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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디아스포라’이다

posted May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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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한복수업_resize.jpg

 

 

“아잔! 폼 아워 바이 까오리 캅!”   “선생님! 저 한국에 가고 싶어요!”
  
한국어 교사로 태국의 ‘난’이라는 오지에 1년여 동안 있었다. 태국에 속한 지 50여 년 밖에 지나지 않은 세계사에서도 소외된 ‘난나왕국’. 그곳은 주종족 따이(태국)족과 선주 산악민족인 카무족과 루와족, 이주 산악민족인 몽족과 미얀족이 서로 어울리며 살고 있었다. 인도차이나에서 마지막까지 옷을 입지 않고 원시적으로 살던 ‘피똥르앙’족이 태국정부의 보호정책으로 천연기념물처럼 살고 있는 곳도 지금은 ‘난’이라 불리는 사라진 왕국이다.  

수업이 없는 주말이면 나는 소수민족을 찾아다녔다. 인류학적인 관심보다도 1300년 전에 고구려가 망하고 당나라에 끌려간 고구려 유민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짧은 언어학 지식으로 영어도 모르고 태국말도 모르는 산속의 소수민족 어른들에게 몸짓, 손짓으로 다짜고짜 단어를 캐물었다. 어느 날 한국인 여행객이 동남아 산속을 헤매다 길을 잃고 어느 소수민족 마을에서 며칠을 보내고 그들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전설 같은 얘기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국말과 비슷한 말을 쓰는 종족은 내가 있던 지역에는 없었다. 주말이면 조금 더 먼 곳으로 그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말과 비슷한 종족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난에서 치앙마이까지 7시간, 치앙마이에서 빠이까지 4시간, 빠이에서 미얀마 국경 쪽으로 또 2시간을 지프차를 타고 들어갔다. ‘검은라후족’. 그들의 말 “아빠 가이”는 “아버지 가다”였고 “아마 오이”는 “어머니 오다”였다. 아이는 우리처럼 등에 업어서 키웠고 아이의 엉덩이에는 몽고반점이 있었다. 같은 한민족의 혈통을 먼 타국에서 만나다니... 외세에 의해 수만 킬로를 끌려와서도 종족보전을 위해 다른 종족과는 결혼을 하지 않는, 그래서 더 순백의 한민족을 만났다는 생각에 벅차오르는 감정은 외세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져 만날 수 없는 또 다른 한민족이 오버랩되며 마을을 떠나는 내내 뛰는 가슴을 진정 시킬 수 없었다.

 

색동옷을-입은-검은라후족-어린이들과_resize.jpg

색동옷을 입은 검은라후족 어린이와 함께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들은 고구려 유민이 아니었다. 검은 옷을 입었다는 고구려무사 계급의 후손이 아니라 지금의 쓰촨고원, 강나라의 유민이었다. 한때 고원 아래 지나(한)족보다 번성했다는 강나라는 한족에 밀려 운남성으로 내려오고 운남성에서도 밀려 인도차이나의 산속까지 밀려 들어왔다. 운남성의 바이족, 이족, 라후족, 아카(하니)족 등의 언어에는 ‘아바, 어마, 오빠, 아부, 아기, 아자’ 등 아래‘아’로 시작하는 혈족의 호칭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놀라운 것은 그들 아래아 단독 발음의 의미는 ‘하늘’이었다. 훈민정음에서 아래아가 하늘을 의미하는 것과 똑같았다. 우리말과 같이 주어+목적어+동사의 어순 구조의 익숙한 가족 호칭, 그들 먼 조상의 어느 시점에 우리 민족과 뿌리를 같이 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을 알아 갈수록 내가 찾는 고구려 유민은 아니었다.

언어는 환경이 바뀌면 가장 빨리 잊히는 전통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사실 한국말을 모르는 한국인 이민 2,3세는 흔하다. 언어는 새로운 주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수단이기 때문이다. 반면 고고학적으로 장례문화와 의류문화는 그 특성이 오래 남는다고 한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고구려 천마총에 있는 그림 속의 바지가 중국과 동남아에 있는 몽족의 바지와 동일하다는 신간 소개기사를 보았다. 한국의 지인에게 부탁해 그 책을 구입해 하루 밤새 읽어나갔다. <1300년,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이란 책이었다. 의류학자인 저자가 우연히 중국 몽족 마을에서 ‘궁고’와 똑같은 바지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고구려인이 즐겨 입은 궁고라는 바지는 말을 타기 위해 바대를 엉덩이에 덧대 엉덩이가 툭 튀어나온 게 특징이다. 산악 민족인 몽족이 말을 탈일도 없거니와 산 생활에선 너무도 불편한 바지이다. 저자는 19가지 근거를 제시하며 몽족이 고구려 유민임을 주장한다. 

