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반민특위'를 보고 - 생손앓이 하는 나라

posted Dec 0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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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반민특위-안내-포스터_축소.jpg

 

 

요즘엔 위생이 좋아져서인지 ‘생손앓이’를 앓는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다. 내가 어렸을 적 만해도 ‘생손앓이’를 하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게 손끝의 상처에서 시작되어 대수롭지 않은 듯 보이지만, 앓아본 사람들은 안다. 손끝의 통증이 온몸으로 전해지면서 욱신욱신 견딜 수 없는 아픔에 눈물마저 찔끔거리게 만들던 아주 기분 나쁜 기억.

우리 근현대사에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는 ‘생손앓이’를 앓는 손가락이다. 이승만정권의 반민특위 무력화는 그 후 닥쳐온 오욕의 현대사를 배태한 부조리의 씨앗이었다. 반민특위의 무력화가 가져온 끔찍한 일들을 보라. 친일부역자들이 국가의 상부구조에 똬리를 틀고 앉아 반민족, 반민주, 반민중적 작태를 보임은 물론이요, 광주와 4대강, 세월호 그리고 백남기 어른 타살사건에 이르기까지의 몰상식 퍼레이드가 모두 반민특위 무력화란 생손앓이로부터 비롯하였다. 특히 사법집행부처인 법원과 검찰 그리고 경찰의 만행에 가까운 민중탄압은 권부를 장악한 친일보수 세력의 비호 없이 어찌 가능했겠는가.

연극「반민특위」(노경식 작, 김성노 연출)는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마치 반민특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듯하여, 연극적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다. 아마도 작가는 반민특위의 전모를 얘기하고 싶어 무리한 욕심을 낸 게 아니었을까. 그런 상황에서 고민의 흔적이 역역한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은 빠른 극적 전개와 밀도를 보여 주었다. 원로배우들의 농익은 연기와 젊은 배우들의 헌신은 무대의 품격을 한층 높여 주었다. 특히 권병길 쌤의 어눌한 충청도 억양의 재판관 연기는 팽팽하게 전개되기만 하던 극의 긴장감을 일거에 무너뜨리면서 관객에게 숨 쉴 여유를 주었다. 나중에 극장 로비에서 권별길 쌤에게 물었다.
“그 장면 선생님의 설정이시죠?”
“그럼, 내가 그랬지.”

 「반민특위」같은 연극을 1년 전에도 볼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지난겨울의 촛불이 아니었으면,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면 이런 연극을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 벨’이 받았던 탄압을 비껴가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이르자 우리의 시계는 여전히 반민특위가 무너지던 시점에서 멈춰버린 건 아닌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1949년의 ‘반민특위’도 2017년 무대 위의 연극‘반민특위’도 여전히 아픈 손가락이다.

 

오낙영2_축소.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