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2023 - 열두 발자국

posted Jun 0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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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하효열
발행호수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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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지음 『열두 발자국』

2023, 어크로스

 

 

이 책은 너무 유명해서 다시 소개할 필요가 없는 책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뇌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었으면 좋겠다 싶어 소개하기로 한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우선은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기 위함이고, 그다음은 다른 사람과 소통할 핑계를 마련하기 위함이며, 나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것이 그 마지막이다. 이 책은 그 세 가지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에 관심이 폭발하고 있는 뇌과학은 기본적으로 위의 세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는 영역이긴 하지만 이 책의 저자만큼 이 주제를 잘 다루는 과학자는 드물다. 저자는 물리학의 한 분야인 복잡계를 전공하다 뇌과학으로 관심을 넓혀갔다. 이 책은 인간의 의사결정이 합리성이라는 한 가지 기준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뇌의 각 영역이 서로 다른 관점과 기준으로 상황을 파악하며 그것들이 순식간에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최종 의사결정에 도달한다고 설명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어진 '발자국'에서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잘 몰라서 고통스러워하는 심리상태, 즉 햄릿증후군을 극복하는 방법 설명하고, 결핍이 얼마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일만큼 중요한 놀이, 왜 새해 결심이 성공하지 못하는지, 인간이 미신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설명하며 1부를 마친다. 2부에서는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인공지능 시대 인간 지성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특성과 1, 2, 3차 산업혁명의 과정이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되었는지 알려 준다. 마지막으로 세상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특성과 뇌라는 우주를 탐험해 온 과정을 설명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할지 궁금하지 않은가?

 

내가 처음 뇌과학에 관심을 가진 건 과학적으로 내가 세상을 지금의 방식으로 보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의 본질과 특성을 물리학이나 화학으로 설명하듯이 내 생각이나 감정을 과학이라는 방법론이 이용해 설명하면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결국 생물학을 거쳐 뇌과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심리학과는 다른 방식의 설명법에 빠져들게 되었다. 인간의 생각과 감정은 분명 생물학이나 뇌과학이 밝혀낸 것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설명된 것보다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과학은 그런 사실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어 마음에 들었다. 생각과 감정이 몸과 뇌를 통해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할 뿐 그것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뇌는 생명을 존속시키고 후세를 남기라는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생겨난 신체 기관이다. 뇌과학 공부를 통해 새로운 연구 결과를 더 많이 만나게 되면서 점점 진솔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알면 알수록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뇌 활동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바꾸려 결심하는 것은 나의 아주 작은 부분에만 영향을 줄 수 있고, 내 결심이 실패하더라도 내가 내 뇌의 활동을 싸잡아 나무라지만 않으면 내 뇌가 나를 배신하거나 버리지 않을 것이란 걸 더 깊이 감사하게 된다. 다만 그 과정이 좀 괴롭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깨달음은 도대체 자아도취나 이기적인 자기애와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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