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별의 다큐이야기] 탈핵 이야기 7 - 다시 길 위에 서다 <2019년 겨울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posted Feb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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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이야기 :

 

탈핵 이야기 7 - 다시 길 위에 서다 "2019년 겨울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일찌감치 아침 7시 5분 기차표를 예매했는데 그 날이 故(고)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례일임을 조문 가서야 알았다. 전 날 내내 고민하다 결국 자정을 3분 남겨두고 예매를 취소했다.
2019년 2월 9일 토요일 정오, 시퍼렇게 얼어붙은 광장은 뜨거운 눈물로 기화하고 있었다. 나는 스물네 살 청년비정규직 故(고)김용균 노동자의 장례를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래서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2차 첫 날, 전주에 갈 수 없었다. 그가 광장을 떠날 때까지 배웅을 하고는 용산역으로 향했다. 초고속 시대와 어울리지 않게 느려 터진 무궁화호에 몸을 싣자 세 시간 넘게 나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낮의 오열로 지친 몸은 낮잠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여정의 절반쯤 왔을 때 전화가 왔다. 청명이었다.
“혹시 지금 조치원 지나고 있어요?”
우리는 약속도 없이 같은 열차에서 만났다. 나는 운명을 믿는다. 그건 자잘한 인연으로부터 이어진다. 지난여름 길 위에서 만난 벗인 청명은 그 해 만난 가장 멋진 여성이었다. 소박한 삶을 실천하고 있는 그이는 합리화로 무뎌진 내 삶에 한 바가지 심심산골 약수와도 같았다. 그이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몇 분간 나는 침잠해 있던 머리와 가슴이 깨어남을 느꼈다. 그건 좋은 전조였다.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에 대한 기대감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이의 지난 제주 순례 이야기를 들으며, 항상 목표치를 높이 세워놓고 스스로를 채근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던 나에게 도보순례가 ‘탈핵’이라는 이슈를 내세운 운동 이전에 고요한 명상의 시간이 되리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도착한 삼례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느다란 초승달이 나를 보고 말갛게 웃어주었다.
삼례역 앞 삼례문화예술촌은 막막하던 3년 전, 해답을 구하고자 찾아갔던 곳이었다. 당시 방송작가에서 1인출판사를 하다가 이후 르포 작가가 된 나는 길을 찾은 느낌으로 그 때 갔던 향우식당으로 갔다. 잠시 후 성원기 교수님과 멘나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숙소는 원불교 수계농원이었다. 그곳에 수사님과 광양에서 온 토론학교장님이 있었다. 잠시 후 광주에서 온 시인 전도사님까지 합류해, 운치 있는 다탁에서 질박한 다기에 막걸리를 채우고 순한 두부를 안주삼아 우리는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지난여름 걸음이 실린 <삶이 보이는 창> 2018년 겨울호는  우리들에겐 매우 큰 선물이었다. 겨울밤이 온돌처럼 익어갔다. 매우 피곤했는데도 미동 없이 잠을 푹 자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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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성당 앞에서
 

 

353구간 삼례성당~여산성지성당 20.1km
2019년 2월 10일 일요일 새벽 6시 삼례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아침 7시 매일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서 우리는 호칭을 정했다. 수사님은 니키(니콜라오)로, 교수님은 톰(토마스 모어)으로, 토론학교장님은 (유스)티노로, 시인 전도사님은 관지(貫之)로. 우리는 성별, 나이, 직업을 떠나 평등하고  싶었다.
오전 8시쯤 되자 전주와 완주, 대전과 여산, 익산 등지에서 순례단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대전 원도심레츠에서 온 세 분은 견과류스낵과 약식을 만들어 한라봉과 함께 간식으로 나눠주었다. 18명의 순례단이 길을 떠났다. 왕궁면은 사람보다 주차된 차량이 더 많았다. 청명과 송도사는 걷기도 힘든 중에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전단지를 나눠주고 차량에 꽂아두었다. 완주에서 온 모녀는 내내 나란히 걸었다.
점심시간에서 포항에 규모 4.1 지진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어 톰으로부터 신고리 4호기 운영을 총9명이 정원인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4명이 조건부 승인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토록 중대한 결정을 그토록 졸속으로 했다니 어이가 없었다.
저녁 6시에 도착한 소산이 여산성지성당에서 추는 학춤을 본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순례길에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나눔시간에 따끈한 차를 대접해준 수련화가 익산역까지 차로 데려다 주었다. 수련화는 익산 시민인데 전 날 광화문 故(고)김용균 청년비정규직노동자 시민사회장에 참석했다고 했다. 평범한 시민의 동참이 놀랍고도 고마웠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탈핵도, 좋은 사회도 앞당겨지겠지 싶었다.    

