷는 탈핵순례

posted Apr 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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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탈핵 이야기 11 - 다시 걷는 탈핵순례

 

해질녘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는 천년고도의 해묵은 영광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 쓸쓸함 너머 탈핵도보순례 벗들인 니키와 청명이 환하게 걸어왔다. 지난 해 여름 마지막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이후 각자의 생활 터전을 중심으로 도보순례를 이어온 우리는 반 년 만에 다시 모였다. 비록 우리가 톰으로 불렀던 성원기 교수를 중심으로 했던 순례는 마무리됐지만 우리는 탈핵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리하여 지난여름에 이어 겨울이 되자 다시 만난 것이었다.
우리는 현재 한국 탈핵 계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고준위핵폐기물저장고(맥스터)의 예정지인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를 찾았다. 그날 밤 황분희 월성원전이주대책위원회 부회장 댁에서 묵었다. 다음 날, 황분희 부회장은 우리가 한 공간에서 숨 쉬고 자고 있는 것이 행복했다고 고백하셨다.

2월 10일 월 월성 핵발전소 앞 상여시위와 울산시 북구 서명운동 
월요일 아침 8시 즈음이면 나아리 주민들이 농성천막에 모인다. 매주 경주환경운동연합과 울산시민연대에서 오고 이날은 특별히 월성상가번영회에서도 와 주었다. 농성천막에서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 남문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한수원에서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하는 900여m 정도일 뿐. 그 짧고도 긴 거리를 사람들이 상여를 끌고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바쁜 출근시간에 1차선 도로는 마비되었지만 상여 뒤로 꽉꽉 막히는 자동차들 중 어느 한 대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한수원 직원들조차 이주 투쟁 1993일째의 위용을 존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사이 이주 투쟁에 한 가지가 더 쟁점이 되었다. 고준위핵폐기물 저장고 추가 건설 금지 요청이다.
고준위핵폐기물은 원자로에서 꺼낸 사용 후 핵연료로 스치기만 해도 사망하며 10만 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위험물이다. 2005년에 중저준위 핵폐기장을 유치하면 2016년까지 고준위핵폐기물을 반출하겠다고 약속했던 정부는 이제 와서 월성원전에 7기의 맥스터를 더 건설한다고 한다. 맥스터는 핵폐기장 특별법이 금지한 시설이다. (중저준위 핵폐기장 특별법 18조 “원자력안전법 제2조 제5호에 따른 사용후핵연료의 관련 시설은 유치지역에 건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오늘도 돌아가는 국내 유일 가압형중수로 핵발전소 앞에서 나아리 주민들은 이주하게 해 달라는 요청과 함께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고(맥스터) 저지를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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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리, 우리 마을을 떠나게 해 주세요

 

 

상여 시위 후 울산시민연대 이은정 북구대표의 차로 니키, 소산, 청명과 나는 울산시 북구문화예술회관으로 이동했다. 오전 10시부터 두 시간 동안 울산시민연대 배성희 편집위원장과 함께  <핵쓰레기장! 북구주민의 힘으로 막아냅시다> 서명운동을 했다. 울산시 북구는 월성 핵발전소로부터 반경 20km 이내에 포함돼 있어 오히려 경주시내보다 더 가깝지만 행정구역이 경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보도 없이,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경주시 결정에 의한 피해를 고스란히 입을 지경이었다. 그러자 ‘핵쓰레기장 추가건설반대 울산북구주민대책위’와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은 지난 1월부터 울산 북구 주민을 대상으로 산업부에 전달할 주민투표 청원 서명을 받는 중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우리는 호계동 ‘밝은 약국’으로 가 작년여름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를 함께했던 임영상 탈핵울산공동행동 공동대표를 만나 그가 사주는 어탕을 먹었다. 그리고는 힘을 내 호계동과 천곡동에서 서명운동을 계속했다. 우리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쉬지 않고 설명하고 서명을 받았으며, 북구 시민은 주소와 휴대폰 번호까지 공개하는 서명에 기꺼이 참여해 주었다.
북구 인구는 21만 8013명(2020년 1월말 기준), 21대 총선 기준 만 18세 이상 북구 유권자 인구 17만 3661명이라고 한다. (출처 : 탈핵신문 75호) 이중 5%면 청원이 가능하니 일단 만 명 정도의 동의가 필요했다. 이날 이은정 울산시민연대 북구대표와 함께한 다섯 명이 하루 종일 580명의 서명을 받았다. 
저녁 식사는 배성희 편집위원장이 주모로 있는 ‘바보주막’에서 했다.
그날 밤 우리는 울산시민연대의 배려로 울산광역시교육수련원에서 묵었다. 다음 날 잠자리에 누운 채 일출을 볼 수 있는 근사한 곳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핵발전소에서 7.9km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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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쓰레기장 추가건설 반대 서명운동원들

