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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의 책 소개 : 이승우 소설집 "사랑이 한 일"

posted Jun 0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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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의 책 소개 : 이승우 소설집 "사랑이 한 일" | 이승우 저 | 문학동네

 

                                                                                                          

1.

이승우의 소설집 『사랑이 한 일』은 성서의 창세기에서 이야기를 가져온다. 우리는 간혹 성서를 읽어 가면서 이해가 석연치 않은 대목이나 이야기 전개를 만나게 되는데, 이승우는 그 중 구약 창세기의 다섯 꼭지를 가져와 ‘다시 읽기’ 혹은 ‘다시 쓰기’를 시도한다.

성서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예술가 특히 서양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샘이었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 그리고 영화 등 장르를 불문한 분야에서 이야기의 주제로 소재로 활용되고 변주되어 왔다. 그것은 성서가 가지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서 다양한 방식의 창작과 향유가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문서가 가지는 구조의 불완전성에서 기인하는 역설적인 면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잘 알다시피 고대의 이야기 전승 방법은 ‘구전’에 의한 것으로, 구전은 연행이라는 행위를 통해 대중에게 전파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연행자와 관중 사이에는 이미 전파되는 이야기의 배경과 의미가 공유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굳이 세세한 설명 없이도 혹은 어떤 대목을 건너뛰더라도 이야기 자체가 왜곡될 여지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가 공동체의 전승 레파토리로 정착하는 과정에는 그 공동체(씨족 혹은 부족)의 공통 관심사가 삽입되어 새로운 판본이 만들어진다. 나는 성서에 문외한이지만, 성서에 삽입된 신화와 전설의 전승 과정도 이와 같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구전 전승의 이야기가 문자로 고체화 되면서이다. 구전 전승에서는 연행자의 판단 혹은 필요에 의해 축약되거나 확장되고 혹은 새로운 이야기가 삽입되는 등의 다양한 변주가 가능했으나, 문자로 적힌 이야기는 고정이 되어 변주의 가능성이 거의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필사의 과정에서 약간의 삽입이나 탈락, 오기 등으로 의미의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가 없지 않으나, 구조적인 변주는 매우 드물다.) 이렇게 확정된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이면에 흔적의 형태로 남아있던 이야기 형성 과정의 미묘한 어감을 상실하게 된다. 고대 문서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이승우의 소설집 『사랑이 한 일』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은 성서 창세기에 삽입된 이야기의 이면에 남은 흔적을 찾아 재구성하고 있다.

 

2.

모든 기록이 그렇듯이 성서도 살아남은 자 혹은 승리자의 시각에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승우의 소설들(『사랑이 한 일』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을 말한다.)은 성서에 기록된 시점과 시선을 벗어나 낯선 방향에서 이야기를 본다. 그것은 한편으로 두려운 일이다. 

 

-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보다 더 착할 거라고 판단할 수 없다.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이 어제 죽은 사람보다 살 가치가 더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소돔의 하룻밤」 54쪽)

 

두 천사의 도움으로 소돔성의 참사 현장을 벗어난 롯의 두려움은, 사회적 참사가 끊이지 않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두려움이기도 하다. 

잘 알다시피 소돔성을 멸하겠다는 야훼의 의지는 확고했다. 죄악으로 가득 차서 더는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브라함은 소돔성의 멸망을 막기 위해 끈질기게 야훼를 설득했다. 합리적 근거가 부족한 그는 의인의 숫자를 볼모로 야훼의 마음을 돌려보려 했다. 그러나 롯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소돔성을 찾아온 두 천사의 정체를 알고 난 후에도 소돔성을 구해보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그 성에서 살면서 그곳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악행의 실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들은 롯을 밀치고 대문을 부수려고 한다. 당황한 롯은 흥분한 군중을 향해 제안한다. “이것 보게. 나에게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이 있네. 그 아이들을 자네들에게 줄 터이니 자네들 좋을 대로 하게. 그러나 이 남자들은 나의 집에서 보호받으려고 온 손님들이니까 그들에게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게. (「소돔의 하룻밤」 35쪽)

