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범의 『1945년 여름』

posted Mar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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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로 글을 쓰는 조선인 작가 읽기-김석범의 『1945년 여름』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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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시대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으로는 당대를 기록한 역사서를 찾아 읽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그 시대를 그린 문학작품을 통해 이해하는 방법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제한된 정보를 제공한다. 일어난 사실만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을 기록할 수는 없는 일이며, 기록하는 사람의 사관에 따라 심각하게 왜곡된 기록이 어떤 힘에 의해 공식화되는 경우에 역사는 일그러진 거울이 될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문학작품은 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을 통해 밝혔듯이 ‘개연성’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보편성을 획득한다.

최근에 읽은 재일 조선인 작가 김석범의 소설『1945년 여름』을 얘기하려는 데 서설이 길었다. 이 글은 이 소설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아니고, 해방의 시공간 속에 서 있던 주인공 김태조의 시선으로 본 재일조선인의 조선어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은 작가인 김석범의 고뇌, 나아가서 재일 조선인들이 겪는 고충의 일면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이 쓰여진 것은 1970년대 초반의 일이고,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것은 2017년이니, 최근의 독서경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애매한 지점에서 소개하는 셈이 된다.

어쨌든 이왕에 이 책을 얘기하기로 작정했으니 두껍고 질긴 낯가죽으로 따가운 시선쯤은 피해가기로 하겠다. 촉이 남다른 분들은 눈치를 챘을 것이다. 한국에서 번역 출간? 그렇다. 김석범은 일본어로 글을 쓰는 작가다. 거기에다 국적은 ‘조선적’이다. 남(민단)과 북(총련)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했던 시대상황 앞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실체가 사라져버린 왕조시대의 ‘조선’을 유지한 것이었다. 그것은 남북 모두로부터 배척당하는 길이었고, 그래서 제주출신의 그는 고향을 방문하는 것조차 줄곧 거부당해 왔다.

그의 말과 글은 ‘조선어’였으나, 조선어는 또 다른 장벽이었고 피할 수 없는 고뇌의 실체이기도 했다.


김태조의 약한 조선어로는 이 땅에 뿌리 내린 말이 만들어내는 힘찬 공간으로 도저히 비집고 들어갈 수 없었다. (중략) 그 풀이 뿜어내는 열기와 같은 토지의 숨결이 깃든 말로 이야기를 걸어오면 김태조는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의 약한 조선어로 사고하는 빈약한 말의 공간은 곧 무너지고 만다. (『1945년 여름』 김계자 역, 213쪽)

『1945년 여름』의 주인공 김태조가 민족주의의 세례를 받은 것은 고향 제주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충격이 각인되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고향 제주에서 비로소 ‘조선어’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조선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민족이라는 운명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일본에서 조선으로 돌아온 그는 일본어가 통하지 않고 조선어밖에 통하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것이다. 거기에는 민족이라고 하는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한 거대한 실체가 끝이 없는 대지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앞에 가로놓여 있었다. 그것은 김태조를 거절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크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조선어를 거의 모르는 자신의 문제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이는 자신이 빼앗긴 것이 있다고 하는 인식이었다. 그리고 다시 개인뿐만 아니라 민족전체가 빼앗긴 것이 있다고 하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빼앗긴 것은 다시 찾아와야 한다. (28쪽)

김태조에게 민족어로서의 ‘조선어’는 실체로의 ‘민족’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조선어 실력(듣기와 말하기)은  좌절의 벽을 실감하게 한다. 온통 들리는 것이 조선어뿐이어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뜨거움을 맛보기도 하지만, 경성의 전차에서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는 말을 잘 알아들을 수도 없고, 말을 걸어오는 지게꾼에게 방금 일본에서 온 사실을 들키게 하는 어눌한 그의 조선말은 그에게 깊게 패인 자흔 같은 것이다.

일본을 벗어나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본적지에서 징병검사를 받겠다는 것이었던 김태조에게 조선은 오사카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그것은 그의 경험을 넘어서는 세계이어서 낯선 곳의 이질감이 주는 기이한 ‘배제’가 그를 긴장케 한다. 그 저변에 있는 것이 조선어였다.


