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 신경림

posted Mar 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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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 신경림


아무래도 나는 늘 음지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개선하는 씨름꾼을 따라가며 환호하는 대신
패배한 장사 편에 서서 주먹을 부르쥐었고
몇십만이 모이는 유세장을 마다하고
코흘리개만 모아놓은 초라한 후보 앞에서 갈채했다.
그랬다 나는 늘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나를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나는 그러면서 행복했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려려니'' 여겼다.

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
큰 손이 있다고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

 


단상/


그랬다.
있는 자보다 없는 자가 보이고
힘센 자보다 약한 자가 보인다.
영화속 주인공보다  조연이 보이고
정하섭보다 소화의 눈물이 보인다.
연말 시상식, 화려한 별보다 젖은 땀이 보인다.
바벨의 펜트하우스보다 기생충의 두 숙주가 보인다.
이유는 모르겠다.
쇼케이스에 갇힌 꽃보다 흔들리는 풀꽃이 향기롭다.
흔들리고 부러지고, 뿌리깊은 나무의 삶이 아름답다.
꼴등하는 친구를 위해 양손잡고 달리는 5꼬마들이 고맙다.



단상//

''사람 사는게 다 그려려니''
가슴이 시리다.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
가슴에 철근이 박힌다.

시인의 소박한 삶이 아렵다.'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1993년 '쓰러진 자의 꿈'에 표제작이 될 뻔 하였으나 2014년 '사진관집 이층'에 실은 시다.



시인의 말///


'늙은 지금도 나는 젊은 때나 마찬가지로 많은 꿈을 꾼다.얼마 남지 않은 내일에 대한 꿈도 꾸고 내가 사라지고 없을 세상에 대한 꿈도 꾼다.때로는 그 꿈이 허황하게도 내 지난날에 대한 재구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꿈은 내게 큰 축복이다.
시도 내게 이와 같은 것일까?'


2014년 1월 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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