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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고

posted Feb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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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니엘블레이크_크기조정.gif

 

 

“우리는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야만 한다”

   - 켄 로치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 중에서

 

 

50년 넘게 사회성 짙은 소재를 영화로 만드는 작업에 몰두해온 켄 로치가 또 다시 역작을 가지고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한결같은 시선으로 사회의 어둡고 억눌린 곳을 응시해온 감독의 관심이 이 영화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영화에서 감동적인 장면을 모아 적어본다. 당시의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대처 이후 사회복지예산이 대폭 축소되고 신자유주의가 일상이 되어버린 영국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주인공 댄은 평생을 목수로 살아온 50대의 실업자다. 지병인 심장병으로 직장을 다닐 수 없게 된 그는 해당 관서에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찾아갔지만 이미 온기를 잃은 사회시스템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온갖 구실과 사소한 절차를 이유로 복지체제로 편입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효율과 경쟁을 국가운영의 기본 원리로 채택한 영국은 각종 복지 급여를 심사하는 기구의 관료화와 무관심으로 한계 상황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나락으로 빠트리고 있다.


#1. 이 영화의 주인공인 댄이 자본과 효율이라는 괴물이 점령해 버린 영국의 복지체계와 힘겨운 싸움을 하면서도 삶의 파고에 좌초돼 표류해온 도시 난민인 케이티를 도와주기 위해 구호 단체가 극빈자를 지원할 목적으로 세운 구호물품 창고로 케이티를 인도한다. 그곳에서 식료품을 주어 담던 케이티는 갑자기 통조림을 따서 입에 넣기 시작한다. 그것은 분명 먹는 것이 아니고 그냥 입안으로 음식을 밀어 넣는 것이었다. 그 상황을 당황스럽고 놀란 시선으로 바라보던 댄에게 케이티는 며칠을 음식을 먹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갑작스런 케이티의 행동에 놀랐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케이티를 위로하는 댄의 표정에서 심장의 한 면이 날카로운 비수로 잘려진 것 같이 아려 옴을 느꼈다.

 #2. 이미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이해를 포기한 영국의 국가 시스템은 인간을 극한까지 몰고 가 결국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비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한 교환수단인 화폐를 조달할 수단과 방법이 차단된 사람들은 걸인이 되거나 자신의 육체를 매매해야 한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켄 로치의 시선은 그렇다. 성매매의 길로 인도한 사람과 그를 대상으로 성매매를 알선하는 사람까지도 나쁘게 그리지 않는다. 그들 모두가 인간의 온기를 느낄 수 없는 체제의 희생자로 결국 연대해야 할 대상으로 상정한다.

성매매의 길로 나선 케이티를 찾아 나선 댄은 결국 케이티와 마주한다. 댄을 본 케이티가 황급히 옷을 주어 입는다. 케이티의 모습을 본 댄의 표정이 뭐라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갖가지 감정들이 얼굴에서 표현된다. 도와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어떤 상황도 용인할 것 같은 무한 연민이 그리고 이런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범벅이 되어서 표정으로 나타난다. 지금까지도 아니 시간이 상당히 흐른 뒤에도 이 장면을 떠 올리면 가슴이 먹먹해 질 것 같다.


#3. 어느 곳에서나 사회 연대 예산을 축소하려는 자들의 상투적 어투인 ‘도덕적 해이’, ‘한정된 재원의 효율적 배분’ 등을 이유로 복지전달체계를 정비하고, 수급심사를 강화하기 위해 관련 업무를 민간기업에 위탁해 운영하면서, 국가와 달리 수익을 유일 목적으로 삼는 자들에 의해 각종 실업과 질병수당 신청자에 대한 인간적 모멸과 반 존엄적인 태도가 전면화·일상화되는 현실에서 댄은 나는 개가 아니고 인간이다라고 말하면서 준비해온 스프레이로 복지수당 심사기관의 벽면에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다로 시작되는 낙서, 그라피티로 요구 조건을 적어놓는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댄의 행위에 지지를 표시하면서 박수와 환호로 연대를 표현한다.

켄 로치의 의도가 이 부분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거리를 지나면서 댄에게 호의를 보인 사람들이 말쑥하게 잘 차려입은 사람들 보다는 주변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막노동자로 보이는 추레한 복장의 사람은 자기의 옷을 벗어 댄에게 입혀 주면서 보수당 욕을 하며 댄에게 호응한다. 거리를 지나던 바니걸 복장의 젊은이들 역시 동년배 젊은이 가운데 주류로서 전도양양한 부류는 아니다. 그들은 비주류이고 찌질이며 사회 전면에 위치하지 못하고 2선이나 3선 4선에 자리하는 부류들이다. 특히 이들에 대한 감독의 애정은 전작인 ‘엔젤 쉐어’에서도 잘 드러난 바 있다.

모든 항거수단을 탈취당하고 무장해제되면서 겨우 이 정도 밖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없이 슬펐지만 저항과 연대를 확인하는 장치로 감독은 탁월했다고 생각하고 제한적이고 부분적이지만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50여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억압된 현실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영화의 테마로 삼아온 노거장의 역작인 이 영화를 강력 추천한다.

 

이두우-프로필이미지.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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