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9 - 클로이스터즈에서 만난 “꽃보다 할매” - 시그리드 골디너

뉴욕에서 가장 로맨틱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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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가장 로맨틱한 곳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뉴욕 처음 와서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클로이스터즈(Cloisters)와 포트 트라이온 파크(Fort Tryon Park)다. 아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클로이스터즈를 가보라고 했었는데  귓전으로 안 듣는 것 같더니 나중에 며느리와 데이트할 때 이 곳에 왔다고 해서 씩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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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스터즈는 맨해튼의 북쪽에 있는 포트 트라이온 파크(Fort Tryon Park)에 위치하고 있고 유럽의 중세의 수도원들 5개를 분해해서 옮겨 놓았다. 중세의 건축, 미술품, 장식품을 전시하고, 또 중세의 정원을 재현한 Metropolitan Museum과 연계된 뮤지엄이다. 소장하고 있는 유니콘 타페스트리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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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 타페스트리(우측)
 


임시 아파트에서 아들과 같이 지낸 시절이 있다. 빨래도 지하에 내려가서 해 와야 하고, 장도 몇 블록 걸어가  낑낑 매면서 사들고 오던 시절이다. 거리 청소 하는 날은 오전 11시부터 12시 반까지  파킹 자리를 못 찾으면 뺑뺑 돌다가 생각해 낸 곳이 바로 클로이스터즈다. 집에서 멀지 않은데다, 이곳은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항상 여유 있게 파킹을 할 수 있었다. 뮤지엄 안에 들어가서 코트야드가 있는 아케이드를 거닐기도 하고 기둥에 새겨진 흥미로운 조각들도 살펴보다가 낭간에 걸터앉아 책을 읽곤 했다. 이 곳에 있으면 마치 내가 이 성의 주인이 된 느낌이 들고 힘들고 버거웠던 마음들이 가벼워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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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자주는 왔지만 중세미술품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나 지식이 없어서 작품들을 스쳐 지나갔는데, 뮤지엄 하이라이트 투어를 듣고 나서 흥미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한 작품이라도 자세히 보아야 남는 것 같다. 타페스트리가 어찌나 정교한지 분수에서 물이 튀기는 것과 물에 비추어진 새의 얼굴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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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핀의 수태고지에서도 자세히 보면 천사가 와서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는 소식을 알려주기 전 바로 그때 창문에서 빛과 함께 십자가를 매고 날아오는 아기예수의 모습이 보인다. 그림의 배경은 마리아와 조셉이 살던 시기가 아니라 그려진 14세기의 네덜란드의 풍광이라든지, 설명을  듣고 보면 하나하나가 흥미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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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매” 시그리드 골디너(Sigrid Goldiner)

얼마 전 시카고에서 방문한 친구와 함께 클로이스터즈를 갈 기회가 있었는데, 때 마침 중세 가든  투어가 막 시작하고 있었다. 연세가 꽤 있으신 할머니가 투어를 하셔서 조금은 놀라웠다. 헤드셋이 없어서 그랬는지 소리가 잘 안 들려 그냥 갈까도 생각했는데, 중세의 가든이나 배경에 대한 설명을 어찌나 잘 해 주시는지.

전에 내가 즐겨 앉아서 책을 보았던 곳은 Judy Black Garden으로 불리고, 약초나 식용으로 재배하는 실용적 가든이 아니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심어,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주는 가든이다.  중세의 전형적인 가든의 특성을 잘 살려 중앙에 분수가 있고 십자로 길이 나있고, 네 면이 아케이드로 둘러싸인 Garth이다. 네 등분된 코너에는 각기 한 그루씩 윗가지를 잘라주고 옆으로 퍼지게 한 크랩애플이 심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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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으로 내려가 문을 열고 나가면 멀리 허드슨 강변이 보이고 전망이 좋은 Bonnefont  Cloister Herb Garden을 만나게 된다. 중세에 쓰였던 용도대로, 음식, 약, 미술재료 등으로 구획이 나누어져 있고,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모양이 신장처럼 생겨서 중세에는 신장에 좋다는 약초로 쓰였다는 꽈리(호두가 뇌 모양처럼 생겨서 뇌에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유니콘 타페스트리에서는 석류가 큰 나무로 그려졌지만 실제는 자그마하다면서 보여주신 석류, 의술이 발달하지 않은 중세에 안약으로 쓰여 진 꽃들, 안젤리카라는 처음 보는 예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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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리(좌상), 석류(좌하), 안젤리카꽃(우)
 


처음에는 꽃들을 사진 찍다 점점 이분의 모습에 매료가 되어 나중에는 이 할머니의 사진만 잔뜩 찍었다. 머리스타일과, 옷차림, 모자에 두른 꽃무늬 리본까지…. 나뿐만 아니라 함께 간 친구도 “꽃보다 할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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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리드 골디너(Sigrid Goldiner)씨는 오래전 영국에서 간호원을 하시다가 의사인 남편을 따라  미국에 오게 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중세미술사를 다시 전공하셨다. 오랫동안  클로이스터즈에 스태프로 일하셨다고 한다. 중세 가든에 대해 일반 사람들에게 더 알리고 싶어서 15년 전에 다른 스태프들과 함께 이 투어를 시작하셨고 5월부터 10월까지 가든투어를 한다고 한다. 아름다운 노년의 시그리드 골디너 씨를 보니 이분이 성의 주인 같았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일하셨고 또 자원봉사로 계속 일을 하시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들이 이런 분들을 만나면 마음이 뿌듯해지고 희망이 생기는 것 같다. Empowerment!

PS. 지금은 “Heavenly Bodies: Fashion and the Catholic Imagination”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데, 모던하고 기발한 천상의 패션이 중세의 수도원의 장식들과 묘한 조합을 이루면서 그 어느 때보다 수도원 안을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잔잔한 클로이스터즈도 좋지만 멋진 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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