학교의 동료 선생들에게 주말에 몽족 마을에 가자고 졸랐다. 선생 중에 한명이 웃으며 말했다. “주말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 네가 가르치는 학생 5~10%가 몽족이니까!” “눈꼬리가 뾰족한 것이 너희 한국 사람들 닮았어!” 그토록 찾았던 고구려 유민의 후손들이 바로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학교가 있는 해발 1200미터의 읍내에서도 그들 마을은 도로도 없는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기에 몽족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 밑에서 자취를 한다. 주말이 되면 학생들 오토바이에 실려 마을까지 찾아가 그들 흙집에서 몽족 음식을 먹고, 함께 잠도 잤다. 19가지 근거를 하나씩 하나씩 확인했다. 가장 변하지 않는다는 단어 ‘벼’와 ‘쌀’도 확인했다. 우리의 동짓날과 같은 몽족의 설날은 물론 결혼식과 장례식도 쫒아 다녔다. 당나라군에게 끌려가면서 기억하기 위해 치마에 그려 넣었다는 황하강과 장강의 무늬. 고향의 성곽무늬, 논농사에서나 볼 수 있는 우렁이모양 액세서리. 1300년 전 고구려 유민은 아닐지언정 원래 산악 민족이 아닌 평지에 살던 민족임은 확실했다. 더군다나 그들은 다른 소수민족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당 말과 송나라 초기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들이 정말 오래전에 헤어진 고구려의 형제들일까? 소수민족의 학생들은 정체성이 약하다. 주류민족의 역사를 배울수록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자신들의 뿌리가 부끄러워지기 때문이다. 몽족이 고구려 유민이라는 어느 정도의 확신이 든 순간 나는 몽족 학생들에게 몽족의 역사 교육을 하였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것이 거짓말일지라도 믿고 싶었는지 모른다. 한국어도 가장 빨리 익히는 학생들이 몽족 학생들이었다.

 

 

설날-짝짓기-공놀이_수정본.jpg

당고바지를 입은 몽족 짝짓기 공놀이/설날에 구워먹는 몽족 가래떡



졸업을 앞둔 몽족 학생이 찾아왔다.  
“아잔! 폼 아워 바이 까오리 캅!” 한국에 가고 싶단다. 한국에 가서 열심히 일해 산에서 힘들게 커피농사 짓는 부모님을 도시로 모시고 살고 싶단다. 나는 순간 할 말이 없었다. 갑자기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사장님 나빠요, 한국사람 미워요’가 생각났다.
부끄러웠다. 한복입기 체험을 시키고, 김밥과 떡볶이를 만들며 태극기 그리기를 하던 시간이... 무엇보다 너희들의 고향은 ‘까오리’ 바로 한국이라 했던 것이...

우리는 그들과 더불어 살 준비가 되었는가? 
재미동포, 재일동포는 왜 ‘동포’라 하고 재중동포, 재중앙아시라 동포는 왜 조선족, 고려사람이라 하는가?  
100년 전 디아스포라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1300년 디아스포라를 찾는다는 건 얄팍한 민족주의의 감성적 자기만족이 아니었던가? 

누구는 우리 민족이 바이칼에서 왔다고 하고, 누구는 수메르에서 왔다고도 한다. 어디에서 왔든 분명한 것은 한반도가 원래 고향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디아스포라다. 지구 곳곳을 떠돌다 한반도에 먼저 들어와 산 선주민인일 뿐이다. 원래 주인도 아니면서 텃새는 왜 부리나? 가난한 이주민에겐 왜 그리 모질고, 서양인에겐 왜 그리도 친절하나? 오죽하면 어느 서양인이 자기에게 너무 잘해준다고 ‘인종차별’ 신고까지 했겠나?     

한국에 돌아와, 나는 더 이상 한국어를 가르칠 수 없었다. 그리고 다문화 세계시민교육 공부를 시작했다. 이주민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이주민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선주민 교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디아스포라’이다. 단지 우리는 어느 동네에 먼저 이사 왔을 뿐이다. 그 옛날 이 땅에 옮겨 온 곰족과 먼저 온 호랑이족이 후손들에게 서로 더불어 살라며 지혜를 하나 주었다. 
그것이 바로 ‘홍익인간’이다.


고석배-프로필이미지.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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