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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소수자 인권운동 속에서 만난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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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그 해는 차별금지법 입법 운동이 시작되었고, 개신교 주류 교권 세력과 정치권이 결집해 이를 막아섰었다. 얼마 전까지 장외투쟁이다 뭐다 하면서 난투극을 벌이던 이 당 저 당의 국회의원들이 무슨 '의회선교연합'이었나 하는 이름 아래 모여 언제 싸웠냐는 듯 악수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참기가 몹시도 힘든 지경에 이르렀었다.

 

기독교가 국교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동성애는 하나님 보시기에 죄악'이라는 그들의 논리가 법무부와 국회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상황....... 끝내 법무부는 외국인과 성수수자를 뺀 누더기 법안을 상정했고, 총선을 앞두고 아무도 교회의 표 떨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정치인들의 외면 속에서 2008년 초, 처음 시도되었던 차별금지법은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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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힘도 세력도 다 가진 그 압도적인 흐름을 완전히 막아서진 못할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개신교의 입장이 반대나 혐오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당시 개신교계 신학연구기관의 상임연구원이었던 나는 무작정 말이 통할 것 같은 단체를 찾아가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애 혐오반대를 위해 연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주로 평소 인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연대 등을 내걸고 활동하던 개신교 에큐메니칼 단체들이었는데, 대부분 돌아온 답변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거절이었다. '인권이 말살되는 것은 반대하나, 동성애는 죄', '동성애 등을 내세우면 운동이 곤란해서' 등이 대부분이었다. 본인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하는데, 단체 내 리더그룹 목사가 결사반대하는 통에 올 수 없게 되었다고 너무 미안하다며 울상 짓는 활동가도 있었다.

 

아무튼 그런 과정을 통해 어렵사리 모여든 이들과 함께 세미나를 열고, 개신교 혐오 세력과 국회, 방송 토론 프로그램 등에서 만나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국 최초의 개신교성소수자인권운동그룹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연대'가 시작했던 그때 즈음부터 '개신교는 동성애 반대'에서 '동성애 이슈 앞에서 갈라진 개신교'로 언론 카피가 달라지기 시작했던 건 그래도 작은 성과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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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형성된 모임 속에서 기독교 신앙 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엔 사회적 의제에 무척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청소년들이 있음에 놀랐더랬다. 이어서 비범함과 함께 여느 청소년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동시에 느낄 때마다 또 한 번 놀랐었던 것 같다. 꿈꾸고 설레는 마음 가득한 그때 만의 모습 말이다. 어떤 이는 가수가 되고 싶다 했고, 또 어떤 청소년은 죽도록 연애를 해보고 싶다고도 했었다.

 

그 이들 중 여러 명은 교회를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배척당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지옥에나 갈 놈'이라는 말을 담임 목사에게 들은 후 다니던 교회를 나오게 되었음을 무슨 토크 보따리 풀어놓듯 웃으며 말하는 청소년을 보며 정말이지 뭐라 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그렇게 존재를 부정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앙생활을 통해 획득된 신앙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여전히 신 앞에서 자신은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신앙을 쥐고 있었고, 이 때문에 스스로 존재를 부정하는 아픔에 잠겨 있었다.

 

다른 성정체성이나 성적지향에 대해 비하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가령 남성 가부장적인 느낌 가득했던 남성 동성애자 청소년은 무슨 년, 기집애 같은....... 등의 말들을 무한 반복하면서도 그게 무슨 잘못인지 느끼지 못했다. 그 밖에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SNS에 남기고는 수 일간 연락이 두절되는 이도 있었고, 다리 아프게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에서 모인다고 회의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투덜거리는 이도 가끔 기억난다. 이젠 잠수 타지 않고 있을까? 이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있는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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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글을 시작하며 나는 어떤 주제 속에서 써내려 가겠다는 생각을 다잡지 못했다. 그냥 그때 만났던 이들을 생각의 흐름대로 드러내고 싶었다. 앞서 언급했던 만남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화가 나기도 했고, 때론 당혹스러웠으며, 때로 허탈감이 밀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더 많은 경우 그 이들은 내게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옆자리를 내주었고, 기꺼이 손을 내밀어 맞아 주었다. 나는 정형화되지 않은 이들이 가진 힘과 매력을 발견하기도 했고, 반대로 내 안의 강고한 틀과 규격을 느끼고 반성하게 되기도 했다. 그들은 내게 소중한 벗이었고 또 스승이었다.

 

그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목회자인 성인 이성애 남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연령의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더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며 만나 대화할 수 있을지를 조금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건 남자 청소년 성/평등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참여인들과의 소통에 있어 무척 소중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 아마 그 시기 그 이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욱 재미없고 딱딱하기만 한 한국 나이 50의 아저씨 목사였을 것이다.

 

또 청소년과 더불어 뭔가 해 나감에 대한 고민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건 뭐 비록 아직도 명확한 답을 찾진 못했지만 말이다. 적어도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무언가 해 나갈 수 있다면 작지만 소중한 결실들과 만나 갈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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