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계사회(母系社會)를 찾아서

윈난(雲南)성은 중국 남서부 끝자락에 위치하며 티베트고원의 동남쪽 끝이기도 하다.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25개 소수민족들이 사는 중국 최대의 소수민족사회이다. 이곳에 가면 각 민족의 독특한 토속적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문화사회이다. 위도 상 더운 지방이지만 해발고도에 따른 4계절의 기후가 공존하며 자연 경관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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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마을
 


나에게는 8년 전의 1차 윈난여행이 가장 인상에 남는 몇몇 해외여행 중 하나였다. 특히 세상에 알려진지 오래지 않을 만큼 오랜 옛날부터 외부와 거의 차단된 채 살며 지금까지 모계사회(母系社會)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지하고 있는 모서마을을 소개하고자 한다. 여행기 후반에서 모서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겠다.

8년의 긴 망각기간을 지나서 쓰는 여행기이기 때문에 사진에 의지하여 기억을 더듬어 간다. 여행 첫째 날은 환승하기 위해 들린 베이징에서 ‘따샨즈798’이라는 예술거리에 들렸다. 이곳은 옛날 군수공장지대였던 곳을 지금은 거대한 예술지구로 바꿔놓은 곳이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라는 성서의 말씀을 떠올리는 곳이다.

국내선 항공편으로 윈난성의 성도인 쿤밍(昆明:곤명)에 도착하였다. 쿤밍은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시작점인데 일 년 내내 기후가 온화하여 춘성(春城)이라고 불려진다고 한다.

둘째 날은 소수민족 박물관에서 역사, 문화, 지리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이어서 부근에 있는 민속촌에서 주거문화와 생활양식, 복식 등을 보고나서 공연도 관람하였다. 윈난의 대표적 음식인 ‘꿔차오미센’으로 점심식사를 한 다음 4시간 반쯤 걸려서 따리(大理:대리)에 도착하여 백족이 운영하는 객잔(客棧)에서 숙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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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백족자치구의 중심도시로서 한 나라 무제 때부터 버마와 인도로 이어지는 서남 실크로드의 주요 요충지였으며 부족 국가였던 대리국 때는 윈난성의 중심지이었으나 후일 원나라의 쿠빌라이에 의해 멸망한 후에는 중심이 쿤밍으로 옮겨갔단다.

여행 셋째 날에는 아침 비를 맞으며 따리의 성산이라고 하는 창산(蒼山)에 말을 타고 올랐다. 나를 태운 말은 마방들이 타는 종류의 말로써 체구는 작으나 힘이 좋은 말이라고 한다. 비가 퍼붓는 가운데 무거운 나를 태우고 험한 산길을 오르는 말이 너무 가엾다. 내려서 걸으려 해도 너무 미끄럽고 험하여 그럴 수가 없었다. 다시는 이런 상황에서 말을 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낙타를 타고 시내산을 올랐던 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자신에 대한 이번 약속은 반드시 지키리라고 다짐하였다. 하산할 때는 비교적 편한 다른 길을 선택하여 도보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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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풍경

 


백족의 전통가옥에 들려 삼도차를 시음하며 백족 전통춤을 관람한 후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리장(麗江:려강)으로 향하였다. 도중에 샤핑마을에 내려 활기 넘치는 백족의 월요장터 구경을 했다. 우리의 옛 시골장을 연상케 했다.

6시간 정도 걸려 리장에 도착하여 ‘인상여강 쇼’를 관람 하였다. 장예모 감독의 작품이다. 소수민족의 생활상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옥룡설산을 배경삼아 제작한 야외뮤지컬인데, 500명이 넘는 출연 배우와 무대 규모의 웅장함은 관객을 압도하여 넋을 잃게 한다. 공연의 흥분이 가라앉지도 않은 채 나는 아름다운 리장 고성을 산책하였다. 800여 년 전 송나라 때 건립한 성인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날도 숙박은 나시족이 운영하는 객잔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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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고성(麗江古成)

 


여행 넷째 날 아침에는 나시족 할머니들이 추는 집단전통춤에 함께 해보았다. 리장은 옥룡설산(玉龍雪山:해발 5,596m)의 눈 녹은 물에서 발원한 깨끗한 옥천수가 세 갈래로 마을 골목 수로를 따라 집집의 문 앞을 지나며 300여개의 돌다리가 곳곳을 연결하여 준다. 여기에 수로 변을 따라 늘어선 옛 풍의 집들과 나무들이 한결 잘 어울리는 풍광이다. 그래서 리장을 ‘동양의 베니스’라고 한단다.

