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간다

posted Apr 0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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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아간다

 

 

상큼한 봄의 기운이 만발하는 4월입니다. 벌써 벚꽃은 피고 지고 봄날의 밝은 기운을 맘껏 즐기지 못하고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갑니다. 수에즈운하에서 발생한 선박사고로 인해 거의 일주일간 꼼짝없이 운하 근처에 갇혀버린 선박을 보며 언제쯤 정상화가 될지도 모른 채 고객들에게 지연안내를 하며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드디어 사고 선박이 운항을 정상화하였다고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매일 부산항에 도착하는 선박의 지연보다 빠르게 운하 사고가 정상화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더 지연되었으며 세계무역에 심각한 차질이 생겨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물가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으니 이 정도에서 사고가 수습된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문득 지금껏 살아온 나란 사람의 세상살이를 한 번씩 곱씹어 봅니다. 지난 이삼십대 시절의 나는 어떻게 그 난관을 헤쳐 지금껏 살게 되었을까 뒤돌아봅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저도 ‘집주인’ 이 되는 인생에 큰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청약통장을 거의 십 년 넘게 유지하다가 우연히 청약을 넣었는데 놀랍게 당첨이 되었습니다. 비혼자로 나이가 들면서 남아있는 날을 생각하니 집이라도 한채는 있어야 불투명한 미래가 조금은 선명해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참 다행스러운 상황입니다. 서른 초반부터 청약센터를 들어가서 조건을 살펴보면 이 청약통장으로 제가 살 집은 전혀 없었습니다. 무주택자라고 같은 무주택자가 아닙니다. 부양자가 없어서 안 되고, 소득이 있어서 안 되고, 부부가 아녀서 안 되고, 이것저것 다 안됩니다. 그렇게 십여 년 살펴보다 마흔 중반을 넘어서야 기회가 생긴 셈입니다. 지금의 청년 시대가 제가 지나온 시절보다 끔찍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편안한 시절을 지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당시엔 청년주택도 행복주택도 없었습니다.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간다고 면접 수당을 주지도 않았고, 취업을 준비한다고 취업준비금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중소기업에 취업해서 2~3년을 다니면 열 배의 돈을 나라가 적금을 해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때가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에 청년은 어차피 힘들게 살아남는 전쟁을 치르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하며 버티며 지냈습니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던 해가 2008년이었는데 제 나이는 서른 중반이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절망했고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거짓말쟁이를 서슴없이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국민들을 보며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엔 나보다 윗세대에 대한 분노가 컸습니다. 이명박이 집권을 끝내고 심지어 박근혜가 탄핵이 되기까지 힘들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제 청춘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수구 기득권 세력의 탐욕은 참 착실했고 이런 행태를 비판하는 소리는 듣지 않고 차곡차곡 불법과 탈법 아니 초법적인 행동을 해나갔으니 말입니다. 저는 근로소득 종사자로 지난 20여 년간 꼬박꼬박 급여에서 세금을 냈습니다. 그런 세금은 누가 어디다 사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나라에서 세금을 내며 받은 혜택이란 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뭐 세금을 낸 만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저만이 아닐 테니 이걸 불평한다 해도 나중에 나이 들면 국민연금을 받고 건강보험 혜택을 누리게 되지 않냐고 말해줍니다. 그래,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보자 생각하며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 지내봅니다. 앞으로 10년 후 저는 또 어느 세대에 치여서 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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