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미티 트레킹 2부 - 첫 이틀간 기록

posted May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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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미티 트레킹 2부 - 첫 이틀간 기록
 


#Dolomiti 트레킹_Day +1 (2018년 8월 12일, 일요일)
Now, the curtain is open(2018년 8월 12일)


Dolomiti는 나라마다 발음이 다르다. 돌로미티, 돌로마이티, 돌로마이트 등 각국의 언어가 가진 취향대로 발음이 제 각각이나 어원은 여기를 탐사했던 프랑스 지질학자 이름에서 지명이 유래했다 한다. 1차 대전의 격전지였고 전쟁 이전에는 오스트리아 영토였으나 이후 이탈리아로 귀속되었다. 이런 역사를 안고 있는 땅이라 어쩔 수 없이 트레킹 구간에 전쟁과 관련된 장면과 이야기를 종종 보고 듣게 된다. 이번 돌로미티 트레킹 구간은 머무른 산장을 중심으로 대략의 코스는 아래 그림과 같다. 트레킹에 동행하고 일주일간 방을 공유한 사진작가 친구가 구글맵으로 표시한 루트를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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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몽블랑 때와 달리 팀이 단출하다. 이번 여정에 참여한 트레커는 60대 부부, 사진작가와 나 그리고 산행을 이끌 리더(가이드라기보다는 리더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듯하다)와 노새잡이가 전부다. 노새잡이 엘로디(몽블랑 트레킹에 이어 노새잡이가 전부 마드모아젤이다) 설명에 따르면 신청자가 최소6명이 되어야 본전이란다. 따라서 지난번 몽블랑 트레킹 때는 꽤 짭짤하게 장사를 한 셈이고 이번은 적자가 불가피하다. 인원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장점이 있다.
출발하는 아침 코르티나담페초 버스터미널에서 일행들과 만나 시내버스를 타고 트레킹 출발지로 이동하였다. 시작하는 지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바위산 능선에 붙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팀 리더인 막심에게 물었더니 여기는 트레커도 많지만 바위하러 오는 클라이머들 또한 그 수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트레킹 중간 중간에 헬멧에 자일 둘러멘 팀을 자주 만났다. 진짜들은 저기 바위능선에 붙어 있는 저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 갔다. 하지만 여름휴가를 맞아 이렇게 두 번이나 유럽 명산 트레킹의 행운을 가졌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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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지난 몽블랑 트레킹을 무사히 그리고 가슴 벅차게 마친 이후라 자신감이 과하게 충전되었고, 누군가 전한 돌로미티가 몽블랑보다 쉬운 코스라는 오정보(汚情報)로 인해 살짝 마음이 해이해 진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그리고 자주 갔던 산이라도 산은 언제나 경외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알프스 산맥의 동쪽과 서쪽에 위치한 몽블랑과 돌로미티는 바위를 이루는 암석도 다르고 산세도 다르니 당연히 풍광도 느낌도 다르다. 거대한 산맥에 수 천 년 사람들의 발이 거쳐 간 곳에 산길이 생겼고 이를 바탕으로 트레커를 위한 루트가 구성되었을 것이다. 트레킹 코스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난이도의 조합이 다양할 수 있으니, 한사람의 경험으로 돌로미티 트레킹을 평가하기는 애초에 가당치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첨언을 하자면 몽블랑과 돌로미티 둘 중에 하나를 굳이 선택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동전을 던져 나오는 대로 가면될 것이다. 용호상박, 막상막하는 이럴때 쓰라고 있는 사자성어이다. 말할 나위 없이 둘 다 한다면 금상첨화이고..

