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말기 돌봄과 완화의료

posted Apr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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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 고경심
글쓴이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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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의 한 아파트에 방문 진료를 나갔을 때 본 55세 여자 환자는 5년 전 뇌출혈로 전신마비가 와서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였고 호흡을 위해 기관지 삽관을 한 상태였고 음식을 삼키지 못하여서 위루관으로 위에다 직접 관을 통해 유동식을 주입하는 상태였다. 의사소통도 불가능하고 자기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고 눈꺼풀만 깜빡거릴 수 있는 상태였다. 환자의 보호자는 남편으로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5년 전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하루 24시간을 떠나지 못하고 옆에서 돌보고 있었다. 남편은 그래도 아내가 자기가 뭐라고 얘기하면 눈을 깜빡거리면서 대답을 한다고 하며, 원래 도도한 '여왕님'이었다고 한다. 남편은 허리가 아파서 허리에 복대를 한 상태였고 욕창이 생기지 않게 2시간마다 체위변경을 해야 하고 기관지관 흡입(석션)을 해야 해서 잠도 수 시간 이어서 잘 수 없다고 한다. 그동안 요양보호사, 가사도우미 등 도움을 받아 봤지만 믿을만하지 못해 결국 자신이 도맡아 돌보고 있다고 한다.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남편이 놀랍기도 하지만 그러다가 본인의 건강도 챙기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렇듯 돌봄 가족의 돌봄 노동이 극한의 한계까지 가는 것을 보는 듯했다.

 

"이제 병원에서 치료할 방법이 없어요. 퇴원하세요."

만약 병원의 의사가 위와 같이 말기 암 환자에게 말을 했다면 환자나 가족의 느낌은 어떨까?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섭섭하고 막막할 것이다. 그래서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저기서 좋다는 음식이나 비법, 또는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을 구하러 돌아다니다가 시간만 허비하고 몸 상태는 더욱 나빠지면서 경제적으로도 크게 손실을 보는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새로운 의료의 시작점이다. 완치나 암의 정복이 의료의 목적이 아니고 고통스럽지 않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잘 살아내도록 도와주는 본격적인 의료의 시작이라는 말이다. 통증 관리, 피로에 대한 대처, 예방접종, 신체활동 권고 및 교육, 만성질환 관리, 식사 및 영양 관리 등 의료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래서 '완화의료'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과 관련하여 문제를 가진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 향상에 목적을 둔 접근을 하며, 통증이나 신체, 심리적, 사회적, 영적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평가와 치료를 하여 고통을 예방하고 완화시키는 의료 분야이다.

 

특히 생애 말기 환자에 대한 돌봄 의료가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서 매우 부족하다. 최근 TV에서도 가족의 마지막 임종을 함께 하고 싶어서 호스피스 병동을 찾아 헤매지만 대기가 걸려 있어 막상 가족과 대면하지 못하고 외로이 임종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방영한 바 있다. 생애 말기 환자에 대한 돌봄의 목표는 환자의 가치관과 선호를 바탕으로 의료적 중재를 시행하거나 중단하는 것을 결정한다. 그리고 남아있는 생애 말기 동안 환자와 가족이 마지막 가는 길을 준비하고 받아들이면서 아름다운 작별의 시간,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용서해 달라, 즐거웠다" 등등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이 살던 집과 동네에서 생애 말기를 보내고 임종을 할 수 있게 하려면 가족에게만 돌봄의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우리나라 인구 2명 중 1명이 사실상 '돌봄 당사자'라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 돌봄 당사자 가족은 막상 자신의 일도 못하고 돌봄노동으로 소진되고 쓰러지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생애 말기에 가족이 돌보지 못하여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시설에 보내지고,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는 가족 면회조차 못하고 고립된 상태에서 죽음에 이르는 현대판 '고려장'을 벗어나려면 지역사회 돌봄체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재택돌봄, 주치의가 있는 동네의원, 데이케어 센터, 간호센터, 요양시설과 요양병원의 선택과 순환적 돌봄이 가능한 의료체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국가와 사회가 '돌봄 투자'를 해야 하며 이를 위해 고령사회의 노인 돌봄의 사회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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