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댁 단풍편지 4 - 밭일과 몸으로 하는 노동

posted May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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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처음으로 통증 주사를 맞았다. 오른손 중지 인대에 건초염이 생겨서 스테로이드제제와 마취제가 섞인 통증 주사를 오른손 손바닥에 맞고 물리치료를 했다. 무거운 장작을 들고 황토방 아궁이에 집어넣는 일을 하고부터 손가락 마디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이 접혀서 퍼지지 않는 게 한 달이 지났다. 왼손으로 잡고 조심스레 펴니 뚝 하는 느낌과 통증을 동반하며 겨우 펴진다. 의사 말씀이 당분간 손을 쓰는 일을 하지 말고 쉬란다. 어쩌나!
 
아침에 해 뜰 때 한 시간, 저녁 해 지기 전에 한 시간, 하루에 두 시간씩 우아하게(?) 마당이나 텃밭에서 일을 하기로 맘먹었다. 너무 힘들면 하기 싫어지고 지치니까 힘들지 않게 일해야지 하면서. 새벽 날이 밝아오면 저절로 일찍 눈이 떠진다. 커튼을 열고 앞마당 새로 심은 잔디를 바라보며 오늘은 여기까지만 돌을 고르고 잡초를 뽑으리라 하고 계획을 세운다. 물 한 컵 또는 요구르트 하나 먹고 챙이 넓은 모자를 둘러쓰고 밭일 전용 몸빼 바지로 갈아입고 마당에 나선다. 신발도 농사용 장화로 갈아 신는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할매 모습 그대로다!) 그런데, 막상 일하다보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난다. 돌아서면 여기저기서 잡초가 보이고 돌멩이가 보이니 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눈앞의 목표물(?)에 매진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도 배가 고픈 줄도 모른다. 정신 차리고 집안에 들어오니 땀이 범벅이다. 얼른 씻고 아침 식사 요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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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마당 텃밭에는 방울토마토 2 개, 상추 2 개, 허브 종류 2 개 정도 심고 나머지는 비워두려고 했다. 그런데, 앞집 할머니가 부추를 무더기로 주시고 가지도 8 개를 주시더니 미덥지 않던지 직접 심어주셨다. 앞집 할머니는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시다며 유모차 자가용에 기대어 이동하신다. 그런데 밭에 앉으시자마자 호미를 잡고 땅을 고르고 가지를 심는 빠른 속도와 정교한 기술로 농사신공을 자랑하신다. 수십 년 세월에 이력이 난 솜씨이다. 할머니의 굵은 손가락 마디와 근육의 크기를 보면 내 손은 아기 손 같이 작고 여리다.

또 동네 분이 당신 밭에 고추 심다 남은 모종이 있다고 고추를 11개 심어주시고 가셨다. 모종을 사러 산림조합에 갔더니 방울토마토 5 개와 수박과 참외 모종이 보여 견물생심이라고 3 개씩 사서 뒤 텃밭에 심었다. 이래저래 뒤 텃밭에는 애초에 계획하지 않은 모종이 여러 개가 자리 잡게 되었다. 게다가 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올라온 머위와 들깨, 야생 갓이 한창이며, 그 옆에 한삼 넝쿨, 엉겅퀴 등 잡초가 무성하게 올라오고 있다. 이 자연의 무서운 생명력 앞에 조금이나마 저항해보려고 낫과 호미를 서투르게 휘두르며 장시간 노동을 한 대가가 건초염 증상의 발현이다.
 
볼 일이 있어 서울로 올라왔다. 지금부터 정읍에 가기까지 일주일 동안 농사 노동을 피해서 잠시 쉬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눈을 감으면 자꾸 텃밭의 모종들이 떠오른다. 그동안 물도 못 주는데 비라도 와야 할 텐데 하면서 걱정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사는 곳이 바뀌니 몸의 근육의 쓰임과 움직임도 바뀐다. 마음 가는 곳도 바뀌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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