오늘 한 일 중 가장 멋진 건 2600고지에 위치한 산장의 앞마당에서 구름이 수도 없이 몰려왔다 물러가는 걸 지켜보는 것이었다. 구름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움직여 달표면 같은 앞 봉우리를 감쌌다 풀기를 반복한다. 기온이 20도였다 금세 10도로 떨어졌다 다시 올랐다 하니 가만히 앉아서 겉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걸 반복한다.
치기어린 시절에 강가에 달빛을 옷 삼아 바위 위에 앉아 잔을 비운 적이 있었는데 한여름인 지금 2600고지에선 서늘하다 못해 차가운 기운이 느껴져 웃통을 벗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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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와 재회?
오스카와 재회 하는 줄 알았다. 아침에 출발하는데 막심이 오스카가 산 밑에서 기다린다 했다. 반가운 마음에 어찌 몽블랑에서 예까지 왔냐 했더니 자기네 회사에 오스카가 둘인데 한 녀석은 몽블랑에서 다른 녀석은 돌로미티에서 일한단다. 몽블랑의 오스카와는 언젠가 재회할 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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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 만난 돌로미티 오스카

 

 

돌로미티 트레킹에선 노새와 동행하는 구간은 많지 않다. 오스카와 노새잡이 엘로디는 주로 능선을 타고 이동하고 우리 일행은 능선과 계곡을 오르락내리락 하느라 겹치는 구간이 많지 않다. 너무 당연하게 돌로미티 오스카와는 정 쌓을 새가 없다. 모든 건 시간에 비례하는 거야.
 

오늘의 사족 1. 2600 높이 Refugio Guissani (귀사니 산장)에서 저녁을 먹는데 금세 구름이 몰려와 어두워졌다가 또 금세 저 멀리 물러가면서 환해진다. 일행중 누군가 식사하다가 갑자기 환해지니 ‘커튼이 걷혔네.’ 그런다. 2. 접경지역은 어디나 힘들다. 여기도 1차 대전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예전에 산악전투신이 나오는 영화를 여기서 찍었다고 한다. 실제로 1차 대전의 격전지가 이 고개이기도 하고. 3. 빠리로 출장 오는 사람들이 고국이 그립지 않냐하며 팩소주를 가져다주었는데 酒님을 멀리하고 산지가 오래되다 보니 선반에 고이 모셔져 있다가 이번에 몇개 들고 와서 저녁만찬 전에 식전주로 한 모금씩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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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산장 테라스에서 한참을 앉아 비현실적인 풍광에 넋을 놓고 있는데 노새잡이 엘로디가 한마디 한다. ‘It is the only introduction of Dolomiti’. 속으로 생각했다. ‘두고 보자고.. 이게 단지 시작일지 아니면 이걸로 끝일지는 곧 알게 될테니..’
 

#Dolomiti Day +1 번외
하루 트레킹에 한편의 글로만 끝낼 수 없다. 지난번 몽블랑 때 사건별로, 감동이 있는 사연별로 기록하려다 보니 휴대폰 자판에 코 박고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예까지 와서 ‘뭣이 중한디?’ 소리가 절로 나왔던 터였다. 산에 와서 무엇이 중한지를 혼동하지 않도록 이번엔 하루에 한편만 쓰기로 했다. 트레킹 다녀와서 여름, 가을이 지나고 지난 글과 사진을 보며 다시 정리하자니 그때 든 생각의 자락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어 번외를 쓰기로 하였다.

전쟁 그리고 노새
노새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된다. 동명이인이 아니라 이름만 같은 노새 오스카를 출발하는 날 아침에 만나 돌로미티 트레킹의 동반자 삼아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수려한 바위산 자락이 나타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트레킹 루트의 돌산을 뚫어 만든 동굴을 만났다. 정확하게 하자면 돌산을 뚫어 굴을 만들고 길이 생겼으리라. 이 산중에 굳이 왜 여기에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답은 어이없게도 전쟁 때문이다. 오늘 묵는 산장이 Rifugio Guissani인데 여기 고갯마루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여서 1차 대전 당시 군대가 주둔하였고 보급로를 개척할 필요가 있었다 한다. 동굴 벽에 편자를 손잡이 마냥 박아 놓은 게 있어 무엇이냐 물었더니 짐 지고 산길 오르는 노새가 쉴 때 묶어 두는 용도란다. 전쟁 통에는 무기며 탄약에 군인들 먹일 식량을 지고 나르던 노새가 요즘은 나 같은 트레커 짐을 옮기고 있다. 노새에게 이 모든 것이 무슨 유익이겠냐 싶은 생각이 다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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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족: 이탈리아 산장 주인들 유머가 남다르다. 이탈리아 말을 알아들을 일이 없으니 말로 하는 유머는 알아들을 일이 없고. 오밀조밀 꾸며놓은 Bar의 의자며 산장 외벽을 기어오르는 클라이머 들을 보며 혼자 킥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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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omiti트레킹Day +2 (2018년 8월 13일, 월)
Too much(2018년 8월 13일)