 

 

2월 11일 화 경주시 도보행진
이른 아침, 울산의 잿빛 바다와 구름을 뚫고 붉다가 노란 해가 떠오르는 한 시간 가까이 창가에 서 있었다. 날마다 떠오르는 해를 바다에선 왜 그리 설레며 보는지, 내가 아는 사람들은 그 시각 어디서 무얼 하는지, 지척이 핵발전소인 눈앞의 바다는 얼마나 오염됐는지, 그 오염은 바다 전체를 어떻게 잠식해가고 있는지… 여러 상념이 뒤죽박죽 떠올랐지만 그날 하루에 해내야 할 일들이 있어 채비를 해야 했다.
아침나절 다시 북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간단한 서명을 받고 니키, 소산, 청명과 함께 호계역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경주역으로 갔다.
안강에서 모니카가, 나아리에서 황분희 부회장이 오셨다. 이어 도착한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사무국장과 주미 사무차장과 또 한 분의 경주시민과 함께 오후 2시부터 경주역을 시작으로 걷기 시작했다. 
<방폐장 유치 약속 위반! 고준위핵폐기물 저장소 추가건설 결사반대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걸어가는 무리 옆으로 황분희 부회장의 발걸음이 쓸쓸해 보였다. 매주 멀리까지 와서 걷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 무심함이 경주시내에 팽배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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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경주역에서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왕복 도보순례

 

 

나는 그 소외감을 뒤로 한 채 시외버스에 올랐다. 울진으로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맨 처음 탈핵도보순례 르포에서 밝힌 바 있지만 나는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단을 만나기 이전부터 핵발전소가 몰려있는 7번 국도를 걷고자 했었다. 2018년 여름, 전라남도 영광핵발전소를 시작으로 겨울과 여름, 경상남도 고리와 경상북도 월성핵발전소까지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를 했으니 남은 건 울진핵발전소뿐이었다. 그런데 지난여름 도보순례팀이 사실상 해체됐고, 나는 혼자서라도 순례를 이어갈 거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반년 간 사람들을 모으고 보름 전부터는 구체적인 여정을 짰다. 거리계산을 하고 숙박할 지점을 물색하면서 6년 반 동안 톰(성원기 교수)이 감당했던 노고를 실감할 수 있었다. 청명의 제안에 따라 경주와 울산의 시급한 탈핵 사안에 함께한 후 나는 나의 길을 떠나기로 계획했었다. 경주에서 울진까지 코스를 짜다가 출발 며칠 전에 전격적으로 울진에서부터 삼척까지로 대폭 수정을 했다. 오래 전 부산에서 울진까지 7번 국도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적이 있었기에 그 이후 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결국엔 니키도 청명도 각자 탈핵의 길을 가기로 한 채 나는 홀로 울진으로 향했다. 
 
2월 12일 수 망양정~죽변항~신한울원전~한울원전~나곡해변 25.5km
출발지점은 오래 전 다큐멘터리의 종착지였던 울진 망양정이었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 새벽길을 나섰다. 6시 50분인데 어둑어둑했다. 어깨가 새삼 무거웠다. 그동안은 톰의 차로 짐을 실어 날랐으나 이제 제 짐은 자신이 짊어져야 했다. 평소 카메라만 넣은 가방이 5kg이니 며칠 치 옷가지와 생필품까지 포함해 족히 7~10kg은 되는 배낭을 맨 채 길을 떠났다.
죽변항을 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내렸다. 일회용 우비를 입고 걸었다. 바지와 등산화가 젖기 시작했다.
‘충절의 고장’ 고목1리를 지나칠 때, 스산하고 괴이한 풍경 하나가 있었다. 도로 곁 밭 한 가운데 우뚝 서있는 민트색 송전탑이었다. 핵발전소가 멀리 않았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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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한가운데 있는 송전탑

 