 

자기 집에 온 손님(그러나 그들은 길거리에서 밤을 보내겠다고 한 사람들이었고, 집안으로 애원하여 끌어들인 사람은 롯 자신이었다.)에게 마을 사람들이 들이닥쳐 다짜고짜 상관하겠다고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새번역에서는 ‘상관’이라는 점잖은 표현을 하고 있으나, 작가가 인용하고 있는 『현대인의 성경』에는 ‘강간‘이라는 노골적인 단어를 쓰고 있다. 

 

- 롯은 그 흥분한 무리들이 그의 집안에 있는 낯선 남자들과 집단적으로 성행위를 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손님인, 외지에서 온 나그네들을 모욕하고 모욕하여 길들이겠다고 주장하는 것임을 알았다. 비상식적이고 제어하기 힘든 성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비이성적이고 무비판적인 외지인 혐오에 붙들려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소돔의 하룻밤」 38쪽)

 

코로나 감염병 대유행 시기를 맞아 전 세계 특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 행위에 대한 보도를 접하며, 소돔성에 만연한 ‘외지인 혐오’에 대처하는 롯의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그의 그 보편적 사랑의 실천은 그 자신이 외지인으로 소돔성에 들어와 정착하면서 받은 차별에서 배운 것이다. 그는 배타적인 사회에 내재한 폭력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이건 옳지 않아, 하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것은 그녀가 입 밖에 낸 거의 유일한 말이었다. (「하갈의 노래」 57쪽)

 

하갈은 억울하다. 사라는 권력이다. 권력 외부에 서 있는 그녀의 편이 되어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말은 한(恨)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브라함의 첩실이 되려는 생각이 없었다. 신분이 그녀를 의지와 상관없는 처지로 몰아넣었다. 사라와 하갈의 이야기 구조는 우리가 어렸을 적만 해도 자주 볼 수 있는 현실이었다. 그녀들은 잘못한 것이 없어도 손가락질의 대상이었다. 그녀들이 기를 펴고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 나는 평평한 것이 좋아. 그녀는 제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내려간 사람은 자기가 내려갔기 때문에 제자리에 있는 사람을 올라갔다고 간주한다. 그녀는 부인이 느끼는 감정의 혼란을 이해했고 그 아픔을 온몸으로 공감했다. (하갈의 노래」 82쪽)

 

계층 간의 갈등은 또 다른 배제의 모습이다. 그 이면에는 통제하지 못하는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은 독점하려는, 모든 것을 혼자 가지려는 일그러진 욕심의 다른 얼굴이다. 아들을 낳은 하갈은 사라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느껴질 뿐이었다. 사라는 이집트 여인 하갈이 낳은 아이가 그녀의 아들과 함께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에게 그들을 내칠 것을 요구했다. 이스마엘의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 창세기 기사(21장 9~10절)는 가혹하다. 빵과 물 한 부대를 던져주며 아브라함은 신의 뜻을 빙자했다. 아브라함은 사고를 치고 신이 뒤치다꺼리해야 했다. 하갈이 절체절명의 절망 앞에서 신의 음성을 들은 것은 그녀에게 주어진 왜소한 사랑이었다.

「하갈의 노래」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신의 요구에 무기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암시한다.(신학적 해석과는 무관하다.) 무조건적인 편애에 저항할 수 없는 한 늙은 인간의 모습에서 신은 초라해진다.

