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posted Jan 0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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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피경원
발행호수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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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책 소개 :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저자 라즈 파텔, 제이슨 W 무어 외 | 역자 백우진 외 | 북돋움 | 2020.5.20.

 

우리는 자본주의 생태계 속에 살고 있다.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같은 값이면 보다 나은 품질을, 동일한 품질이라면 가격이 싼 편을 선호한다. 이런 개별 소비자들의 선호 행위들이 모여 거대한 시장경제를 이룬다고 경제학 교과서는 가르친다. 그러나, 경제학 교과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본주의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무언가를 간과하고 있다. 지난 600년간 자본주의 역사를 돌아보면 값지고 소중한 것일수록 제대로 된 값을 치르지 않고 얼렁뚱땅 싸구려 내지는 공짜로 취해 왔다는 불편한 진실 이야기다. 제 값을 치르지 않은 비용은 어디론가 떠넘겨졌는데, 이를 달리 보면 ‘착취’를 의미한다.

 

반세계화 활동가(라즈 파텔)와 사회학과 교수(제이슨 W. 무어)인 저자들은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등 일곱가지 자원이 싸구려로 취급 받아 온 역사적 맥락을 추적한다. ‘자본주의가 감춰온 비용'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전가되는데, 그 누군가에는 신대륙 토착민, 노예, 농민, 노동자, 여성 등의 약자 뿐 아니라 후세대, 동물, 식물, 자연환경 등까지 포함된다. 선대로부터 감춰져온 비용을 현세대의 우리가 지불하고 있고, 우리가 못다 지불한 비용은 부채로 남아 후세대로 떠넘겨진다.

 

저자들이 말하는 ‘저렴함’이란 자본주의와 생명망 사이의 관계를 꾸려가는 전략의 집합이자 실행이고 모든 일(인간과 동물, 식물, 지질학적인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적은 보상을 주고 동원하는 폭력을 뜻한다. 자본주의는 생명 생성 관계에 값을 매겨 생산과 소비의 회로 속으로 집어넣고, 그 회로 속에서 이들 관계는 가능한 한 낮은 비용으로 떨어진다. 다시 말해 저렴화는 셈해지지 않던 생명 생성 관계가 가능한 한 적은 화폐 가치로 바뀜을 뜻한다. (41페이지)

 

오늘 점심으로 무심코 사먹은 5천원짜리 햄버거가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생태발자국을 거슬러 제대로 비용을 추적해 보면 20만원을 넘는다고 하지만, 누구도 정당하게 지불하지 않았다. 신축할 향린교회에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할지 여부를 놓고 주판알을 튕긴다. 비용-효익 산정을 위한 경제적(=합리적) 비교 기준인 현행 전기료는 핵폐기물 처리비용, 석탄발전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비용, 고압송배전 시설 주변 거주민의 건강침해비용 따위를 정당하게 지불하지 않고 어딘가에 떠넘겼음을 은폐하고 있다. 진보적 환경주의자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러한 생태발자국 접근이 일정 부분 타당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환경파괴를 글로벌 노스와 글로벌 사우스의 가난한 이들, 노동계급에 전가할 우려가 있는 맬서스적 사고라고 비판한다. 저자들은 현재가 오랜 과거의 산물이며, 생명망 속에 서로 얽힌 권력, 자본, 계급의 유혈 역사의 산물이라는 점을 과소평가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274페이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떠받드는 소중하고 필수적인 것들이 싸구려 취급 받는 세상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사람의 인내와 배려와 사랑도 한계가 있고, 이 지구별의 자원도 한계가 있다. 이제 소중한 것들에 소중한 값을 매겨야 하지 않을까? 저자들은 ‘보상 생태’ 라는 개념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문자적으로 ‘인간이 손상시킨 환경을 복원한다.’는 의미이지만, 자본주의 생태계를 지양하는 혁명적인 삶을 포괄하는 개념이라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기여적인 정의(contributive justice),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 ‘게으름과 좋은 노동의 기쁨’ 등과 같은 말이 손에 잡히는가? 어쩌면 대안 찾기는 아래의 물음에서 시작할지 모른다.

 

“유일한 잘못이 지금 태어난 것인 사람들, 여성, 원주민, 기후변화와 환경 오염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음을 안다면, 그리고 이 문장을 읽은 모든 사람의 행위가 모여 그들의 삶을 더 악화시킨다면, 우리는 어떻게 다르게 살 것인가?” (27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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