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하여

posted Aug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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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대하여

 

 

이번 여름은 예상했지만 갑작스레 다가온 일로 분주하였다.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이전과 다른 현상이 나타나니 이는 실로 당혹스럽다. 다만 ‘나이듦’이 ‘늙어감’으로 전환되는 시점이 이미 도달하였고 이제 그 영향과 대책을 어떻게 세워야 할 것인지에 대한 대답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경계성 인지장애 수준인지 치매 초기 단계 상황인지 판단이 필요하였다. 하여 옆 도시의 명망이 있는 신경과 병원을 수배하고, 일주일 간격으로 전문의와 상담, MRI를 비롯한 각종 의료장비에 의존한 촬영과 진단, 그리고 임상심리사의 검사가 진행되었다. 병원은 나이듦에 의한 환자로 넘쳐났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할 것이며 우리 또한 모두 이 대열에서 예외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드는 것은 시간의 법칙에 따라 어김없이 진행되는 현상이다. 파리에 잠시 머물 당시 늙어감에 대해 생각할 시점이 우연히 있었고 이번 여름 몇 주간 고향을 드나들며 그때 적었던 글이 생각나 다시 되새기며 옮겨 온다.

 

세느강 강변 에펠탑 옆에는 케 브헝리 박물관이 있다. 루브르와 오르세 만큼의 명성을 지니지는 못하여 관광객도 아는 사람만 찾는 곳이다. 나는 이곳을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이 찾곤 하였다. 주말엔 어김없이 이곳 박물관 야외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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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 브헝리(quai branly) 박물관 카페에 앉아 에펠탑을 보며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일상

 

 

참새방앗간 카페에 오늘은 두 시쯤 왔다. 주말 오후 두 시는 점심 식사로 카페가 붐빌 시간이다. 카페 안이나 야외 테라스 좌석은 모두 사람들로 와글와글하다. 마침 카페 앞 정원에 박물관이 마련해둔 파라솔과 허리가 깊이 들어가는 의자들이 놓여 있다. 커피를 못 시키는 단점이 있으나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온종일 앉아 빈둥거릴 수 있으니 꿩 대신 닭이 아니라 눈먼 거북이 바다에서 나무를 만난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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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대비해 박물관이 야외 쉼터에 마련한 그늘막과 의자들

 

 

허리를 깊이 넣고 앉아 여름날 오후의 여유를 즐기다 글을 몇 자 적게 되었다. 지금 시각이 일곱 시가 지났으니 다섯 시간 해시계 시침 돌아가듯 파라솔이 만드는 그늘을 찾아 의자 옮겨 놓는 것 말고는 한 일이 별로 없다. 블루투스 이어폰 배터리는 소임을 다하고 휴식에 들어갔고 들고 온 책도 시들하다. 졸다 깨기를 반복하다 깨달음이 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런 심보로 깨달음이 온들 하는 생각이 스친다. 

이렇듯 한가한 비몽사몽의 순간에 앞자리가 어수선하다. 실눈을 뜨고 살피니 휠체어 다섯에 보행 보조기를 밀고 온 어르신이 여덟, 그리고 이들을 보조하는 조력자가 셋이나 되는 대규모 행렬이다. 땡볕에 나들이 나오셨다 쉬어갈 공간을 찾아 그늘로 온 것이다. 조력자들은 모두 프로다. 일단 어르신들의 모든 요구 사항을 천천히 그리고 만족할 때까지 듣고 실행한다. 그늘에 차례로 자리를 잡고 앉게 한 다음 준비해온 차가운 음료로 우선 목을 축이게 한다. 그리고 마들렌을 돌린다. 프랑스에 와서야 알게 된 마들렌은 조개 모양의 케이크다. 간식을 먹는 사이 온천수 스프레이를 얼굴과 팔 그리고 다리와 같은 햇볕에 노출된 부위에 뿌리며 간간이 말을 붙인다. 그리고 마지막 얼음물을 추가로 따라주며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한여름 도심 나들이 중간에 삼십 분 그늘에서의 쉼이 끝났다.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질문에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 끝에 든 생각이 나도 언젠가 보행 보조기나 휠체어 신세를 지지 않고는 바깥 나들이하기 어려운 시점이 올 것인데 우리는 저러한 제도를 준비하고 있나? 제도 이전에 나는 늙어감이라는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삶을 대할 것인가? 아니 나의 마음은 이런 질문에 대면할 준비를 하고는 있나하는 것으로 생각의 끝이 맺어졌다.

 

팔월 사나운 햇살이 물러가며 시원한 바람이 살랑이기 시작했는데 마음은 쓸쓸하다. 오가던 사람들이 잦아들고 나도 일어설 시간이다. 새끼 오리를 보살피던 어미 사진이 있어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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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가 마련된 박물관 안 정원에 어미 오리가 새끼들과 나들이 나와 일광욕을 하고 있다.

 

 

사족 : 이 글은 2018년 8월 Musée du quai Branly(케 브헝리 박물관)에서 토요일 오후 한나절을 보내며 관찰한 내용을 기록한 것을 바탕으로 가다듬었다. 언젠가 인연이 닿는다면 ‘다시 늙어감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후속편을 쓸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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