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진의 홀로요리 7 - 홀로요리의 기원

posted Mar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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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진의 홀로요리 7 : 홀로요리의 기원

 

 

 

Part 1

가만히 싱크대 옆에 홀로 웅크리고 앉았다.
어두운 부엌의 창틀에 기울어가는 햇빛이 들어왔다.
고개를 숙이고 다리를 모아 웅크리며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가만히 생각한다.

오래전 이대 앞 치킨 위에 얹은 소스는 무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마치 수학문제를 푸는 과정처럼 문제를 적고 도형을 연필로 나누어 산식을 늘어뜨리고 하나하나 곱하고 나누어 더해서 도형 면적의 값을 구하는 것처럼 소스의 재료를 구성해보았다.

이 맛은 뭐지? 사과를 갈아 넣은 것 같고 설탕과 소금, 후추 맛이 났다. 올리브기름을 조금 넣으면 되겠다. 지난 번 먹었던 음식들을 눈을 감고 역으로 유추해보는 것이다.
사과를 갈아서 소금과 후추를 섞고 올리브기름을 넣어 저어서 닭 순살을 대충 밀가루에 묻혀 튀겨내었다.
그 치킨 위에 뿌리면 새로운 맛이 났다. 얼추 맛이 비슷했다.

인터넷을 잘 모르던 시절, 레시피를 만드는 과정은 명상과 같았고 수학문제를 푸는 것 같았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간단한 요리를 시작해 보았다. 요새는 인터넷에서 쉽게 레시피를 알수 있어 얼마나 편한 시대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TIP. 사과를 갈아서 소금과 후추 설탕 올리브유를 섞어서 후라이드 치킨 위에 얹어서 드셔 보셔요 ~
 

 

사진1_부여통닭-1_resize.jpg

어떤 소스도 필요 없는 놀라운 맛이 나는 부여에서 산 통닭
 

 

Part 2

친구네 집에서 석 달 정도 같이 산 적이 있다. 그때 그 집 냉동실에 소 곰탕거리들이 있었다.
친구는 소뼈와 고기들은 싸서 사놓았는 데 어떻게 먹을지 몰라 오랫동안 보관했다고 했다.
그때 나는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레시피를 물어보고 곰탕을 끓여보기로 했다.

“그냥 뼈를 물에 담가 놓았다가 핏물을 빼고 솥에 물만 넣고 끓이면 돼.
통마늘 조금 넣던가, 대파하고, 생강도 조금 있으면 좋고.
응. 없으면 그냥 물만 넣고 끓여. 나중에 후추와 소금으로 간해서 먹어.”

와우. 요리가 이렇게 쉬운 거였어?

나와 내 친구, 친구의 친구는 그날 모두가 맛있게 먹었다. 모두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내가 행복해졌다. 지금도 스미소니언 박물관 같은 정육점의 기다란 소 척추뼈를 보면 곰탕을 끓여보고 싶은 생각이 난다.

그렇게 샌프란시스코에서 끓인 내 인생의 첫 요리는 곰탕이었다.
 

 

사진2_나주-1_resize.jpg

곰탕의 도시 나주

 

나주에서 직접 먹는 곰탕은 서울의 곰탕이나 샌프란시스코의 곰탕과 차원이 다릅니다.


Part 3

배구 경기를 친구와 보러 가기로 했다. 난 여자 프로배구를 좋아한다. 경기를 보면서 먹을 간단한 샌드위치를 만들어가기로 했다. 간단해서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심지어 샌드위치는 홀로요리에 자주 나오는 아이템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만들테야. 빵 속을 채울 참치 샐러드를 만들어보자.
참치캔을 살짝 따서 기름을 휴지위에 버리고 마요네즈와 커피숍에서 갖고 온 설탕 한 봉지를 넣고 후추를 넣고 삶은 계란을 넣는다. 여기서 핵심은 양파. 양파가 느끼한 맛도 잡아주고 아삭한 식감을 살려준다. 양파를 썰어서 넣은 후 쓱쓱 비벼준다.

빵에 상치를 깔고 겨자씨를 살짝 바른다. 그 위에 치즈 한 장을 얹고 참치 샐러드를 넣어준다.
빵을 덮고 포장한다. 끝! 써보니 간단하지 않다. 만들기가...
그날 내가 응원하는 팀은 졌다. 그래도 남는 건 참치샌드위치였다.

 

 

 

사진4_참치샌드위치-1_resize.jpg

뚜껑 덮기 전 참치샌드위치

 

 

Part 4


나는 지은 밥을 먹고 싶었다.
물론 자주 혼자 밥먹을 때 가끔 라면이나 비비고 즉석 식품을 이용한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지은 밥을 좋아했다.
그때도 그냥 고추참치에 햇반이나 먹으면 되었지 내가 까탈스럽게 군 걸까? 아니면 배고프고 원하는 사람이 밥을 해먹으면 되었다. 그냥 세 끼 나혼자 밥을 해먹었으면 되었다. 밥을 해먹기 싫은 사람한테 강요하면 안된다. 피곤한 일상, 바쁜 삶에서 각 자의 밥시간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함께 먹는 걸 기대를 하면 안되었다.

처음부터 홀로 요리해서 혼자 먹는 습관을 들였어야 했다. 스스로를 안으로 단단하게 만드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내가 바보였을 까.
 
지금은 혼자 밥을 지어먹을 때 행복하다. 밥 한 끼 지어놓고, 시금치를 통으로 데쳐서 접시에 놓고 들기름을 뿌리고 가는 소금으로 간을 해둔다. 밥과 시금치 반찬으로만 향기로운 들기름을 맡으며 간단히 먹는 것도 좋긴 하다. 여기에 핵심 준비물은 국산 생들기름이어야 한다. 더 이상의 반찬과 국도 없이 밥과 시금치만 있어도 훌륭한 만찬이 된다.

여기에 막걸리 한 병이 있으면 좋다. 특히, 상 차려서 밥먹을 때 TV에 여자배구 중계를 하면 더 없이 행복하다.

 

 

사진5_시금치-1_resize.jpg

시금치를 그냥 통으로 살짝 데쳐서 들기름과 가는 소금을 뿌리면 끝!! 간단합니다

 

현우진-프로필이미지.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