시야는 점점 뿌예지고 모퉁이를 돌아서자 신한울원자력발전소 건설현장이 나타났다. 이어서 한울원자력발전소도 등장했다. 우비에 싸인 나는 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그로써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핵발전소 앞에 발자국을 찍었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물으면 조용히 등을 돌려 보여주고 싶다. ‘핵발전소 없이 안전하게 살자.’ 나는 무언의 항거를 하며 이 땅을 걷는 것이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러나 뜻이 아무리 고매하여도 지치고 젖은 육신을 무시할 수는 없다. 방사능위험으로부터 되도록 멀리 가고 싶었지만 이미 약 24km를 걸었기에 더 이상 걸을 기운이 없어 핵발전소 2km 옆에 있는 나곡 해변의 민박집에 묵었다. 식당도 못 찾고 먹을거리도 없는 내게 민박집 주인어른내외는 저녁밥을 대접해 주셨다. 부부는 평생 성실하게 일하시다 은퇴 후 그곳에서 말년을 보내시려고 민박집을 차린 분들이셨다. 전기요금 면제 정도의 혜택을 바라고 전 재산을 다 털어 핵발전소 지척에 민박집을 차린 그분들께 핵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해 설파할 만큼 나는 의지적이지도 주도면밀하지도 못했다. 그저 그분들이 여생을 아프지 마시고 평안히 사시길 기원할 뿐이었다.       

오후 7시 45분, 니키로부터 정겨운 문자가 왔다.

‘몸은 좀 어떠세요?
지난 3일간 꿈속에서 뵈 온 듯합니다.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했습니다.
하느님과 동료들에게 감사드리며 조금씩 부족함도 아름다운 우정의 백미였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다시 뵙게 되기를 고대해 봅니다.’


우리가 다시 함께 걷게 될 날을 그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2월 13일 목 나곡~호산항~임원항 15.8km
울진군 북면 나곡에 해가 뜨자 울진핵발전소에 빛이 반사되었다. 그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에 취해 촬영을 하다가 내가 지금 핵발전소 홍보 사진을 찍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고 한수원이 홍보하는 핵에너지는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 방사능으로 지구를 오염시키며 처치 곤란 쓰레기를 날마다 생산해내고 있다. 그러나 나조차도 순간 외관에 홀려 본질을 망각하고 있지 않은가?
이날 호산항을 거쳐 임원항까지 왔다. 평소에도 그다지 술을 즐기지는 않지만 도보순례 기간 동안 금주를 작정했기에 즐비한 횟집에 들어가진 못했다. 전 날에 비하면 무려 10여km나 짧은 거리였다. 손님 없는 민박집에서 양말과 속옷을 빨아 널며 베란다에서 지는 해로 일광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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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핵발전소

 

 

2월 14일 금 임원항~장호항(9.3km)~궁촌항(9.2km)~대진항(4.9km) 23.4km(도보14.2km)
임원항에서부터 9.3km를 걸어 장호항에 도착해서 점심밥을 먹고 있을 때 톰과 그의 부인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삼척을 종착지로 정한 건 순전히 그곳에 사는 톰 때문이었다. 톰을 다시 만나 인근 한 구간 정도는 함께 걷고 싶었다. 그러나 톰에게는 마땅히 참석해야 할 경조사가 있었고 최근 병원에서 간단한 시술도 한 상태라 도보순례를 함께할 수는 없었다. 대신 부부는 살그머니 밥값을 내주었다. 바쁜 길 가는 톰 내외분과 잠시 들른 장호항 바다는 부부의 맑은 얼굴과 잘 어울리는 에메랄드빛이었다. 동해에 왔음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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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항에서 만난 성원기 교수 부부

 

 

장호항에서 궁촌항까지는 미안한 말이지만 레일바이크를 탔다. 그러므로 그 구간만큼은 도보순례가 아닌 바이크순례라고 해 두어야겠다. 걷기보다는 쉽지만 페달 밟기 또한 만만치는 않은 운동이었다. 만약 단체로 다니던 예년의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개인 탈핵도보순례에는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선물이 있었다.   
문제는 궁촌에서 발생했다. 머물기엔 너무 조금 걸은 날이라 양심상 더 걸어야겠다싶어 발길을 재촉했는데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도 묵을만한 마을이 나타나지 않았다. 가까스로 찾아든 항구가 근덕면 동막1리였는데 식당도 숙소도 없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어둑어둑해지자 불안해진 나는 어느 집 마당에 계신 마을 어른께 잘만한 곳이 있느냐고 여쭤보았고 그렇게 찾아든 곳이 마을회관 경로당 위였다. 알고 보니 마을계장님이셨던 그 어른이 시세보다 많이 싸게 방을 내주신 덕분에 그곳에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마을에는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요기를 할 만한 거라곤 라면뿐이었다. 라면과 생수를 사자 도시에서 오신 듯해 보이는 주인아저씨가 잠시 후 밥이 다 되니 밥을 가지러 오라고 하셨다. 덕분에 달걀도 없는 라면이지만 기름진 뽀얀 이팝을 말아 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계장님은 다시 찾아오셔서 다음 날 새벽3시에 바다로 나가니, 떠날 때 집에 들러 알아서 밥을 차려먹고 가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동막1리 대진경로당 위에서의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2월 15일 토 대진항~원전백지화기념탑(5.9km)~죽서루(11.1km)~삼척우체국(700여m) 17.7km
도보순례 마지막 날인 이날 아침, 계장님 댁에서 밥을 차려 먹고 믹스커피까지 타 마신 후 호기롭게 출발했다.
한 시간여 걸었을까?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덕산해변 근처에서 톰이 알려준 식당 간판을 보고 사방을 두리번거리자 강변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서있었다. 자연산 바위에 굵게 새겨진 글씨 ‘원전백지화기념탑’, 이번 탈핵도보순례의 목적지였다. 나는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가 그 커다란 바위를 껴안았다. 두근두근 내 가슴의 고동이 이마를 타고 거대한 바위에 전해졌다. 1999년과 2019년에 두 번이나 원전예정구역 고시를 백지화시킨 삼척의 거룩한 기념탑이었다. 바로 앞에는 2018년 일본 반핵 평화운동가 미토키요코 씨를 비롯한 후쿠시마 청소년들이 찾아와 탈핵, 반전, 평화의 의지를 담아 기념 식수한 묘목도 있었다.
 
