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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남자청소년성교육에 관심가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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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때부터 오래도록 다녔던 교회는 자칭 '장자'를 내세우는 교단에 속해 있었다. 장자교단이라니, 이 얼마나 남성가부장 중심적인 단어란 말인가? 아무튼 한 동네에서 같은 교회를 다니다가 같은 학교도 가게 되면서부터 교회친구들은 거의 매일 보는 사이들이 되었다. 이쯤 되면 가끔 투닥거리는 일도 있었지만, 친해지지 않기가 쉽지 않은 상황! 학교에서 같이 돌아온 후, 교회에서 놀다가 친구 집에서 밥을 먹는 일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과였다.

 

그렇게 자라 대학생도 되고, 직장인도 되었을 무렵, 친구들 중 한 명의 어머니가 신학교에 입학하셨다. 그에 따라 십 수년을 어머니, 혹은 집사님이었던 그분은 교회의 전도사님이 되셨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자신의 의지도, 또 교회의 요청도 있었던 것 같다. 본인이 강의실에서 제일 나이가 많다는 말씀과 함께 과목마다 과제물이 너무 많은데 자신은 집안일과 교회일로 통 집중을 할 수 없다는 등의 이야길 듣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그중 몇 개의 과제를 대신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아들의 친구가 기독교교육학과에 재학 중임을 알고 계셨던 어머님의 큰 그림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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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친구의 어머니는 4남매를 건사하는 동시에 교회에서 주어진 업무까지 감당해야 했던 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학업을 마무리하셨다. 그런데 양성과정을 다 마무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여전히 전도사였다. 궁금함은 해결하고 가야 잠을 이룰 수 있었던 당시의 나는 여쭙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 어머니는 언제 목사가 되시죠?

 

아이고! 여자가 무슨 목사....... 여자는 목사가 될 수 없어.

 

???

 

너무 당연한 것을 물어본다는 느낌으로 하시는 말씀에 나는 의아함과 더 큰 궁금함이 일었다. 여자는 목사가 될 수 없다니!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 사실이 그랬다. 교단법과 관련신문자료 등을 찾아본 현실은 내가 다니던 교회가 속한 교단을 포함해 한국의 주요 개신교단 상당수가 성서와 신앙을 명분으로 한 '여성안수거부'였다.

 

그 과정을 통해 당시까지의 교회생활 속에서 매우 일상적이었던 것들이 점점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예컨대 장로와 목사가 모두 중장년 남성들이라는 점, 교회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모두 직위를 가진 남성들을 보좌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 매주 예배 후 나누는 점심준비는 모두 여성들이 담당하고 있다는 점 등 적지 않은 교회생활 속에서 한 번도 문제라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들에 새삼 놀라기 시작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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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젠더, 성평등과 같은 주제들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어진 신학수업을 통해 성서의 편저와 본문에 대한 해석에 있어 남성중심적 이데올로기가 매우 강력하게 작용했음을 알게 되었던 나는 전통적인 신앙관 역시 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교단 총회장의 '기저귀 차는 여성은 목사안수를 받을 수 없다'는 주장 등에 깊은 분노와 절망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사랑했던 교회의 실상은 성별불평등과 지배적 남성성을 강화하는 존재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속에서 누리고 있었던 것도 무척 많았음에 놀라움과 반성이 일었다. 변화를 위해 뭔가 작은 것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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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청년회에서 관련 문제들을 끊임없이 제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와 담당교역자로부터 '비뚤어진 신앙'을 돌이키라는 권고를 반복해서 듣는 교인이 되었다. 남성 중심의 학생회 조직에 대한 문제제기로 인해 소위 '운동권' 선배에게 끌려가 욕을 먹고 멱살을 잡히는 일도 있었다. 논쟁보다 더 근본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싶긴 했지만, 역량도 지혜도, 무엇보다 내 안의 가부장성에 대한 성찰도 부족했던 나는 그저 좌충우돌할 뿐, 대책을 가지지 못했다.

 

그 같은 시간이 지나던 중, 교역자로 일했던 두 교회에서 청소년부를 담당하면서 나는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성인이 되기 전, 아직 사회적 각본에 의해 구조화된 성별역할에 익숙해지기 전에 유의미한 논의를 함께 할 수 있다면 당사자는 물론, 그가 속한 교회와 사회 곳곳의 변화가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남자청소년들의 익숙한 환경 중 많은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자네!'라는 말로 대표되는 여러 언어들, 위계적인 선후배 구조 등에 대한 내적 변화를 함께 모색해 가는 과정에서 반감과 저항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주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적어도 공식적인 자리, 공적 공간에서 위와 같은 발언이나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에 공동체적 동의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한국사회는 늘 무언가가 급격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땅의 가부장적 문화는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변화도 무척 더디다. 이는 다른 사회적 의제에 대한 보수 혹은 진보 등의 사상과 무관하게 익숙하게 누리고 있었던 젠더계급의 지위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내려놓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기인할 것이다. 이점에 있어 교회는 가장 선두에 있다 하겠다. 이십 대 초반 목도했던 한국교회의 상황은 슬프게도 여전히 유효하며, 이제는 성소수자 혐오까지 장착한 채 더욱 강력하게 사회를 뒤로 당기려 한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하나'라는 것은 세계 기독교 각 교단 모두의 공통된 신앙고백이다. 한국교회가 많은 부분에서 남성가부장적 전근대성의 무지몽매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면 그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일일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신앙인, 그리고 신앙인의 모임인 교회는 하나이니 말이다. 미력이나마 목사인 내가 남자청소년의 성인지 감수성, 성/평등 교육 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성평등한 교회와 세상을 당겨 맞이하기 위해 뭔가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해보려는 것에 있다. 비록 아직은 아는 것도, 경험도 거의 없지만, 내 하나(느)님은 이런 존재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응원하실 것이니, 오늘도 소중한 걸음을 걸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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