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낙영 72

강물이 사막을 건너는 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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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람이 불 때마다 뿌리를 잃은 관목이 또르르르 굴러다녔다. 초원에서 살아온 떠돌이 수행자 아베스라에게 황야의 풍경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모래와 모래로 돌아가는 중인 돌덩이들이 거칠게 이어진 땅을 반나절이나 걸어왔다. 그러다 거친 들판은 어느덧 굵은 모래로, 조금 더 지나자 아주 고운 모래로 변해 있었다. 햇살은 모래와 달리 아주 거칠게 내리꽂히고 있었다. 그 생경한 풍경 앞에서 아베스라는 고통을 느꼈다. 무엇이든 삶의 기운을 감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기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곳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기 때문이다. 간간이 불어주는 바람이 아니었다면 발길을 돌렸을지도 모른다. 바람은 시였고, 노래였고, 독경이었다. 때로는 커다란 목소리로 호들갑스럽게 왕왕거렸고, 어떤 때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어딘지 모르는 곳의 이야기를 가져다 풀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아베스라가 찾아가는 곳에 대한 그 어떤 실마리도 주지 않았다.

그는 이 사막 어디엔가 있다는 은수자(隱修者)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사막이 시작되는 마을의 촌부가 알려준 대로 난발이라고 불린다는 오아시스를 찾아가 보았으나, 허물어진 움막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움막에서 밤을 보냈다. 허물어진 움막 천정으로 보이는 별을 보고 문득 아나톨리아에서 만났던 수행자에게서 배운 어설픈 점성술로 점을 쳤다. 꼭 믿는 바는 아니었지만 달리 뾰족한 수도 없었으므로 그렇게 행선지를 정하고 나선 길이었다. 그나마 거기서 물주머니를 채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난발의 오아시스를 뒤로하고 서너 시간쯤 걸었을 때, 한바탕 모래폭풍이 몰려왔다. 거대한 황색 바람이 몰려오자, 그는 서둘러 몸이 들어갈 만큼 웅덩이를 파내고 엎드린 자세로 케피예(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남자들이 머리에 두르는 두건)를 펼쳐 덮어 썼다. 거센 바람과 모래 부딪는 소리가 혹 신의 신음소리는 아닐까 여겨지기도 했다. 인간의 시간과 그의 시간은 다를 것이므로,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저 거대한 모래폭풍은 아득한 시공간 너머에서 다가온 환영과 환청일 거라고 뜬금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황색 군단이 멀어져 갔다. 구덩이를 헤치고 일어나 케피예의 모래를 털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그의 발자국이 찍혀있었을 모래언덕은 앉은 자리와 방향과 모습을 바꾸어 낯선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 아무래도 밤을 도와 길을 찾아야 하나?

아베스라의 눈길이 미쳐 모래 먼지를 털어내지 못해 맨눈으로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태양에게로 향해 있었다. 찬란해야 할 태양의 퇴색한 모습은 거대한 이야기의 실마리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 챠크라를 몰고 초원에 들어왔던 사람들은 이전엔 존재하지 않았던 권력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갖지 않은 속성을 보여주었다. 초원엔 피바람이 불었다. 챠크라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상하로 서열이 지어졌으며, 지배와 굴종이라는 아주 낯선 방정식의 변수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호사하던 그들도 결국은 죽음을 맞고 사라져 갔다. 알 수 없는 병이 초원을 휩쓸고 지나가자 챠크라를 가진 계급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나 나란히 죽음의 권위 앞에서 스러져 갔다.

- 불변의 본래면목은 어디에 있는가?

챠크라를 경험하고 그 폭력성에 당황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절대자를 찾기 시작했고 세상의 시원에 대해 고민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 망가진 것에 대한 반작용일 것이다.

아베스라는 바랑을 뒤져 난으로 요기를 했다. 해가 저물어 가면서 하늘은 염색장의 마당에 걸어놓은 붉은 천마냥 고왔다.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할 시간인 것이다. 밤을 도와 길을 떠나는 것에 두려움은 없었다. 어차피 익숙하지 않은 곳일 뿐만 아니라, 표지로 삼을 만한 지형지물도 없는 곳이어서 어둠은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사막의 열기를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별을 보며 방향을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소금을 운반한다는 대상을 만난다면 행운일 것이다.

 

 

2

아베스라는 낮엔 사구의 그늘에 구덩이를 파고 쉬었고, 해거름부터 아침 해가 예열한 뒤 뜨거운 공기를 내뿜을 무렵까지 걷고 걸었다. 어둠 속에서 별을 길잡이 삼아 걷는다는 것은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것 같았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의 강을 타고 시원을 향해 다가가는 느낌은 새벽을 향해 가는 시간에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따금 모래 흐르는 소리가 피안의 경계를 알려주는 것 같다.

-아, 영원을 갈망하는 불완전한 존재여!

그렇게 며칠을 걸었다.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사막의 은수자(隱修者)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발걸음이 급해졌다. 그러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어둠보다 더 짙은 그림자가 거대한 벽처럼 드러났다. 그는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 영롱하게 빛나던 별마저 잔뜩 찌푸린 날씨 뒤로 숨어버려, 아주 약하게 드러나는 실루엣에 의지해 걷고 있었다. 그런데 눈을 들어 앞을 보니 회색 배경보다 농도가 조금 짙은 덩어리가 길게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아베스라는 두려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암괴의 정체를 알 수 없으니 함부로 다가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아무래도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두 팔로 감싸 안은 무릎 위에 머리를 얹고 앉아 어둠을 응시했다. 그가 눈을 통해 보는 것은 어둠이었지만, 그의 망막에 맺힌 것은 어둠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는데 두려움은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아, 비루하구나, 아베스라여! 진리를 찾아 헤매고 있건만, 촉상(觸像) 앞에서는 두려움에 오줌을 지리고 있지 않느냐.

아베스라는 무지와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영적 허약함을 자책하다 잠이 들었다. 무리한 만행에 심신이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원을 떠나 처음 캅카즈 고원에서 만난 늙은 마기(조로아스터교의 사제)는 어둠을 조심하라고 말했다. 어둠이야말로 모든 악의 근원이며,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말을 해야 하며, 좋은 행동으로 실현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는 것이 악의 발호를 막는 길이라 힘주어 말했다. 그는 아베스라가 떠나올 때 그의 바랑 가득 난을 채워 주었다.

-수행자여, 나는 네가 돌아올 때 챠크라가 아니라 화평의 불을 가져오길 바라노라. 아주라 마즈다의 거룩한 이름으로 그대의 안녕을 비노니!

아베스라가 잠든 자신에게 놀라 눈을 떴을 때, 태양은 낮게 깔린 박무 위로 겨우 걸쳐져 있었다. 아베스라는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간밤에 그를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던 암괴의 정체를 찾아야 했다. 그는 사막이 끝나가는 지점에 있었고, 그곳에서 협곡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가 암괴라고 여긴 것은 그러니까 협곡의 한쪽 절벽이었던 셈이었다.

-혹시 이곳이 엄격한 규율로 유명하다는 수도공동체가 있다는 그곳인가?

아베스라는 갑자기 가슴이 설레었다.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행운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언젠가 한 번쯤 찾아가야 할 곳으로 마음에 새겨두었던 그곳을 뜻밖의 상황에서 만날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그는 서둘러 바랑을 짊어지고 계곡 속으로 달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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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낙영(글쓴이,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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