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공감마당]

9bdbc4

[포토에세이] 매일 산에 오르는 사람

posted May 27, 2020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매일-산에-오르는-사람_resize.jpg

 

 

[포토에세이 ] 매일 산에 오르는 사람

 

 

어느 여름날 저녁 동대문 등산용품점. K씨는 어스름한 가게 앞길을 두리번거린다. 길거리 가득한 퇴근하는 회사원들 속에서 혹시 헛걸음질 칠지 모를 손님을 찾는다. 

 

K씨는 가게 셔터를 내리고 쭈그리고 앉아 등산화끈을 꽉 묶는다. 물이 가득 찬 페트병을 눌러 담은 배낭을 메고 산으로 향한다.

 

야간 산행이냐고? 밤이 되면 산은 동물들 차지가 된다. 치기 어린 행동은 벌금으로 끝나면 다행이다. K씨는 등산화를 신고 무거운 등산 배낭을 메고 퇴근하는 길이다.

 

동대문에서 청계천을 지나 낙산에 올라 절벽마을로 퇴근한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이 아니지만, 배낭을 지고 씩씩거리며 걸어가는 K씨는 길거리에서 맥주에 노가리를 씹는 사람들의 좋은 구경거리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이리저리 걷는 모습이 불쌍한지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절벽마을 꼭대기에 오르면 북한산이 보인다. 주말에는 가게 문을 열지 않고 그 높은 산에 오른다. 산 타는 사람이 쉬는 날에 동대문에 올 리 없다. 북한산도 도봉산도 K씨는 물병 가득한 배낭을 메고 오른다.

 

K씨는 더 높은 산에 오르고 싶어 한다. 돈을 모아 시간을 내어 더 먼 곳에 있는 더 높을 산꼭대기까지 올라가고 싶다. 이제는 어째서 산에 오르냐고 묻는 사람도 없지만, K씨는 대답한다. 더 높은 산에 오르고 싶기 때문이라고.

 

끝없이 더 높은 산을 오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매일 다시 내려올 산에 오르는 일이 헛되다고? 그게 우리 인생 아닌가, 라고 K씨는 되묻는다.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 정상에 오르려고 매일같이 고통스러운 삶을 참지 않느냐고.

 

K씨는 내일 아침에도 가게 앞에 앉아 낙산 너머 북한산 인수봉 너머, 더 멀고 더 높은 산을 바라볼 것이다.

 

김중백-프로필이미지.gif

 


  1. 가로등의 꿈

    모래가 하얀 이불을 덮고 잔잔한 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파도는 까치발로 찰랑거리며 자장가를 부릅니다. 노랗고 하얀빛이 가드가 되어 곁을 지킵니다. 가끔 물고기의 기지개에 놀라 꿈틀거리지만 환하게 웃는 미소가 세상 부러울 것 없어 보입니다. 어두...
    Date2023.06.09 Views77
    Read More
  2. 즐거운 인연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휠체어 사용자의 프로필사진을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모델이 왠지 낯이 익었지만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여 기억을 떠올리기 어려웠습니다. 화장을 마친 모델과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미안함과 불안함으로 가득한...
    Date2023.05.11 Views103
    Read More
  3. 비빔밥

    이슬 맺힌 파릇한 상추가 생각납니다 절인 배추도 있고요 빨갛게 고추가 성을 내고 있습니다 한켠 조그맣게 고사리도 보이고요 두켠 조그맣게 시금치도 보입니다 조금 올라가면 머리 큰 녀석이 터질 듯 성을 내고요 조금 더 위에서 들깨, 참깨가 마른침을 바...
    Date2023.04.11 Views52
    Read More
  4. 따뜻한 사진 한 장

    사진촬영 봉사를 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복지시설에 찾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복지시설의 복도에는 잡지에서 본 적 있는 사진이나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의 복제품 액자가 걸려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끔은 시설 이용자들이 사진을 배우면서 찍은 다소 ...
    Date2023.03.09 Views61
    Read More
  5. 초상화

    끝겨울에 걸친 창문을 보니 당신이 생각납니다. 가까이 뵌 적도 멀찌감 다가갈 용기도 없었지만 존재만으로 힘이 됩니다. 춥고 갑갑한 겨울 당신의 초상화를 그려봅니다. 인자한 미소는 남실바람에 미친 듯이 요동치는 불안한 마음을 잡아줍니다. 맹렬하게 바...
    Date2023.02.08 Views56
    Read More
  6. 분향소 가는 길

    2023년 새해가 되면서 미루고 있던 이태원 분향소에 방문하였습니다. 사진을 좋아하고 인물사진을 많이 찍게 되면서 인물사진을 보면 눈동자를 보게 됩니다. 잘 찍은 인물사진의 경우 눈동자에 반사된 조명으로 전문가의 의도와 테크닉을 추측하곤 합니다. 하...
    Date2023.01.05 Views88
    Read More
  7. 변죽

    그릇이나 세간, 과녁의 가장자리. 변죽을 울리다. 핵심은 찌르지 못하고 곁가지만 건드린다. 세상이 변죽 거리며 본질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변죽시대, 경제는 생생내기에 변죽, 정치는 겉핥기로 변죽, 외교는 외줄타기로 위태로워 보입니다. 앙상한 나무 하...
    Date2022.12.04 Views130
    Read More
  8. 우리나라

    1991년 봄에 광주 망월동에 방문했습니다. 거기에는 2년 간 같은 건물에서 공부하던 이한열 열사의 무덤이 있었고 잔디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모습은 우리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5월의 마른 잔디는 더욱 초라한 모습으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
    Date2022.11.07 Views75
    Read More
  9. 이상한 나라의 토끼굴

    을지로 5가 국립의료원 옆에 훈련원공원이라는 작은 공원이 있습니다. '훈련원'이라는 명칭은 이름 그대로 조선시대에 병사들의 훈련을 담당하던 관청이 있던 곳이라 합니다. 특이한 이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한 때 스케이트보드를 배워보려...
    Date2022.10.03 Views104
    Read More
  10. 악한 늑대를 키우는 인간들

    인간의 마음에는 선한 늑대와 악한 늑대가 있다. 이 중 강하게 성장하는 것이 "내가 키우는 늑대다.''라는 인디언의 우화가 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뉴스, 신문, sns를 보면 분노, 슬픔, 소외, 혐오 등 악한 늑대밥만 가득하다. 마네킹의 마음에도 ...
    Date2022.09.03 Views9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