리장 재래시장 구경을 한 후 약 10여 시간을 걸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루구후(瀘沽湖:로고호)로 이동하였다. 리장에서 200km정도이지만 지금도 차로 보통 7~8시간 걸린다고 하니 옛날에는 얼마나 접근하기가 어려웠을지 짐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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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4000여 미터 굽이굽이 꺾어진 여령십팔만 등 여러 고갯길을 숨차게 넘어서 루구후에 도착 하였다. 여기까지 오면서 한 번은 비포장도로에 흘러내린 흙더미 때문에 길이 막혀 버스를 타고 가던 우리들이 내려서 버스를 끌고 밀기도 하였다. 루구후에 도착하자마자 지친 몸을 모서인이 운영하는 객잔에 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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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길 – 루구호 가는길
 


다섯째 날 아침이 되니 지쳤던 몸이 개운하게 회복 된 것은 이곳 맑은 공기 때문이리라. 아침 창문을 열어본 나는 깜짝 놀랐다. 나의 눈높이로 손에 닿을 듯 가깝게 아름다운 옥색 호수가 창의 턱밑에 펼쳐져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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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구호
 


저 창가에 촛불을 세워놓고 와인 한 잔 하면 환상적일 텐데... 생각만 한 게 아쉽다. 해발 2,609m에 여의도 면적의 다섯 배쯤 되는 48평방km의 넓이를 가진 루구 호수는 고원 청정호수로 물밑 12m까지 훤히 보일만큼 깨끗하다. 호수 안에는 다섯 개의 섬과 두 개의 반도가 있어 한층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다.

숙박한 객잔은 운영을 맡고 있는 자빠라는 청년(당시 30대)의 외할머니 소유다. 아침 일찍 자빠의 할머니가 구부정한 몸으로 어렵게 마당 저편으로 나오셨다. 그리고 돌로 아궁이처럼 만들어 놓은 곳에다 솔가지로 불을 피우신다. 하얀 연기가 앞산 봉우리를 향해 신비롭게 피어오른다. 할머니는 합장으로 허리를 굽혀 기도를 드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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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잔할머니의 기도
 


무슨 기도일까? 첫째 인류의 평화를 위한 기도이고 다음에는 마을과 가족의 안녕을 위한 기도란다. 하루도 거르시는 날이 없단다. 이곳 모서인들은 1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이렇게 그들의 신에게 치성을 드린다고 한다. 그런 이들의 마음씨가 참으로 고귀했다. 맑고 깨끗한 혼(魂)을 지닌 민족이다 싶다.

자빠 할머니 방에 들어가서 가장인 할머니를 모시고 모서인의 주거 형태와 전통문화에 대한 대화를 했다.

오후에는 루구후 보다도 더 오지에 있는 "자메이사"라는 티베트 불교 사찰에 가서 스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윈난성에서 두 번째 크고 또 유명한 사찰이란다. 티베트가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티베트인들의 의지를 이곳 스님의 이야기 중에서 느낌을 받았다.

용닝에 있는 재래시장도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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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풍경 - 장바구니 두여인
 


저녁이 되어 루구후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 후에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에서도 백미(白眉)라 할 수 있는 야회 체험을 하였다. 야회는 청춘남녀가 모닥불 주위를 도는 춤인데, 마치 우리나라 강강수월래와 비슷하다.
이들은 남녀가 함께 원을 그리며 노래와 힘찬 구호를 합창하는데 아름답고 역동적이다.
 
이들 청춘남녀들은 야회놀이 중에 마음에 두었던 이성이 있으면 그와 손을 잡는 순간 손바닥을 살짝 긁어줌으로써 사랑을 전(고백)하며, 상대도 마음이 있으면 허락하는 의미로 역시 그의 손바닥을 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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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여 마음이 맞으면 그날 밤에 여성의 집으로 찾아가서 합방을 한다고 한다. 나도 그들 춤의 대열에 참여 하였다.

상대의 의사를 탐색하고 확인 하는데 복잡하지 않고 간단명료하다 할까. 재산 따지고 학벌 따지고 배경 따지고 직업 따지는 등등 따지는 것 많은 우리 사회보다 얼마나 순수한가. 이들에게는 미투(me too)의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은 이해할 수 없겠지.

