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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달리기와 한 번의 음악회

사이렌이 울리고 재난 문자가 요란하여 새벽에 깨버린 탓에 일찌감치 나선 출근길에 왠지 봄철 치정살인극이 떠올라 마스카니가 작곡한 오페라 까발레리아 루스띠까나를 하루 종일 오며 가며 들었다.

 

봄이 가고 여름 오니 아쉽다고 해야 하나 좋다고 해야 하나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가 죽더라도 치정살인이 전쟁보단 낫다 싶어 실없는 사람처럼 실실거린 오월의 마지막 날이 간다.

 

두 번의 마라톤 대회를 일주일 간격을 두고 나갔다. 두 번 모두 같이 달린 친구가 있어 가능한 사건이다. 첫 번째는 여의도에서 열린 소아암 환우 돕기 마라톤이다. 참가비를 모두 소아암 환자를 위해 기부하는 착한 행사라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뿐 아니라 한강변 달리기라 고저차가 많지 않아 하프를 뛰어도 크게 무리가 없을 줄 알았다.

 

두 번째 달리기는 수도권 제2순환도로의 일부 구간이 완공되어 개통 전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이다. 양평IC에서 서종면 북한강 인근을 왕복하는 코스인데 자동차를 위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라 러너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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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장을 향해 걸어가는 마라토너들

 

 

고속도로라 고저차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달리고 난 후 코스의 경사 그래프를 보고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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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하프를 달렸다. 그런데 기록은 딴 판이다. 한강변을 달린 소아암 하프는 2시간 15분, 양평 고속도로 마라톤은 1시간 50분. 결국 관건은 코스가 아니라 그날의 컨디션이었다.

 

소아암 마라톤이 있었던 날 저녁에 친구가 연주하는 현악 앙상블 음악회 초대를 받았다. 최종병기 활이 구사했던 적확함이 무대 위에서 펼쳐졌다. 무기로서의 활이 타깃을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악기로서의 활도 음을 발생시켜 정확히 원하는 방향으로 날려 보낸다. 보우잉(Bowing)의 의미가 저절로 체득되는 밤이다. 활에서 출발한 음이 과녁으로 설정한 청각세포에 정확히 와서 꽂힌다. 여운과 각을 맞춘 보우잉 동작은 마치 활시위와 같이 우아하게 마무리한다. 무대 위 음악가가 전사로 보이기는 처음이다.

 

버스 타고 음악회 가는 중에 초치기로 오늘 레파투아를 훑었다. 연주곡의 작곡자는 아렌스키다. 라흐마니노프의 선생이었단다. 그 제자의 그 스승이 맞나 보다. 맵시 있는 첼로와 합을 맞춘 현악기 소리에 청중들은 단숨에 20세기 초로 시공을 초월한다.

 

5월의 봄이 아름다웠다가 마지막 날 허탈하게 지나간다.

시국이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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