트레킹 두 번째 숙소는 2060 미터에 위치한 Fanes Rifugio Hutte는 Rifugio 즉, 대피소라는 말이 무색하다. 예약이 꼬이는 바람에 도미토리가 아니라 2인1실을 쓰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보통 예약이 잘못되면 고생하는 게 일반인데 오늘은 예외다. 이 곳은 깊은 산중에 위치한 산장임에도 불구하고 침대시트를 갈아주는 호텔서비스를 산장에서 제공한다! 이 높이에서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또 돌로미티를 오게 되면 여기를 베이스캠프 삼아 며칠 트레킹해도 되겠다 싶어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좋은 생각이란다. 몽블랑과 돌로미티 통틀어 이보다 좋은 레퓨지는 없단다!
머물렀던 방과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은 아래 사진으로 감상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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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판 인생
산사태가 빚어낸 상상하기 어려운 풍광 중 하나가 집채만 한 바위들이 넓은 계곡에 띄엄띄엄 서있는 것이다. 마침 쉬려고 멈춘 자리에 잘 생긴 바위가 버티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자니 막심이 바위 뒤로 슥 돌아가더니 금세 올라가서 씩 웃고 있다. 나도 참지 못하고 두어 번 시도 했는데 번번이 중간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나보다 연배가 높은 프렌치 아저씨는 몇 번 시도하더니 팔꿈치를 까져가며 기필코 올라간다. 이럴 때 오기가 생기면 안 되는데 어쩌겠나! 발을 다시 바위에 붙인다. 어찌 해볼까 버둥대고 있는데 위에서 가이드 막심이 손잡을 자리, 발 디딜 곳을 알려준다. 인생 어디서나 가이드가 필요한 시점이 있는 것이다. 몇 마디 조언을 바탕으로 내 키의 두 배는 족히 넘는 바위에 드디어 오르다. 인생 삼세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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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 달러 테이블
몽블랑이나 돌로미티 트레킹 중에 점심식사는 주로 초원에 앉아서 먹는다.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인가 보다. 숲속에 자리한 테이블에 식탁이 차려졌다. 사진을 남기지 않을 수 없어 룸메이트 시몬한테 부탁했다. 내가 밀리언 달러 밸류 런치 테이블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oui, si, yes 이런 말들이 들려온다.
사람 사는 게 별반 다르지 않다고 후식으로 가져온 자두와 파인애플을 먹기 좋게 잘라 레이디 퍼스트 하면서 접시를 마담으로 앞으로 밀었더니 그렇지 않아도 훈훈하던 점심 자리 대화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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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 달러 런치 테이블, 왼쪽부터 필자, 리더인 막심 그리고 프렌치 부부

 

오늘의 사족 1. Travenanzes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다들 너무 좋다며 No vehicle, No pollution 그런다. 어제 저녁 머문 산장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화물 곤돌라와 디젤 발전기 덕분에 따뜻한 음식과 차가운 맥주를 2600 고지에서 맛볼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간사함을 내재하고 산다. 나도 그 간사함에는 예외가 아님을 어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절실히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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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쟁의 기억은 산장 장식물에도 남아 있다. 카스뗄로 봉우리에 떨어진 1차 대전 때 포탄을 장식물로 재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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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긴 주인장도 블랙 유머가 있는 친군가 보다. 산양이 벽을 뚫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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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제 어쩐 일인지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오늘 33000보를 걸었는데 컨디션은 괜찮다. 산이 체질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5.Fanes산장까지는 버스도 다닌다. 어찌 보면 이런 호텔식 서비스가 이 산중에 가능하기 위해서는 차량이 다니는 도로가 연결되지 않고서는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세상사 다 그러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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