여자의 집에서 사랑을 나눈 남자는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나와야 한다. 이러한 풍습을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달려가서 혼인 한다고 해서 주혼(走婚)이라 하는데, 주혼이란 말은 외지인들이 만든 말이란다. 모서인들에게는 혼인이니 결혼이니 하는 단어조차도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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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춤
 


두 남녀가 애정(사랑)이 변하지 않는 한 계속 관계를 지속하지만 한 쪽이 싫어지면 쿨하게 관계를 끝내고 다시 마음에 맞는 사랑을 찾는다고 한다. 일부일처제와는 먼 프리섹스 사회랄까. 나는 이러한 남녀의 관계맺음이 철저히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니까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애정 없이 사회제도에 묶여 억지로 평생 인내하며 사는 사람들의 삶(특히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삶)에 비하면 모서인들의 삶이 좋아 보였다. 모서인에게는 남녀의 관계 청산이, 혼인제도에 매여 사는 사회 사람들의 헤어짐에서 겪는 아픔이나, 이런저런 부작용 보다 훨씬 덜 하리라 여겨졌다.

자녀가 태어나면 양육은 여성의 몫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 남자는 자기 집에서 집안일을 하고 여자 형제들의 자녀(조카)를 돌보며 그들의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모서인들에게는 아버지라는 호칭도 없고 관심도 없단다. 가장은 외할머니다. 할머니가 없으면 어머니나 이모들 중 하나다. 가장은 가정의 모든 대소사를 결정하고 제사를 주관한다.

나는 야회가 끝난 후 몇 명의 모서인들과 함께 통돼지 바베큐 파티를 하였다. 들판에 방목했던 돼지의 식감은 상상에 맡긴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밑에서 그들의 민속주인 ‘수리마주’를 곁드린 파티는 이곳이 "샹그릴라"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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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마을아침
 


호수가 잡히는 창가에 촛불 세우려던 것도 깜빡 잊은 채 나는 객잔 침대에서 기분 좋게 취한 채 잠이 들었다.

여섯째 날에는 다시 리장으로 이동하여 쑤허마을을 탐방했다. 쑤허마을은 산과 물이 잘 어우러진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조용하고 평화로움을 주는 마을이었다. 구 시가지에 밀집된 옛 목조 건물들의 지붕들이 참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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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곱째 날에는 날이 밝자마자 마을 뒷산에 올라 마을 전체를 조망했다. 한 폭의 고서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도보 탐방을 하면서 나는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곳이었다고 지금도 기억한다.

차마고도 박물관을 거쳐 티벳 장족의 전통 가옥에서 그들의 풍습에 대하여 알아봤다. 다시 따리로 이동했다. 옛 대리국의 흔적이며 윈난의 역사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대리고성 야간투어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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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 다리고성

 


백족이 운영하는 전통 찻집에서 수십 종류의 푸얼차(普洱茶:보이차) 시음을 했다. 그리고 4천 미터이상 되는 고산지대에서 자라다가 수명이 다하여 죽은 주목나무에서만 채취한다는 홍설차(紅雪茶)도 시음했다.

참고로 푸얼차에는 ‘칠자병차(七子餠茶)’라고 쓰여 있는데 여기에서 '七子'는 일곱 개 한 묶음이라는 뜻이고, '餠茶'란 빈대떡 모양의 차라는 뜻이란다. 숙성기간 등 그 밖의 조건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단다. 한국의 인사동에서 10만원쯤 하는 보이차가 여기서는 약 5천원 정도였다.

여덟째 날에는 대리고성을 다시 산책한 후 쿤밍공항에 가서 비행기 탑승을 하고 베이징으로 갔다. 이번 여행 끝날인 아홉째 날에는 자금성 뒷 편으로 가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전통 거리와 전통 민가를 탐방하였다. 이어서 스차하이 호수 주변과 옌다이세제 거리를 산책하고 귀국함으로써 뜻 깊은 여행을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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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행은 옛 문화를 다양하게 접하면서 자연과도 사람들과도 아름다운 만남의 여행이었다.
첨기할 것은 이 여행에서는 여행 사업에서 발생하는 이윤을 여행객을 위해 봉사하는 현지 주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다국적 숙박시설(호텔 등)이나 외지 자본에 의해 운영하는 대형식당은 피하고 현지 주민이 운영하는 객잔을 이용했다. 또한 현지식은 물론 간식도 길거리에서 사서 군것질을 했다. 이런 점은 현지 문화체험의 알찬 방법이 아닐까.

평소 웃음이 별로 없던 내가 이 여행에서는 꽤 웃음이 헤펐던 것 같다. 그리고 미소는 보디랭귀지와 더불어 다국적 다민족 만국 공통어임을 다시 확인했다.

사족을 붙인다면, 평화롭고 따뜻한 인심 좋은 이곳에 외지에서 자본으로 침투하여 옴으로써 이런 좋은 문화유산이 훼손되고 있다니 안타깝다.

나는 지금도 세 번째 윈난 모서인 마을에 가기를 꿈꾸고 있는데 80노년의 망상(忘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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