 

- 그분이 직접 너의 이름을 불렀다. 사랑하지 않는 무엇이나 누구를 바치는 것은 힘들지 않지만, 그래서 요구되지 않지만, 사랑하는 무엇이나 사람을 바치는 것은 힘들다. 그래서 요구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은 힘든 것이다. ( 「 사랑이 한 일」 99쪽)

 

이삭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묻고 싶었는지 모른다. 시퍼렇게 날이 선 칼끝이 목을 겨누어 들어올 때의 공포를 단지 사랑이라는 어휘 하나로 지워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삭은 묻지 않았고 아브라함은 말하지 않았지만, 이삭은 상황을 되짚어가며 헝클어진 퍼즐 조각을 맞춰 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신은 나에게 나를 바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왜 그랬겠느냐. 나를 바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속한 것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 나보다 더 소중한 것이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만 바치지 못할 정도로 사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분이 그걸 알았기 때문이다. ( 「 사랑이 한 일」 101쪽)

 

신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전부를 바치라고 한 것이었다. 그에게 아들 이삭은 그를 넘어서는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다른 것은 모두 바칠 터이니 아들 이삭만은 제외해 주십시오.’라고 애원하지 않았다. 단지 신에게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안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 두려움을 넘어서는 것은 더 어렵다. 전부를 걸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다. 요구당하는 사람이 거부한다면 요구하는 사람도 실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삭은 그것을 알았다. 신이 한도를 초과하는 사랑을 요구할 때, 그는 아브라함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읽었다. 그것은 잔잔한 바다 밑에서 엄청나게 요동치는 해류 같은 것이었다. 평온한 얼굴이라고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이삭이 번제로 바쳐지기 위해 갔던 그 길에서 ‘갑자기 성장했다.’고 쓰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시험하는 자와 당하는 사람의 고뇌를 읽었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고 물어 가면서 사유의 폭이 넓어졌고 이해의 수준이 한결 높아진 것이다.

「허기와 탐식」은 이삭이 에서의 고기를 탐하게 된 연유와 끝없는 허기의 단초가 무엇이었는지 추적해 간다. 이삭은 번제물로 바쳐져 죽을 고비를 넘기고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집은 사랑이 없는 곳이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굴레인 곳이어서 돌아갈 수 없는 곳, 달아나야 하는 곳이 되었다.’ 떠돌던 그가 오래전에 쫓겨난 형 이스마엘을 떠올리고 그를 찾아 들을 헤맸다. (나는 이 대목에서 작가의 상상력에 감사했다.)

 

- 죽음을 경험하고 밤을 지새우고 산을 내려오는 그의 눈앞에 얼굴도 모르는 이복형이 집에서 쫓겨나는 장면이 마치 눈으로 본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버지는 광야 속으로, 낮의 뜨거운 햇빛과 밤의 스산한 추위 속으로 형과 형의 어머니인 하갈을 내보냈다. 쫓겨날 때 그들 손에 들린 것은 물 한 가죽부대와 약간의 빵이 전부였다. 세상에! 죽음으로 내몬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하고 이삭은 중얼거렸다. (중략) 아버지가 그때 형에게 한 일이 모리아산에서 자기가 겪은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자 호흡이 가빠지고 몸이 떨렸다. 쫓아낸 아버지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신의 뜻을 앞세웠을 것이다. ( 「허기와 탐식」 147쪽 )

 

이삭은 눈앞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대면하고 나서야 비로소 삭막한 광야로 내몰렸던 형 이스마엘의 처지를 이해했다. 그러나 이스마엘의 경우는 더욱 긴박하고 처참했을 것이다. 그는 아직 그 상황을 감당할 나이가 아니었다. 목숨을 담보해 줄 그 무엇도 준비되지 않은 광야에서 살아남아야 했으므로 짐승이 되는 수밖엔 없었을 삶이었다. 그런 이스마엘을 찾아간 이삭의 영혼은 이미 만신창이였을 것이다. ‘허기’는 그렇게 찾아왔다. 육신의 허기와 영혼의 허기가 지독한 절망처럼 그를 지배했다. 이스마엘의 야생동물 요리도 그의 허기를 달래 줄 수 없었다.

