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의자는 행복했습니다

posted Feb 0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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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나현호
발행호수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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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jpg

 

 

더운 날도 

추운 날도

비바람에 어수선하고 눈보라에 위축되지만

우두커니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

정작…

사람들은 관심도 없는데…

마냥 기다린다.

가끔 까치가 내려와 자리를 지키지만 얼마 못 가 흰 먼지 날리며 달아난다

그리고 다시 비워졌다

얼마 후 개미가 두리번거리며 기어오른다

한참을 서성이더니, 과자 부스러기인지 까치 똥인지 몇 배는 더 큰 하얀 먹이를 집고 기분 좋게 내려간다

의자는 찾아와 줘 반갑다며 짧고 뭉퉁한 다리로 바닥까지 배웅해 준다.

 

아침 일찍 노인이 앉았다

굽은 등과

처진 어깨

떨리는 손이 불안하다

한숨을 크게 쉬곤 앞만 바라본다

큰 숨은 이내 작아지고 색~색~ 아기숨이 숲을 재운다

의자는 조심스레 손을 내민다.

어두운 저녁, 무거워 보이는 청년이 앉았다

불안한 얼굴로 바닥만 쳐다본다

몸이 흔들리고 비가 내렸다

뜨겁고, 진하고, 탁했다

의자는 잠시라도 쉬고 가라며 등을 내준다.

 

오늘도 빨간, 노란, 낙엽에게 또 보자며 배웅하고 날아가는 바람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비에겐 눈에겐 자리를 내어주고 작은 생명에게 밥도 주고 쉼도 주고

쉴 새 없이 사랑을 베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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