숨을 고르고 나서 톰에게 도착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답이 왔다. 

‘탈핵의 성지에 무사히 도착하셨네요!
전 세계 유일한 핵발전소백지화기념탑예요!
37년 피와 땀으로 쓴 반핵투쟁 기념비이지요!
애 많이 쓰셨어요!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제가 고맙죠. 저를 이곳까지 안내하신 톰의 7년간의 발걸음이 고맙죠. 그동안 함께 걸었던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단원들 한 분 한 분이 모두 고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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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백지화기념탑(오른쪽 사진 출처 : 으낭)

 


동해를 따라 명사십리를 걸었다. 겨울바다는 그 자체로 깊고 푸른 야성이었다. 북쪽으로 향한 바다 끝에 길이 보이지 않자 삼척시내로 진입하는 마지막 고개를 넘어야했다. 그런데 그 고갯길에서 기함할만한 광경을 목격했다.
삼척화력발전소 건설현장이었다. 모래사장에 파도가 수를 놓는 명사십리 끝자락에 바다를 흙으로 메운 기다란 방조제가 건설되고 있었다.
언덕배기에서 기이하게 일그러지고 있는 해변을 사진 찍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순간 흔들, 내 오른쪽 어깨가 움직였다. 기대있던 소나무가 내 어깨를 건드린 것이었다. 나무가 내게 뭔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의 귀를 활짝 열고 나무의 말을 들으려고 애를 썼다. ‘대체 내게 해 줄 말이 무언지 알려다오. 제발 알려다오.’ 그러자 가슴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절벽 아래 아름다운 명사십리가 파헤쳐지는 현장을 지켜보는 나무의 마음이 전해지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삼척포스코 석탄화력발전소가 완공되어 2024년부터 가동되면 연간 1300만 톤의 온실가스와 570톤의 미세먼지가 배출된다고 한다. 그럼 내가 어깨를 기댔던 소나무도 그 먼지와 더운 공기 속에서 괴로워할 것이다. 내가 나무와 바다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 소나무를 뒤로 하고 터벅터벅 내리막길을 걷는 내 작은 발은 다음에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탈핵의 길 위에서 나는 이 땅의 생명과 평화를 찾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질 거라고 추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걸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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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십리 화력발전소 건설 현장을 지켜보는 소나무

 

 

매화 가지를 스친 바람이 불어 대나무가 춤을 추는 해 질 무렵 죽서루에 도착했다. 망양정에서 출발한 내게 톰이 꼭 가보라고 알려준 관동팔경 중 하나였다. 고즈넉한 죽서루는 지난 4박 5일간의 탈핵도보순례를 마무리하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거기서 길을 물어 삼척우체국을 찾았다. 원전백지화기념탑을 세우기까지 매주 핵 없는 생명세상을 위한 삼척시민들의 촛불이 모였던 곳이었다. 감개무량함 속에서 우체국 앞을 한참동안 떠날 수 없었다. 그 역사적인 장소에 기어이 2020년 상반기 겨울 탈핵도보순례의 마지막 발자국을 찍었기 때문이었다. 전진밖에 모르는 내게 곁에 있던 사람이 저만치 어드메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뒤로 고개를 돌려보니 어두워져 가는 하늘 아래 하얀 예수님이 우리를 굽어보고 계셨다. 그 분은 삼척 반핵투쟁 37년 내내 이곳에 모인 수많은 시민들을 응원하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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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핵발전소를 막아낸 우체국 앞