 

그러나 허기가 가시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많은 음식을 뱃속에 집어넣은 다음에도 그는 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허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당황했지만 먹기를 중단할 수 없었고, 그래서 더 당황했다. (중략) 모든 강물을 삼키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공허한 바다와도 같은 탐욕이 그를 슬프게 했다. ( 「허기와 탐식」 150쪽 )

 

그렇게 먹어대는 그에게 이스마엘은 ‘맛있느냐?‘ ’무슨 맛이냐?‘ 물었지만 그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맛을 느끼지 못한 채 먹었기 때문이다. 그의 허기는 병이 되었다. 그가 장남 에서의 야생동물 고기 요리를 즐긴 것은 유일하게 그것만이 그의 허기를 위로해주었기 때문이다. 형 이스마엘을 찾아가 얻어먹었던, 그러니까 그의 영혼이 위안 삼은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 그러니까 아들이 해준 야생동물 요리를 먹으면서 그가 먹은 것은 오래전에 그의 형이 해준 음식이었다. 음식을 먹은 것이 아니라 그때의 기억을 먹은 것이다. 그때의 혼란과 고뇌, 허기진 질문들을 먹은 것이다. ( 「허기와 탐식」 153쪽 )

 

단편 「허기와 탐식」은 인간의 몸에 자흔처럼 새겨진 생의 역사를 읽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겉모습은 그야말로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하게 만든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인간을 이해하기엔 터무니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참으로 허망하고 아픈 상황이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이면에 어른거리는 진짜 모습의 그림자가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그림자가 그려내는 실루엣을 찬찬히 살펴 가는 것이 한 인간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표면에 드러나 있는 것은 이미 읽힌 사실들이다. 그래서 진짜를 알기 위해서는 굵은 궤적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그려져 있는 아주 작은 흠집을 찾아 읽어야 한다. 그것은 감춰진 신의 뜻을 알아채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 결핍과 균열, 고뇌와 혼란을 겪지 않은 자는 허기를 모른다. 버려진 경험과 죽음 속에 있어 보지 않은 자는 탐식하는 자가 되지 않는다. (중략) 에서는 한 그릇의 음식을 먹기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다 주었지만 야곱은 한 그릇의 음식으로 형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빼앗았다. 그는 음식을 먹지 않고 자신의 탐욕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 「허기와 탐식」 161쪽 )

 

이삭은 아들 에서에게서 그 자신과 그의 형 이스마엘의 결핍을 보았을지 모른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진 ‘당의정糖衣錠’ 속의 본질 같은 것이다. 에서는 어머니 리브가에게서 분리되어 있었다. 리브가는 에서에게서 의도적인 거리를 두고 있었다. 야곱은 리브가의 계략을 수동적으로 수용하였다. 이삭은 어머니 사라에 의해 형과 작은어머니 하갈이 죽음의 광야로 내몰린 것과 아내 리브가에 의해 에서가 모든 것을 박탈당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허기와 탐식’의 늪에서 살아난 자의 여섯 번째 감각이 그걸 읽었을 것이다.

이삭은 에서를 편애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했다. 신은 야곱의 편을 들었다. 그것은 고대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사람들이 승리자 야곱에게 더 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은 독단적으로 편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매력의 실체를 다루는 것은 단편 「야곱의 사다리」이다. 

 

이 소설집의 마지막 편인 「야곱의 사다리」는 창세기 28장 10절에서 22절의 야곱의 꿈 이야기를 바벨탑 이야기와 절묘하게 교직한다. 사다리와 바벨탑은 모두 하늘과 인간의 세계를 잇는 소통의 통로이다. 다른 점은 어떤 의지가 작동하는 통로인가 하는 것이다. 야곱이 꿈에서 본 사다리는 하늘에서부터 드리워져 있다. 그 사다리를 오르내린 것은 천사들이었다. 바벨탑은 땅에서 하늘을 향해 축조되어 인간의 욕망이 하늘을 향해 작동하도록 의도된 것이었다.

