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행진에 붙여

posted Jul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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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행진에 붙여 

 

 

조헌정 목사님이 길잡이가 되어 고성에서 강화까지 2021년 7월 27일부터 19일간 이어질 DMZ 평화행진을 접하고 파리에서 썼던 글이 떠올랐다. 역사를 산다는 건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것이라 외쳤던 문익환 목사님 시구가 생각나기도 하였다. 이 행사의 주최자는 ‘벽을 문으로’ 2021 평화통일시민회의 준비위원회이다. 

 

2017년 여름 가을을 거치며 남북은 험악한 언사를 주고받고 있었고, 온 세계의 신문과 방송은 북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도배하다시피 하던 때에 나는 낯선 도시 파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OECD에 파견을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집도 구하지 못하고 아이들은 학교도 정하지 못하던 그야말로 사방이 정리되지 않아 어수선하던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너무 많은 주변인으로부터 걱정과 비난의 말을 들어 심경이 복잡하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북한의 호전적 태도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평화협정의 중요성을 설명하곤 했다. 그러던 차에 특사가 북한을 방문하여 전격적으로 427 남북정상회담을 발표하였다. 하룻밤 사이에 변화한 정세에 설레어 나는 밤잠을 설쳤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은 이럴 때를 두고 쓰라고 있는 말인 것 같다.

 

파견지 OECD 경내에는 잘 관리된 꽤 넓은 정원이 있다. 하루에 한두 번 나가 산책을 즐기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곳이다. 입자가 굵어 물이 잘 빠지는 토양으로 이루어진 산책길에는 고운 이끼가 덮고 있다. 이런 길을 걸으며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2017년 가을엔 이 좋은 길을 착잡한 심정으로 거닐었다. 그 시절 적은 몇 자 다시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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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경내의 산책길

 

 

이끼가 표면에 내려앉은 길을 산책하는 일은 가슴 졸이는 일이다.

강대강(强對强)으로 치닫는 정세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졸다 못해 오그라들 지경이다.

그들을 여기 정원으로 초대하여 이 길을 걷게 하고 싶다.

비와 바람, 햇빛과 그늘을 촘촘히 수놓아 그 삯으로 받아낸 푸르름의 길.

이 융단 같은 길을 밟고 지나가는 그 걸음걸음..

즈려밟는 발자국 밑의 포근함으로 그들의 마음을 데우고 싶다.

매일 걷는 길에서 누리는 이 가슴 뛰는 호사가 나는 너무 조심스럽다.

다산 선생께서 겨울 시내를 건너듯 신중하고 사방에서 지켜보는 듯 두려워하며 세상살이 권했다는 말씀이 새삼 떠오르는 시절이다.

이런 길을 걷게 되는 행운을 누린다면 이런 구절 하나쯤 읊어도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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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가 덮인 산책길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 W.B. Yeats –

내 당신가는 길에 나의 꿈을 펼쳐놓았으니, 부디 사뿐히 즈려밟고 가옵소서.

 

새소리가 피처링한 판문점 도보 다리 산책을 한반도 모든 시민에게 선물하고 싶다. 몽블랑과 돌로미테 트레킹으로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 생겼다. 남북정상이 걸었던 도보 다리 산책을 확장하여 “DMZ 평화 올레”로 만들 수 있으리라. 시민들이 조직한 DMZ 평화행진이 초석이 되어 해가 거듭할수록 행진에 참여하는 시민이 불어나 일년내내 평화의 발검음이 이어지리라. 남북의 평화, 한반도의 평화는 내 손으로 우리의 힘으로 시민의 참여로 이루어지리라.

 

사족 1 : 이 글은 2018년 3월 6일 대북 특사단이 방북하여 4월 27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합의하고 돌아온 날 설레는 가슴을 쓰다듬으며 쓴 것이다. 오늘 DMZ 평화행진을 접하고 그때 썼던 글을 가져와 다듬었다. 427 남북정상회담의 표어는 “평화, 새로운 시작”이었다. 이제 시민이 나서 그 평화를 이어 새로운 시대의 역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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