 

 

방문마을4곳.jpg

순례한 마을들

 

 

신고리 5‧6호기 원전건설허가처분 취소 청구 소송 1심 선고
2019년 2월 14일 목요일 오후 2시, 서울행정법원 B208호는 방청객들로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와 시민 559명으로 구성된 ‘560 국민소송단’이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를 상대로 제기한 ‘신고리 5‧6호기 원전건설허가처분 취소 청구 소송’ 1심 선고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선고장소가 B201호 대법정으로 바뀐 후, 행정14부 재판장 김정중 부장판사는 116쪽 판결문의 요지를 읽어나갔다. 재판부는 원고가 제출한 14가지 위법성 쟁점 중 원자력안전위원회 건설 허가 심사에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위원 두 명이 참석했다는 점과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에 운전 중 중대사고 평가에 대한 기재가 누락됐다는 점, 두 가지에 대해 위법 판결을 내렸다. 사실상 승소 판결이었지만 "공사 취소에 따른 다양한 사회적 손실을 고려하면 앞서 인정한 위법 사유로 취소해야 할 이유가 매우 작다"며 사정 판결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로써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집행이 유지된다. 건설공사 취소시 1조원의 손실이 있다는데 만약 핵발전소 사고가 나면 2000조 이상의 손실을 입는 것은 물론 산업중심지역인 경남북지역이 마비되며 이는 우리나라 전체에 어마어마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힐 것이다. 선고가 나자마자 순례단에 알렸다. 어서 합류하고 싶었다. 지금이야말로 탈핵의 기치를 다시 높여야 할 때였다.     

 

 

소송유감_여산성당.jpg

신고리5·6호기 소송 판결 유감 / 여산성지성당 앞에서

 

 

360구간 천안 신부동 성당~평택 비전동 성당 21km
2월 17일의 아침잠은 오래된 목화솜보다 무겁게 몸을 내리눌렀다. 새벽 5시에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팔다리를 스트레칭 하고도 두 시간이나 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주 하루 20km 도보 후 시퍼렇게 멍들어 부은 왼발로 21km를 걷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고민하는 사이, 이부자리를 박차고 미사를 드리고 아침식사를 하고 있을 순례단을 생각하니 매일매일 일어나 걷는 자체가 도전임을 새삼 느꼈다. 용산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천안까지 가서 다시 전철로 성환역까지 거슬러 올라왔다. 자동차로 가면 한 시간 조금 넘을 거리를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두 시간 넘게 가기 위해 빠르고 편리한 유혹을 이겨내야만 했다.
동성중학교 앞에서 11명의 순례단을 만났다. 뼈해장국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열두 살 유와 아버지가 떠났다. 남은 10명이 10km를 더 걸었다. 티노는 다리에 염증이 생겼고 천안에서 합류해 이틀째 순례중인 두 명은 절다시피 걸었다. 오후 다섯 시 반, 비전동 성당에 도착했다. 17년 된 톰의 차가 수명을 다해 렌터카로 대치돼 우리보다 먼저 성당에 와있었다.  
하루 42,000보 걸은 오선옥, 아픈 다리를 끌고 탈핵을 위해 끝까지 걸은 최미숙, 탈핵은 지금처럼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온다는 청명, 내 사전에 중단은 없으니 일주일만 참고 집에 가서 치료하겠다는 티노, 탈핵기도를 하며 걸은 진숙, 한 점 행동으로 실천한 베드로, 핵발전소 완전하게 중단하라고 외친 소산, 핵무기보다 핵발전소가 더 위험하니 유권자운동으로 핵발전소사고를 막아야한다는 톰. 그들과 저녁식사를 한 후, 서울에서 만날 약속을 하고 평택역으로 가 무궁화호를 탔다. 기차와 버스와 도보로 집까지 오면서 느리지만 쉬지 않고 움직인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진숙의 말대로 우리의 깃발이나 전단지를 보고 단 한 명이라도 탈핵 필요성을 느꼈다면 모두의 걸음이 의미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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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 맨 앞 성원기 교수(톰)와 학춤 명인 소산 / 평택 가는 길

 