끝없는 욕망의 기계가 되어버린 채 스스로 높아지려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주어진 자연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도시를 만들었다. 도시를 만들고 나니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에서 강한 만족이 온다는 것도 알아낸다. 교만해지기 시작한다. 신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이 그들의 영혼을 교란한다.

 

- 탑이 높아진 만큼 가까워져야 할 하늘은 탑의 높이와 상관없이, 꼭 그만큼 멀리 있었다. 그들은 하늘이 달아날 리 없다는 생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은 달아났다. 그들이 올라온 만큼 올라갔다. 그들이 높아진 만큼 높아졌다. 그것이 하늘의 부동성이었다. 그것이 사람들이 움직여서 이룬 높이와는 다른 하늘의 부동의 높이였다. 사람들이 움직여서 높아져도 하늘은 움직이지 않고 높은 채로 있었다. (「야곱의 사다리」 193쪽)

 

자신감과 야망으로 영혼이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사이에 이견이란 있을 수 없게 된다. 아니다. 사실은 욕망에 눈이 멀고 감각이 무뎌져서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교만이 무서운 이유다. 그러나 그 욕망에 의심을 하고 자신감에 균열이 생기게 되면 하나였다고 여겨지던 생각 혹은 의견은 무너지게 된다.

 

- 다른 의견이 생겼으므로 다른 말을 할 이유가 생겼다. 목소리들이 많아졌다. 여러 말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중략) 각자 자기 말을 했다. 각자 자기 말만 했다. 다른 사람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고 각자 자기 말만 마구잡이로 했다. 말은 뒤섞였고 혼잡해졌고 서로는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공사는 중단되었고, 탑에서 땅으로 내려온 사람들은 땅 위로 흩어졌다. (「야곱의 사다리」 194쪽)

 

탑을 쌓아 올리던 사람들은 하늘에 닿고자 하였으나, 하늘의 뜻을 헤아리려 하지는 않았다. 하늘의 뜻은 커녕 옆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뜻조차 묻질 않았다. 탈무드에 따르면 만장일치는 무효라고 한다. 그것은 인간의 교만이기 때문이다. 교만은 영혼을 흐리게 한다. 흐려진 영혼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킨다. 고립된 영혼은 우주의 심연은커녕 자신의 내면조차 들여다보질 못한다. 비극은 그렇게 시작된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흉계를 거부하지 않고 아버지 이삭을 기만하여 형 에서가 마땅히 가져야 했을 것들을 가로챘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불의한 일이며 그 자신도 두려운 일이었다.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집을 떠나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광야를 지나는 길에 들어선 그에게 닥친 공포감은 일종의 정화작용을 하게 된다. 우주의 내면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던 것이다.

 

- 마침내 그는 자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 자기보다 잘 아는 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들은 말은, 그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 순간 그의 영혼이 듣고 싶어 한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혼자였고 외로웠고 두려웠다. (「야곱의 사다리」 203쪽)

 

천사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진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것을 본 야곱은 새로 태어나고 있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우주의 본질과 자신의 내면이 연결되는 느낌을 받으면서,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의지했던 그분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제 야곱은 리브가의 편애 속에 안주했던 나약한 그를 떨쳐버릴 수 있었고, 에서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신은 그에게서 그런 씨앗을 보았던 것이다. 신은 누구를 지명하여 일방적으로 은혜를 내리는 분이 아니다. 감당하고 받을 준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 일어났던 일, 일어나기를 바라는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야곱은 알지 못했다. 일어난 일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모든 일에는 처음 일어나는 순간이 있다는 것, 아직 일어나지 않은 여건이 무르익어 때가 되면 마침내 일어나고야 말 아주 많은 일이 있다는 것, 땅의 의지를 뛰어넘는 하늘의 작용이 있다는 것처럼 바라지 않아도 일어나고 꿈꾸지 않아도 나타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야곱의 사다리」 199쪽)
 

야곱은 신의 사람이 되었다. 창세기에서 신의 사람은 새로운 가능성이 엿보이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하여 세워진 자들이다. 그러니 야곱이 신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애초에 그는 약한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신의 섭리는 강한 사람을 가려 높이지 않기 때문이다. 