김태조는 무녀 같은 여자와 함께 경내를 청소할 때 ‘쓰레받기’를 집어달라는 말을 듣고 그것이 쓰레받기라는 것을 못 알아들어 멍하니 있었다. ‘쓰레기를 담는 것’이라고 말해주면 알아들을 수 있는데, 쓰레받기라는 명사는 몰랐다. 동사와 형용사도 많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215쪽)

김태조는 주눅이 들어갔다. 그의 의식은 조선을 지향하고 있었지만, 그로 인해 일인들에게 수모도 겪고 분노하고 저항하기도 했지만, 조선어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수모를 겪게 된다. ‘왜인 같다’는 말이 주는 미묘한 ‘배제’가 그것인데 발원지는 바로 그의 어눌한 조선어였던 것이다. 장티프스에 걸려 입원한 병원의 간호사로부터, 그리고 요양 차 찾아 간 금강산 가는 길목의 절이 있는 마을의 여인들로부터 듣게 된 ‘왜인 같다’는 말은, 기실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김태조의 서툰 조선말에서 비롯된 그들의 선입견이었다. 결국 김태조는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해방을 맞고 조선어가 서툰 재일 조선인들 사이에서 그들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과 돌변한 일본제국 협력자들을 보며 또다시 혼란스러워 한다.

사실, 소설『1945년 여름』의 이야기는 새로울 것이 없다. 재일조선인 청년의 자각과 제국 협력자들의 변신이라는 두 개의 이야기 축 속에서 전광용 선생의 「꺼삐딴리」나, 황석영 선생의「한씨연대기」의 플롯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해방 전후의 오사카 재일조선인들의 실상과 조선 경성의 실상을 핍진하게 그려내어 시대상황을 읽는 재미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소설가 김석범은 일본어로 글을 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한국문학의 영토에 들어오지 못하는 무국적자인 난민으로 취급 받는다. 물론 그의 문학을 디아스포라문학 혹은 망명문학의 관점에서 조망한 비평가들이 없지 않지만, 94세의 노작가는 여전히 아웃사이더로 남아있다.

나는 소설 『1945년 여름』를 읽으면서 작가가 조선어에 대해 얼마나 숙고를 해왔는지 가슴이 저려왔다. 이 소설은 ‘말’의 문제에 관한 에세이 같기도 하다. (물론 일본어 문투는 거슬리는 면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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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는 지배자의 언어, 제국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언어학적으로도 조선어와 비슷한 점이 많지만, 단어가 연쇄, 연속해서 말이 되고, 글이 됨으로써 그 언어의 독특한 힘, 기능을 가지게 되어, 일본어로 '조선' 을 표현할 적에 여러 언어적 갈등과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일본어로 조선을 쓸 수 있는가'. 어려운 문제입니다. 일본 문학계에서는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일본어로 '조선'을 쓰지 못한다면, 나는 소설 쓰기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작년 9월 ‘제1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을 찾은 김석범이 강연에서 밝힌 일본어로 소설을 쓰는 이유이다. 다른 재일 작가들처럼 조선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던 김석범은 꽤 오랫동안 활동을 중단했다가 재개하면서는 일본어로만 글을 쓰게 된다. 그가 일본어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알 수 없지만 소설 속의 김태조의 생각을 통해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곡물뿐만 아니라 말이라고 하는 것도 그 땅에서 태어나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는 감정이 솟구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말은 전답을 경작하는 노동과 같아서 대지에서 길러져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김태조의 마음을 죄어 왔다. (중략) 김태조의 약한 조선어로는 이 땅에 뿌리 내린 말이 만들어 내는 힘찬 공간으로 도저히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213쪽)

일본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작가가 모어와 다른 모국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 그려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실제 이양지 같은 작가는 한국어로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한국에 유학하였으나,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의 언어 즉 모어는 일종의 폭력과 같이 작용한다고 고백하였다. 많은 재일 작가들이 언어문제로 고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작가의 조국은 모국어’라는 말은 또 다른 폭력이 아닐까.

일본문단에는 조선인 작가들의 조선을 테마로 한 작품에 대해 문학의 보편성을 결여한 것으로 보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그에 맞서 김석범은 조선의 보편성을 일본어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으로 일본어로 소설쓰기의 동력을 삼는 것 같다. 그것은 일본문학계의 조선어문학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려는 강한 시도요, 끝나지 않은 투쟁과 실험으로 보인다.

온통 가벼운 것들이 감각적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현란한 인공조명처럼 눈을 어지럽히는 세상에서, 조금은 무거운 무엇인가에 끌리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해방공간의 어수선함 속에 섰던 한 젊은이의 행로를 엿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좋은 창이 되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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