 

 

밤이 깊어 나는 서둘러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시작처럼 마지막에도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울진 망양정에서 삼척우체국까지 총82.4km 중 73.2km를 걸었다. 겁도 없이 혼자 걷겠다고 나선 길이었다. 그런데 걷고 보니 혼자였으면 가능하지 않았다. 기대했던 청명도 니키도 톰도 숨도, 나를 혼자 걷게 하지는 않겠다던 포레도 함께 하지 못했지만 내겐 새로운 탈핵 벗이 생겼다. 울진부터 삼척까지 내 곁을 지켜줬던 으낭, 그는 세상을 지켜보는 나를 지켜주는 눈이었다.
“캄캄한 밤길을 끝없이 걸을 때 힘이 되어주는 것은 튼튼한 다리도 날개도 아니고 친구의 발걸음 소리”라고 발터 벤야민이 말했다. 
우리는 탈핵도보순례를 통해 최고의 걷기 파트너가 되었다. 언제나처럼 길 위에서 나는 또 다른 인연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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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핵발전소가 보이는 언덕에서

 

 

추가 : 2월 19일, 울산시 북구 주민 11,483명 주민투표 청원서를 산업부에 전달했다. 그러나 코로나19바이러스 창궐로 인해 3월 예정이었던 주민투표는 연기되었다. 
2020년 4월 15일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탈핵시민행동은 21대 총선 후보들에게 탈핵 정책을 제안하고 진행하고 있다. 제안 내용은 신규 핵발전소 건설 중단과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금지 법제화 등 탈핵에너지 전환법 제정과 에너지 수요관리와 이용 효율화,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등과 관련한 법 제정, 원자력 안전위원회 위상 및 독립성 강화, 고준위핵폐기물 공론화 중단과 제대로 된 공론화 추진, 핵재처리 연구 금지 및 한국원자력연구원 개혁, 생활방사능 안전 및 발전소 주변지역 피해주민 대책 마련, 탈핵·에너지전환교육홍보 강화 등이다. (참고 : 탈핵신문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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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뜬별 | 남도 순례길 5 – 홀로 걷다. (생)로병사(老病死)를 만나며 # 지난 이야기 2021년 4월, 세월호 7주기 추모 진도 탈핵도보순례를 시작으로 18번 국도 40km, 6월, 18·2·19번 국도 해남~강진~장흥~보성~벌교~순천~광양~하동~구례 241...
    Date2021.11.01 Views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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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길뜬별 | 남도 순례길 4 - 홀로 걷다. 생각의 꼬리를 물며

    길뜬별 | 남도 순례길 4 - 홀로 걷다. 생각의 꼬리를 물며 # 지난 이야기 2021년 4월, 세월호 7주기 추모 진도 탈핵도보순례를 시작으로 18번 국도 40km를 걸었다. 6월에는 해남~강진~장흥~보성~벌교~순천~광양~하동~구례 240km 7월에는 보성~순천~곡성~구례 1...
    Date2021.09.26 Views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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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길뜬별 | 남도 순례길 3 - 홀로 또는 함께 걷다. 역사 위에서

    길뜬별 | 남도 순례길 3 - 홀로 또는 함께 걷다. 역사 위에서 # 지난 이야기 2021년 4월, 진도를 종단하며 18번 국도 40km를 걸었다. 6월, 해남에서부터 다시 18번 국도를 걷기 시작했다. 강진, 장흥, 보성까지 걷고는 박경리 선생님과 <토지>를 기리기 위해 ...
    Date2021.08.25 Views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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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길뜬별 | 남도 순례길 2 - 홀로 걷다. 자신의 길을 찾아서

    길뜬별 | 남도 순례길 2 - 홀로 걷다. 자신의 길을 찾아서 # 지난 이야기 정읍에서 나와 땅끝마을로 갔다. 해남~강진~장흥~보성~벌교~순천까지 8일간 160km를 홀로 걸었다. 그렇게 걸어서 눈물이 말랐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걸어서 마른 게...
    Date2021.07.30 Views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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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길뜬별 | 남도 순례길 1 - 홀로 걷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 프롤로그 믿음과 사랑을 잃고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이어진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걸은 적이 있다. 나머지 소망도 잃고 해남 땅끝마을로 갔다. 혼자 2주간 240km를 걸었다. 지난 3년간 그랬던 것처럼 도보순례라 한다. 고리·월성·울진핵발...
    Date2021.07.06 Views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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