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17 - 덕분입니다. 유성

posted May 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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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17 - 덕분입니다. 유성  

 

 

2021년 3월 17일 오전 11시, 천안 풍산공원 한광호 열사 묘역에는 열 명 남짓 서있었다.

2011년 5월 18일 유성기업 직장폐쇄 이후 9년 10개월, 한광호 열사가 세상을 뜬 지 5년 만이었다. 

지난 해 하루를 남긴 날, 극적인 노사합의로 십 년간의 싸움이 끝났으니 한광호 열사 5주기 추모제는 대대적으로 할 줄 알았다. 한광호 열사 무덤 앞에서 승리의 소식을 전하며 감격에 벅찰 줄 알았다. 그러나 십 년 동안 숨진 이가 그 한 사람만이 아니라 5.18에 합동추모제를 할 거라고 했다. 예년에 비해 너무 적은 추모 인원을 보며 그를 생각했다. 그는 승리를 알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에게 승리는 무슨 의미일까? 승리는 결국 살아남은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의 죽음은?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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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호 열사 추모 5주기 - 그대, 승리의 소식을 들었는가

 

 

올해 정월, 최소한의 생필품을 챙겨 눈길을 헤치고 정읍으로 갔다. 추위와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몸부림치며 지난 4년간 유성기업과 함께 한 이야기들을 한 데 묶었다. 그리고 르포 단행본을 내 줄만한 출판사 두 군데에 이메일로 원고를 보냈다. 5.18 10주년에 맞춰 출간이 되어 금속노조 유성지회에게 선물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무 데서도 답신이 없었다. 

 

그 사이 3월 30일 오전 10시에는 대전교도소에서 양원영 조합원이 출소했다. 유성기업 노조 갈등으로 수감된 이들 중 마지막 출소였다. 몇 시간을 차로 달려가 10분을 보고 왔다. 금전적인 손익계산으로 따질 수 없는 나의 행동은 ‘우정’이 아니고선 설명할 길이 없다는 걸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알았다. 늘 그랬었다. 4년 동안 한결같이 그들에게 달려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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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1년 5월 18일이 되었다. 

오후 네 시, 유성기업 아산 공장 입구에는 체온 측정과 명부 작성을 하고 들어온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열사의 염원과 연대의 힘! 덕분에 이겼습니다.’

할 말을 꺼내놓으면 밤 새고도 남을 양 지회장들의 발언 순서도 없는 간단한 보고대회였다.

 

누군가 그랬다. 

   “작가님, 이제 끝나서 어떡해요?”

   “끝이라니요. 우리의 우정은 영원해요.”

 

승리의 기운 덕분이었는지 아주 오랜만에 몸에 생기가 도는 걸 느꼈다. 

아는 르포 작가가 내게 “축하해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랬다.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내가 ‘유성기업의 작가’라는 걸 안다.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벌써 까마득하다. 나를 보고 목례하는 유성사람들을 지나치며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현장이란 그렇다. 오라고 하지 않아도 갔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와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를 기억했다. SNS를 하지 않으니 직접 물어보거나 누군가 특별히 알려주지 않으면 나는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때마다 어렵사리 찾아갔던 현장이었다. 어쩌면 내가 SNS를 하지 않는 이유는 세상 모든 억울한 일에 참견하려 드는 못 말리는 오지랖의 싹이 트지 못하게 하려는, 자신을 위한 보호 장치인지도 모른다.

 

나는 땡볕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조합원들을 하나하나 보았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이제 다시 어떤 조합을, 어느 조합원을 이토록 사랑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의미와 가치만으로 살 수 있는가? 글 쓰는 사람이 글이 아닌 다른 노동으로 벌어먹고 산다는 건 어쩐지 불명예스럽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까지처럼 순수하게 몸과 마음을 바쳐 현장에 있을 자신이 없다. 그러니 바로 그 현장에서 생존권을 걸고 십 년 간 싸워 제 권리를 찾은 그들을 어찌 뜻 깊게 바라보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 10년 중 내가 함께 한 시간은 고작 4년이었다. 그날 그곳에 모인 많은 동지들을 보았다. 부끄러웠다. 처음부터 함께한 그들이야말로 누구보다 박수 받을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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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사람들

 

 

그들과 조합원들의 힘으로 찾은 일상은 평이했다. 깃발이 남김없이 사라진 유성기업 노조사무실이 있는 붉은 벽돌건물처럼. 싸움이 끝난 자리에 내려앉은 텅 빈 평화였다. 어쩐지 허전했다. 일상이란 맹물처럼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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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없는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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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과 유성

 

 

유성지회는 고마운 이들에게 자그마한 다육식물 화분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별모양 막대에는  ‘덕분입니다 유성’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말은 내가 그들에게 돌려주고 싶은 말이다. 

  “덕분입니다.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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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입니다,-유성_resize.jpg 덕분입니다.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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