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7 - 빨간 등대길에 만난 시지푸스 스톤과 울릭스 그리카 – 왕초보자를 위한 자전거길

posted Jun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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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오늘은 나처럼 꼬부랑거리면서, 사람이 지나가면 겁이 나서 따르릉거리며, 이도 저도 안되면 멈춰서 끌고 가는 새내기 바이커들도 갈 수 있는 멋진 자전거 길을 소개하고 싶다. 그리고 목적지에 이르면 흐뭇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고, 가는 길 중간에 서프라이즈가 있는 그런 자전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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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날 아이들과 식사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때로는  멀리 떨어져 있어, 사정이 있어 대신 아이들이 보낸 꽃을 보며, 선물로 보내 준 머플러를 둘러본다. 애꿎은 어머니날, 나의 자식도 아닌 남편이 아침부터 베이글을 사다 놓아야 하는 게 아닌가, 팬케익을 부쳐야 하는 게 아닌가 눈치를 본다. 이 날 남편이 준 최고의 선물은 왕초보자인 내가 최대한 힘들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바로 이 자전거 길을 찾아준 것이다.

허드슨 리버를 따라 펼쳐지는 자전거길 중에 96가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조지워싱턴 브리지 아래까지의 길은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과 달리 비교적 한적하다. 그 중에서 145가 리버뱅크 파크 아래 길부터는 강가를 따라 가면서도 옆에 큰 찻길도 없고, 길이 중간에  끊겨 이어지는 길을 찾아야 하는 복잡함도 없어서, 그야말로 초보자에게 쾌적한 길이다. 이 길을 달릴 때 비로소 핸드브레이크를 잡고 있던 오른 손을 놓고 긴장감을 늦추게 된다. 아 맨하튼 도심에 이런 곳도 있구나 즐기면서 행복한 미소가 절로 번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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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어 저게 뭐지?”하고 멈추게 되는 곳이 있다. 돌을 쌓아 놓은 군상들이 쭉 늘어서 있다. 어떤 아티스트의 설치작품인가 하고 내려서 유심히 살피니 ‘시시포스의 돌’이란 설명서와 돌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얹어진 것이니 조심하라는 문구가 있었다. 문득 지난 2월 제주에 돌문화공원에 갔을 때 본 두상석들이 떠올랐다. 머리와 몸체의 조화를 이룬 돌들의 군상들. 인간이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혼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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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궁금해서 시시포스의 돌을 구굴해 보니, 뉴욕타임즈에 실렸던 기사가 있어 자세한 설명을 읽을 수가 있었다. 
https://www.nytimes.com/2017/09/14/nyregion/a-mystery-solved-why-the-sisyphus-stones-rise-and-tumble.html

그 날 돌을 구경하고 있을 때 군상들을 만든 울릭스 그리카(Uliks Gryka)가 바로 그곳에서 사람들하고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알아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었다. 몇 주 있다 다시 주말에 그곳을 찾았을 때 허물어진 돌들을 손 보고 있는 울릭스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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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리즘(vandalism)이나 바람, 그리고 파도에 의해 끊임없이 허물어지는 그의 군상들을  다시 쌓고 쌓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이 “시시포스의 돌”이라고 별명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시시포스(Sisyphos)는 언덕위로 큰 돌을 밀어 올려야 하고  그 순간 돌이 다시 굴러 내려와 끊임없이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감수하는데 참으로 적절한 비유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돌상은 초록 이끼옷을 입은 돌상이라고 하니까, 울릭스가 소중히 여기는  부처님 모습을 한 돌상을 보여 주었다. 어떻게 보면 아이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울릭스는 집에 간직하고 있는 얼굴 한쪽 면은 완전히 없어지고 다른 한쪽은 흉터가 있는 얼굴 모습을 한 돌멩이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알바니아의 이민자인  울릭스는 수피시인 루미의 시를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무너진 돌을 끊임없이 쌓아 올리는 행위가 그에게는 메디테이션(meditation)이라고 한다. 그는 이 돌을 작년 7월부터 쌓기 시작해서 아직까지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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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상들이 위치한 곳은 다운타운의 거대한 빌딩 숲을 멀리 바라보며 여기가 맨해튼 아닌 딴 세상같이 느껴지는 곳이다. 울릭스는 돌을 쌓으면서, 낚시꾼은 낚싯줄을 드리우면서, 바이커와 조깅하는 사람들은 숨을 고르면서,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여기서 각기 저마다의 다른 모습으로 메디테이션(meditation)과 평온을 찾고 있다. 물가에 있는 연하디 연한 아기나무가 가드다란 다리로 홀로 버티고 있는 모습은 이 거대한 도시에서 견디어 내야하는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는  말씀이 들리는 것 같다.
 

이곳을 지나고 나면 드디어 Voilà!
동화책의 주인공, 나의 작은 빨간 등대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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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9qsBv8xInQI 에 가면 이 등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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