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n infant, 혹은 상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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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no such thing as an infant, 혹은 상담자?”
 


영국의 소아정신과 의사이자, 소아과 의사, 정신분석가였던 위니캇(Donald Winnicott, 1896-1971)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위니캇은 사회적 의제와 일반 대중에도 관심이 많아서, 1948년 영국의 아동법 제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고, BBC 라디오 방송을 통해 보통의 엄마들을 위한 강연도 여러 해 동안 진행했습니다. 또 은퇴하는 날까지 패딩턴 그린 아동병원의 소아과 의사로 근무했다고 하니, 굉장히 많은 엄마와 아기들을 현장에서 만났을 겁니다. 그 때문인지 위니캇이 제안한 ‘중간대상(transitional object)’이나 ‘안아주기(holding)’,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와 같은 개념들은 직관적이면서도 매우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임상 현장에서 상당히 많이 인용됩니다.
제가 상담과 정신분석에 처음 관심을 갖고 대상관계이론을 공부할 때, 위니캇에 대한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위니캇이 어느 학회에서 발표할 때 했다는 말을 아마 그 때 들었을 텐데, 영어로 “There is no such thing as an infant”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말로 직역해서 옮기면 “아기라는 것은 없다”라는 다소 이상한 말이 되어버리네요.
이 말의 의미는, 엄마(혹은 모성적 돌봄)가 없는 단독으로서의 ‘아기’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기’가 있는 곳에는 ‘엄마’가 있을 수 밖에 없고, ‘엄마’가 없다면 ‘아기’ 또한 존재할 수 없어서, 그 둘은 함께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죠. 우리가 세상에 처음 왔을 때 얼마나 연약한 존재였고, 어떻게 전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존했어야만 했는지를 상기시켜주는 표현입니다. ‘엄마’를 제외한 상태의 ‘아기’ 혼자라는 개념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인데,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인간 존재의 본질을 너무나 간단한 문구로 심오하고 아름답게 드러냈다고 생각하면서, 두고두고 저 혼자 감탄하곤 했습니다.
엄마와 아기도 그렇고.... 따지고 보면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지만, ‘상담자’로 일하는 것도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내담자와 휴가를 앞두고 이야기를 하는데, 무언가 불평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무슨 이야긴가 싶어서, 좀 더 대화를 진행시켜 보았더니, 그 내담자 말은 자신은 상담자를 못 만나게 되면 힘들고 아쉬운데, 상담자는 내담자가 없어도 아쉬울 게 하나도 없지 않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억울하고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었죠. 물론 내담자의 심정은 이해가 되었지만, 과연 그럴까요? ‘내담자’가 저를 만나러 상담실에 오니까 제가 ‘상담자’인 것이지, ‘내담자’가 오지 않는다면 제가 아무리 용을 써 봐도 ‘상담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내담자가 제게 의존하는 것처럼, 저도 내담자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죠. 위니캇 식으로 얘기하자면 ‘There is no such thing as a 상담자’라고 할까요.
그래서 내담자가 상담실에 나타나지 않는 일이야말로 상담자를 곤란하고,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됩니다.
가끔 그런 날이 있습니다. 내담자 A는 못 온다고 지난 주에 미리 회기를 취소했는데, 갑자기 내담자 B도 아파서 못 온다고 알려오고, 그러고 나서 조금 있다가 내담자 C가 이제 상담을 그만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오는 식이죠. 그럴 땐, 약간 멘붕이 옵니다. 상담자들끼리 하는 농담인데, 혹시 내담자들이 서로 연락해서 짜고 이러는 건 아닐까? 라는 말을 하기도 한답니다.
그런 날 저녁, 내담자 D가 제 시간에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속으로 ‘어이구, 고마워라.’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아마 내담자는 상담자가 오늘따라 왜 저렇게 환한 얼굴로 자신을 맞아주나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의존한다는 개념은 다소 익숙하지만, 그 반대의 생각은 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희 상담자들조차도 그렇지요. 그러나 상담실에 오지 않거나, 상담을 이제 그만하겠노라고 내담자들이 선언할 때마다, 실은 상담자로서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어떻게 내담자와 함께 갈 것인가, 하는 숙제는 계속되는 고민입니다.

 

장은정-프로필이미지.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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