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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의 역사 - 여성, 소비를 통해 평등을 얻다

posted May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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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한국에서 일상의 정치를 염두에 두는 이들이라면 일견 부정적으로 여기는 개념이다. 자본주의의 거대한 괴물이 인간을 소비자로 전락시켜버렸기 때문이다. 때로는 소비가 곧 과소비라고 인식되기도 한다. 청빈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소비는 필요악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 즉 상품에의 추구는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보다 자세한 것은 책의 내용을 통해서 알아보자.

소비의 역사라는 제목을 보고 어떤 이는 자본주의 발달사 혹은 물질문명에 대한 소고 같은 내용을 기대할 수도 있겠다. 혹은 정 반대로, 흥미위주의 토막 지식을 나열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다. 확실히 이 책은 저자가 네이버 캐스트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으로 짧은 글 모음집이라 구성도 내용이 긴밀하게 연결되기보다는 매 꼭지가 분절적이다. 그만큼 호흡이 짧고 가볍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그러다보니 어쩐지 별다른 의미는 없는 잡학이 아닌가 싶은 의심도 풍긴다. 그렇지만 이러한 편견을 잠시 뒤로 하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인간에 대해 탐구하는 인문학자 특유의 따스하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흥미 위주의 잡학을 전달하는 책에서 기대하기 힘든, 체계 잡힌 역사관 말이다.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눠서 소비하는 인간의 삶을 추적하고 있다. 욕망, 유혹, 소비, 확장, 그리고 거부이다. 욕망 파트에서 저자는 어떻게 여성이 고급 상품 즉 사치품의 소비자로서의 이미지가 그려져 왔는지를 추적했다. 물론 서양사 전공자이므로 서구 유럽 혹은 미국이 배경이다. 우리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게 서양에서도 전근대의 경제적 권리는 대부분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당연히 고가품의 소비도 남성 중심이었고 복식 문화도 여성보다 남성의 경우가 훨씬 화려했다. 책에 따르면 중간계급과 그 이하의 경우 남성이 여성보다 두 배 많은 복식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빅토리아_커플들.jpg

간소화된 남성의 복식과 여전히 화려한 여성의 복식을 보여주는 빅토리아 커플들

 


계몽주의 시대에 남성의 복식에 대한 규제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이제 복식의 소비는 여성의 영역으로 바뀌었다. 남성은 단정하고 간소한, 즉 모던한(현대적인) 수트가 일상화된 반면에 여성의 복식은 오히려 점점 더 과장되고 화려해져갔다. 상품 경제가 발달하고 자본주의가 싹틔워가는 이 시기에 상품 소비의 촉진은 구조적으로 필연적이고 필수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꾸밀 수 없게 된 남성은 자기 옆의 여성을 꾸미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하고자 했다. 여성은 코르셋과 페티코트로 신체를 극도로 왜곡시킨 채로 남성 옆의 아름다운 트로피가 되어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러한 여성의 소비에 대해 사치라는 개념이 덧씌워졌다는 것이다. 이는 저자에 따르면 계몽주의 시대 청빈을 도덕적인 것으로 여기는 데서 기인했다고 한다. 심지어 더 나아가 화려한 복식을 하는 여성은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겨지기까지 했으며 이는 정치적 경제적 영역에서 배제되는 2등 시민에 머물게 하는 억압기제가 되었다.

 

 

설탕-소비-거부-운동_크기조정.jpg

설탕 소비 거부 운동에 관한 당시의 풍자만화

 

 

그러나 거부, 즉 보이콧 파트를 보면 여성의 실재는 이와 전혀 달랐다. 여성의 사치로 여겨졌던 설탕 소비가 가혹한 노예노동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부도덕하다는 판단이 생겼을 때 소비 거부운동을 시작했고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것은 바로 그 여성 대중이었던 것이다. 이는 최초의 윤리적 소비를 위한 움직임이었다. 물론 이러한 활동이 가능했던 이면에는 빅토리아시대의 가정성의 확산, 즉 여성이 가정의 수호자로서 도덕적이어야 하며 도덕성을 가정 밖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역할 규범이 존재했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는 여성의 높은 공감 능력과 감수성이 약자를 위한 연대를 만들어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물산장려운동포스터_크기조정.jpg

물산장려운동 포스터

 

 

우리의 역사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개항은 곧 자본주의적 상품 시장의 개방을 의미했고 식민지 민중은 빠르게 소비 경제에 흡수되었다. 전통사회에서 장시에 나가서 상품경제 활동을 하는 것은 주로 남성의 몫이었으나 근대는 여성을 경제 주체로 편입시켰고, 다양한 신문물을 소개하는 신문광고는 근대화된 식민지 민중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소비하는 여성은 곧 과소비하는 허영심에 가득 찬 여학생, 신여성의 이미지로 빠르게 바뀌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물산장려운동 등 계몽주의적 소비운동에 앞장섰다. 서구 열강과 일본 제국의 자본 침탈에 맞서기 위해 소비를 운동의 방편으로 삼았던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현대사회의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는 결국 인간을 생산 주체도, 노동자도 아닌 소비자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유일한 길인 윤리적인 소비 운동을 시작한 것은 바로 소비로 비난받아왔던 여성 대중이었던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소비 앞에서 모두가 평등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누구나 소비를 하기 때문에, 때로는 그 소비를 그만두거나 그만두도록 권함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표현할 수 있다. 그 작은 데서부터 여성의 공적 영역에서의 활동이 확장되어 갔다.

 

김가흔-프로필이미지.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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