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14 - 봄날은 간다

posted Jun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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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14 - 봄날은 간다

 

 

3월, 한광호 열사 4주기 추모제

나는 찢어진 운동화 한 켤레를 가지고 있다. 2018년 5월, 서울 문정동 동부지검 앞에서 노숙하던 유성기업 아산지회 부지회장의 뒤축이 찢어진 운동화를 보고는 그에게 운동화를 사주려고 검색을 했었다. 그런데 그가 내 글을 읽자마자 이미 사버려서 대신 산 내 운동화. 여름용인 그 운동화는 2년 내내 사계절 하도 신어서 지금은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그런데 ‘비움실천’을 하고 있는 내가 그 운동화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유성지회 투쟁과 함께한 그 신발을 유성 승리의 날에 버리고 싶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던 2020년 3월 15일 한광호 열사 4주기 추모제가 있었다. 

천안 풍산 묘역에는 한광호 열사를 기억하는 사람들 백여 명이 모였다. 날이 매우 좋아서 오히려 건조했던 그 날 우리 모두는 광호 씨에게 희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도 나는 묘역에서 발을 떼기가 어려웠다. 막막한 미래에 대해 대체 그에게 무슨 말을 남겨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착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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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호 열사 4주기 추모제

 

 

4월, 징역 10월 구형

세월호 참사 6주기였던 4월 16일, 11시부터 13시까지 광화문에서 피켓 시위를 하자마자 대검찰청으로 달려갔다. 14시부터 대검찰청 앞에서 <노조파괴에 대한 천안지검의 엄중한 구형을 기대한다!> 기자회견이 있었다. 하필 세월호 참사일에 기자회견을 하는가. 일주일 후인 4월 23일이 배임, 횡령으로 구속수감중인 유시영 회장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천안지검의 구형재판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시영 회장은 이미 2017년 2월 부당노동행위(노조파괴)로 징역 1년 2월을 마치고 2018년 4월에 만기 출소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성기업의 노조파괴는 여전했고 유시영 회장은 2019년 9월에 또다시 구속되었다. 그러나 감옥 안에서 모든 사안을 보고 받고 자신이 위임한 최철규 노무담당대표이사와 노동조합과의 잠정합의안 마저 파기시켜 버렸다. 이에 유성기업의 노조파괴를 끝장내려는 노동자와 시민들은 검찰의 엄중한 처벌을 촉구했다. 23일, 검찰은 유시영 회장에게 징역 10월을 구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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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노동행위에 법정 최고형을 

 

 

5월, 벌금 선고

5월과 6월에 원주 토지문화관 입주 작가였던 나는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까지 유성지회가 가는 곳에 대부분 참석했던 것과는 다르게 여러 일정 중 선택을 해야만 했다.  

5월 14일 3심(대법원 2020도1281) 선고를 앞둔 5월  8일(금) 14시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이 있었지만 가지 못했다.  

유성기업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업무상 횡령 사건>은 1심(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2019고합23, 2019고합45(병합))에서 2019년 9월 4일 [류시영 : 징역 1년10월 및 벌금 500만원, 이기봉 : 징역 1년4월(집행유예 3년) 및 벌금 300만원, 사회봉사 120시간, 최성옥 : 징역 1년2월(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120시간] 선고되었고, 2심(대전고등법원 2019노351)에서 2020년 1월 10일 [류시영 : 징역 1년4월 및 벌금 500만원, 이기봉 :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및 벌금 300만원, 사회봉사 120시간, 최성옥 : 징역 10월(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 선고되었다. 

2심에서는 변호사 선임비용 중 피고인들 개인이 아닌 ‘유성기업’을 위한 변호사 선임비용에 대하여는 무죄가 선고되어 감형된 것이었다. 그러나 위 피고인들이 실질적인 당사자이고 ‘유성기업’은 형식적인 당사자에 불과하므로, 변호사 선임비용 전체에 대하여 유죄가 인정되어야 하므로, 대법원이 검사의 상고를 인용하여 제2심 판결을 파기하고 제2심에서 다시 한 번 엄중하고 합당한 판결을 선고하는 것만이 유성기업의 노조파괴를 중단시킬 수 있다고 유성지회는 주장하였다. 

 

아산영동 오체투지가 5월 13일 15시 천안법원 앞에서 있었고, 다음 날인 5월 14일 대법원 선고가 내려졌다. 오전 10시에는 조재상 외 4명과 오전 11시 10분 유시영 모두 기각, 형 확정이었다. 노조원 5명은 9월 1명, 내년 1월 2명, 내년 7월 2명에, 유시영 회장은 내년 1월 출소 예정이다. 

 

5월의 남은 일정은 19일 11시 천안지원 앞 유시영 엄벌촉구 기자회견, 20일 금속노조 결의대회(오체투지), 26일 14시 천안지원 유시영 회장 선고였다. 이 중 나는 20일과 26일을 선택했다. 