365구간 서울 자양동 성당~광화문~불광동 성당 19.1km
19.1km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거리를 거꾸로 계산해 보니 13.5km는 가능할 것 같아 왕십리에서 합류했다. 하지만 집에 와서 확인한 결과 21.1km를 걸었다. 어찌된 일이었을까? 서울 시내 걸음은 지방과는 확연히 다르다. 인파를 비집고 나가는 것도 처마에 걸리는 깃발도 지체하게 했다. 미세먼지와 소음이 몸을 더욱 피곤하게 하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도시의 방대한 에너지 소비를 위해 저 멀리 바닷가에서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었다.
2월 22일의 가장 큰 수확은 점심식사시간에 만난 윤마리엘 수녀님으로부터였다. 이분은 휴지를 쓰지 않으신다고 했다. 그럼 화장실에서 어떻게 하시냐고 물었더니 가제수건을 쓰신다고 했다. 하긴 신문지나 일력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쓴 건 생활의 큰 이변이었다. 비데를 사용한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이후 우리집 화장실에는 작은 수건이 한 장 걸려있다. 이번 순례에서 얻은 지구 살리기 실천의 좋은 예다.    
광화문에 도착했다. 여러 이슈들이 광장에서 만났다. 그곳에서 우리는 기자회견을 열어 신고리 4호기 운영허가 즉각 취소하라, 신고리 5·6호 신울진 1·2호기 건설공사 즉각 중단하라, 영덕, 삼척, 신울진3·4호기 신규 핵발전소 건설계획 즉각 백지화하라, 운영 중인 24기의 핵발전소 안전성을 확보하라, 2030년 탈핵로드맵을 수립하여 시행하라고 외쳤다.

보통은 도보순례의 종착점이었던 광화문에서 다시 걸어 불광동까지 갔다. 건축가 김수근의 마지막 작품인 불광동 성당은 ‘길’이 주제라고 했지만 빛의 미감이 구석구석 드리워진 예술작품이었다. 오색빛과 십자가 아래에서 365구간 미사를 드렸다. 2013년부터 걸은 날수를 합치면 꼭 일 년이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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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지나며(좌상), 광화문 광장에서(좌하), 불광동 성당 앞에서(우)

 


367구간 금촌2동 성당~문산~임진각 19.1km
순례 마지막 날인 2월 24일, 아픈 다리를 핑계로 결국은 차를 몰고 나갔다. 문산에서 여전히 선두인 모니카를 만났다. 정오 즈음, 문산역에서 조현철 신부님 외 두 분을 모셔다 순례단에 합류시켜 드린 후 7km 떨어진 임진각에 차를 세우고 택시로 돌아왔다. 파주에는 아직 기본요금이 인상되지 않았다.
40여 명 가까이 긴 행렬이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네 시 반쯤. 제주 한라산부터 임진각까지 650.3km, 33일 중 이틀 빠지고 완주를 한 티노를 딸과 사위와 손주 둘이 꽃다발을 들고 마중했다. 우리가 74년생이라고 맞먹은 그의 나이는 일흔 넷이다. 순례 내내 그를 보며 젊게 나이 드는 게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었다. 최고령자인 그의 수용이 없었다면 우리의 호칭 평등은 이루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평화누리공원 언덕 아래에서 다섯 신부님의 집전으로 2019년 겨울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마지막 미사를 드렸다. 이후 기자회견에서, 진해에서 온 숲지기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순례단은 전단지를 남긴다. 사람은 죽어서 안전한 세상을 남겨야 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대전에서 온 진숙과 전국을 다니는 소산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후, 임진각 언덕에 선학천무가 하늘 위 연과 함께 너울너울 평화를 기원했다.
이번 순례가 지난여름과 달랐던 건 각 지역민들이 매일 순례의 시작과 끝 나눔을 주도했고 순례자들 사이에 더욱 평등한 관계 형성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의식적인 분권과 평등과 자율, 그리고 기본적인 건강이 있으니 참 좋은 모임이 아닐 수 없다.
봄이 움트는 지금, 나는 벌써 올여름을 기다린다. 2013년 6월 6일, 성원기 교수인 톰의 첫 걸음으로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순례자들이 총 13차 367일간 6,660.5km를 걸었지만 아직도 밟지 않은 땅, 가지 않은 길에 탈핵로드맵이 그려질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엔 임진각까지였지만 통일이 되면 백두산까지 걸어가 볼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 핵발전소, 핵무기 없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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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 순례단은 전단지를 남긴다

 

알림
2019년 3월 6일 수 오전 11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 <핵폐기물 답이 없다> 시민선언
2019년 3월 9일 토 오전11시~17시, 국회에서 광화문까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8주기 <311 나비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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