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일중 김충현의 묵향연중(墨香緣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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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연중, 예서(135x34cm), 1969년

 


기술의 발달과 빠르다는 것이 좋은 것으로 평가되는 세상의 변화 때문에 있어야 하지만 이미 소멸된 것도 적지 않고 점차 쇠퇴하는 것들을 보게 된다. 갈수록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것들이 주위에 적지 않다. 종로에 있는 인사동은 알거나 가본 사람은 많지만 전통과 문화의 맥을 찾아본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인사동의 가운데 위치한 백악미술관은 1983년 김충현이 서예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세운 곳이고 3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서예전시가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김충현(1921~2006)의 호는 일중(一中)으로 해방 이전부터 1990년대까지 활동한 대표적인 서예가이다. 충절은 강조한 성장환경 때문에 제도교육을 받지 않고 가학을 주로 받았으며 18세에 전국적인 서예 출품전에서 1등을 하며 평생 서예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문 뿐 아니라 한글서예도 뛰어날 뿐 아니라 한글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다양한 서체 개발을 연구하였고, 한글 서예 보급을 위하여 1942년에 ‘우리 글씨 쓰는 법’을 출간하려고 하였으나 주위의 만류로 책은 해방 이후에 빛을 보게 되었다. 한글 및 한문 서예작품 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현판을 썼으며, 역사적 장소에 역사적인 내용의 비문을 서예로 써서 많은 곳에서 그의 글씨를 볼 수 있다.

 

김충현이 남긴 서예 작품은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보다 많지만 그 중에 한문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묵향연중(135x34cm)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1969년에 예서로 쓴 작품인데 그 뜻은 ‘먹의 향기는 인연을 중히 여긴다.’로 풀어 볼 수 있다. 김충현이 서예 인생 50년을 되돌아보며 오랜 시간 글씨를 쓰며 맡았던 먹의 향기와 그로 맺어진 숱한 인연들을 네 글자 작품에 집약한 것으로 보인다. 김충현은 한자의 오체(五體)를 모두 잘 썼지만 특히 예서 작품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각각의 글자가 주는 안정감과 편안한 느낌과 더불어 네 글자가 함께 어우러져 보여주는 균형감과 조형미도 돋보이는 작품이다.

 

서예는 글자를 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그 글자는 자기의 생각뿐 아니라 세계 모든 사상의 근본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요즘같이 빠르고 편리한 세상에서 시간을 내어 글자를 쓰는 것은 소홀하기 쉬운 행위로 치부되고 있다. 그렇기에 먹을 천천이 벼루에 갈면서 붓으로 글씨를 쓰는 모습의 소중함을 묵향연중은 묵묵히 얘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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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옛시조, 궁체(32x52cm), 1970년대, 우: 정읍사, 국한문혼서(64x136cm), 19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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