 

5월 20일 14시 유성지회 오체투지와 15시 금속노조 결의대회가 있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막 오체투지가 시작되었다. 오월이라 더운 날, 천안지원을 중심으로 한 코스를 민복 차림의 노조원들이 아스팔트 위에 엎드리며 나아갔다. 

현대자동차와 창조컨설팅이 공모하여 유성기업의 부당노동행위와 가학적 노무관리로 점철된 지난 10년 동안 두 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한 명의 노동자가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했다. 과반수가 정신질환 고위험군인 걸 감안하면 잠정적인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다. 묵묵히 오체투지를 하거나 그 뒤로 피켓을 들고 도보행진을 하는 노조원들을 보면 침묵 아래 폭발할 듯 도사린 불안이 감지되었다. 2019년 10월 말경에 노사가 상호양보를 통해 마련한 ‘노사잠정합의’가 감옥 안 유시영 회장에 의해 바람 빠진 구조선처럼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이후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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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금속노동자 결의대회  

 

 

마침내 2020년 5월 26일 14시 천안지원은 유성기업의 유시영 회장에게 2,000만원, 이기봉 1,600만원, 최성옥 1,200만원, 유성기업 1,000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그 정도 약한 처벌로는 사측이 노측과 진정성 있는 교섭을 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검찰이 2017년 2월 징역 1년형을 지난 4월 23일에 징역 10월로 구형하자 사측은 “선전했다”라고 자평하며, 노동조합에게 교섭은 5월26일 선고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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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복 입은 채 들은 선고

 

 

2011년 5월 18일 이후 만 9년이 지났다. 

노조파괴를 통해 현장은 이미 갈등은 연속이다. 지회는 7년간 임금인상을 하지 못했을 뿐더러 조합 활동에 대한 단체협약마저 없어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유린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죄는 최대 2년형이다. 작업 현장에 부당하게 설치된 CCTV에 청 테이프를 붙인 유성기업 노동자에게 1년 6월을 구형했던 검찰은 유시영 회장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1년형과 10월형을 구형했다. 한술 더 뜬 판사는 벌금 2000만 원을 선고했다.

 

이 판결에 노조가 승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법원에서 이미 유시영회장의 임금체불은 고의성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2011년 연월차 수당지급 시 선 복귀해서 출근율이 좋았던 어용노조원에 비해 법원의 중재에 의해 늦게 복귀한 금속노조원들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한 출근율을 적용했고, 정당한 쟁의행위 기간을 결근으로 판단하고 연월차 수당을 지급한 것은 고의성이 인정된다고 판결한 것이다. 또 금속노조원들만을 대상으로 단위시간당 생산수량(uph)을 적용해 임금을 일방적으로 삭감한 행위역시 마찬가지다. 또 이와 같은 판례가 없었다는 주장과 실제 태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태업으로 간주하고 경남제약을 예로 들면서 고의성이 없어 무죄라는 홍성욱 판사의 주장은 감시카메라, 몰래카메라 수십 대가 감시하는 현장, 소속장이 관찰일지를 쓰면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현장, 공정차별, 잔업, 특근차별, 승진차별, 촉탁근무에서의 차별, 천여 건의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수백 건의 소송을 통해 괴롭히고, 어용노조만 임금을 인상하고, 금속노조의 단협은 단 한 번의 교섭도 없이 해지해 버리는 죽음의 그림자가 살아 움직이는 유성기업현장을 도외시한 무책임한 판결이다.’ 

(2020년 5월 29일 기자회견문 중) 

 

유시영 회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업무상 횡령 사건으로 2019년 9월부터 수감 중이다. 이대로 2021년 1월 만기 출소를 각오한다면 교섭 의지는 없을 것이다. 

 

6월의 기로

그런데 6월 22일, 최철규 노무담당대표가 사표를 냈다. 제2노조와 고용유지조치(아산공장 주조부)에 대해 합의했는데 2시간 30분 만에 번복된 일이 발생한 직후였다. 노사가 합의를 할 때마다 번번이 문제가 생기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2018년 가을 서울상경투쟁을 무산시킨 폭력사건의 피해자 김 씨와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추측한다. 이제 사측은 선택해야 할 것이다. 10년간의 노조파괴를 그만두고 노사화합과 상생의 길을 갈지, 노조파괴주범을 비호하며 관리직원들과 노조원들을 불행한 길로 계속 가게 할지. 

 

율곡 이이의 <동호문답(東湖問答)>에는 ‘논변간위용현지요(論辨姦爲用賢之要)’ 즉 간신을 멀리하고 현인들을 등용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간사함을 분별하는 데는 이치를 궁리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고 현인을 알아보는 데는 공정한 마음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했다. 유시영 회장 부자가 부디 간신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멀리멀리 실현했으면 좋겠다. 

찢어진 내 운동화를 얼마나 더 신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섣부른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 노조집행부 임기 안에 모든 것이 정상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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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 투쟁과 함께 한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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