야곱이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신의 일방적인 처사가 아니었다. 야곱이 그의 외적 조건을 벗어버리고 나서야 온전히 자신을 우주의 본질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그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는 데도 꿈틀거리고 출렁이는 별들이 보였다. 꿈틀거리고 출렁이며 별들 사이를 떠다니는 자신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꿈틀거리고 출렁이는 별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어떤 형체를 만드는 것을. 마치 엄청나게 큰 손이 하늘의 별들을 쓸어 각각의 자리를 잡아주는 것 같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중략)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이상한 기운이 그를 압도했다.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굳이 말하라고 하면 신성함 같은 것이었다. (중략) 그가 느끼고 있는 신성함은 일종의 숨결 같은 것이었다. (중략) 두려움과 떨림이 그의 온 감각과 신경을 지배했다.  (「야곱의 사다리」 190쪽)

 

신성을 느끼는 감수성이 야곱에게 신의 음성을 듣게 하였다. 신은 그에게 약속한다. 약속은 그것을 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지운다. 이제 신은 야곱에게서 자유롭지 않게 된 것이다.

 

3.

소설집 『사랑이 한 일』을 관통하는 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은 신과 더불어 함께 갈 준비가 된 사람 그러니까 감수성을 가진 사람에게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라는 걸 일관되게 보여준다. 인간의 눈으로 혹은 감각으로 이해할 수 없거나 느끼지 못하는 일이라고 눈밖에 던져둘 수 없는 이유이다. 아, 우리는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

작가 이승우가 보여주는 창세기의 세계는 성서 기사 이면의 흔적을 찾아 들추어 낸다. 발굴 현장에서 나온 유골의 미세한 상처를 좇는 고고학자의 눈으로 성서의 행간을 파고든다. 그래서 말을 잃은 자의 그것을 찾아 돌려주거나 주류에서 비켜서 있는 사람들의 행적을 추적하기도 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의 얽히고 얽힌 실타래를 풀어 다시 엮어낸다. 그 사유의 중심에 흐르는 것은 ‘신의 사랑’이다. 

창세기 곳곳에 함정처럼 도사리고 우리가 헛디디기를 기다리고 있는 게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랑 ‘편애’이다. 결코 의인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은 성서를 읽는 이들에겐 아주 곤혹스러운 것이며 수용하기 힘든 시험 같은 것이다. 그러나 시선을 신에게서 돌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과연 의인의 삶을 사는 사람보다는 그저 그런 사람들이 더 많다. 딱히 악하지도 않으면서 착하다고 하기도 애매한 그러면서 표정은 착한 사람의 미소를 짓고 적당히 못된 짓도 하는. 그런 사람들 중에 간혹 근기根機를 가진 사람을 보게 된다. 신이 주목하는 사람일 것이다. 근기를 가진 사람이 돈오頓悟하게 되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다. 이때 우리는 복잡한 심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나와 같은 사람이었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신의 편애는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가는 통과의례로서의 ‘결정적 순간’ 혹은 ‘카이로스’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에 대한 특혜인 것이다.

이 소설집은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이야기를 풀어 가는 구조가 조금은 낯설다. 동일한 문장의 단락을 반복해 가면서 새로운 정보를 담은 단어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자칫 지루해져 설렁설렁 읽다가는 다시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곤혹스러움을 맛본다. 이런 장치는 아마도 작가의 사유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되새김질 하듯 곱씹어 가면서 본질에 접근하는 지난하지만 확실한 접근법 일 수 있다. 물론 독자에게는 인내심을 요한다. 이 책이 조금 낯설기는 하겠지만 인내심을 발휘할 가치가 있다. 성서를 새롭게 조망하고 싶거나, 신화나 전설의 이면에 남은 흔적이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걸어오는지 엿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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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춘, 2023 - 김명시: 묻힐 뻔한 여성 항일독립영웅

    이춘 지음 | 2023 | 산지니 '여장군' 호칭을 가진 유일한 독립운동가. 이 책을 여는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매우 인상적이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여장군'이라 불린 인물이 있었던가? 김명시(金命時)는 역사책을 즐겨 읽던 내가 한 번도 들...
    Date2024.02.06 Views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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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뤼카 샹셀, 2023 - 지속 불가능한 불평등

    지속 불가능한 불평등 저자 뤼카 샹셀 | 역자 이세진 | 니케북스 | 2023.4.1. 우리는 대체 어떤 세계에 살고 있나? 지금 우리를 둘러싼 삶의 여건으로서 경제적 불평등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은 각종 수치와 통계로도 증명된다. 전 인류를 생존의 시험대에 올...
    Date2024.01.08 Views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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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신기방기한 동네가게 안심협동조합, 2023 - 안심협동조합

    『신기방기한 동네가게 안심협동조합』 2023 | 안심협동조합 엮음 선의가 짙은 촘촘한 망 "대구 안심마을 네트워크"를 다룬 책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코로나 전인 2019년에 출판사로부터 본격적인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아는데, 코로나를 거쳐 수많은 부끄러운 ...
    Date2023.12.04 Views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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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일곱째별의 탈핵 순례, 2023 - 일곱째별

    | 일곱째별의 탈핵 순례 | 일곱째별 지음 | 걷는사람 출판 르포 작가 일곱째별은 2017년에 '조영관 문학창작기금(르포 부문)'을 수상했다. 사실 나는 이 상의 무게를 전혀 모른다. 작가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였다....
    Date2023.11.03 Views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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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제니퍼 다우드나 외 지음, 2018 - 크리스퍼가 온다

    크리스퍼가 온다 : 진화를 지배하는 놀라운 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제니퍼 다우드나, 새뮤얼 스턴버그 지음 김보은 역 (2018, 프시케의 숲) 2018년 11월 28일, 세계 최초로 유전자가 편집된 쌍둥이 아기를 태어나게 했다는 중국 과학자의 충격적인 발표를 ...
    Date2023.10.04 Views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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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김지혜, 2023 - 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2023 | <가족각본>, 창비 가족이 각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누가 짜놓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매우 정교하게 짜인 각본에 따라 가족 구성원들이 역할이 맡고 있다는 생각. 내가 결혼할 때 그런 생각을 잠시 했는데, 딸이 결혼할 때 ...
    Date2023.09.02 Views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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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데이비드 맥레이니, 2023 -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How Minds Change) 저자 | 데이비드 맥레이니 역자 | 이수경 웅진지식하우스 | 2023.3.6. "역시 사람은 안 바뀌지." "사람들은 듣고 싶은 말만 들어." 50여 년을 살면서 터득한 인생의 지혜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남...
    Date2023.08.04 Views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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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구드룬 파우제방, 2016 -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함미라 옮김 보물창고 청소년문학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동네 언니들은 벌써부터 소금 사재기를 했습니다. 정부가 아무리 안전을 외쳐도 식구들 먹거리를 걱정하는 주부들은 마음이 다릅니다. 핵 문제가 당장 내 밥상까지...
    Date2023.07.13 Views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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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정재승, 2023 - 열두 발자국

    정재승 지음 『열두 발자국』 2023, 어크로스 이 책은 너무 유명해서 다시 소개할 필요가 없는 책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뇌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었으면 좋겠다 싶어 소개하기로 한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우...
    Date2023.06.09 Views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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